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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대에게.

Anti-Hero - Taylor Swift

by 이오십

살다 보면 생각나는 내 첫사랑, 첫 연예인. 언니의 삶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언니의 이름까지 좋아했다.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고 오직 대중매체와 인터넷으로만 지켜봤을 뿐이지만, 애정을 담아 언니라고 지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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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두해 나는 나이 들어가는데 언니는 그대로다. 내가 열 살 때, 언니는 걸그룹으로 데뷔했다. 아버지가 구독하는 스포츠 신문의 연예부에서 처음 언니를 알게 되었다. 제목이… 기억나진 않는데 회색 신문지에 해사한 언니의 웃음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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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은 디자인계통 자영업을 하셔서 다른 집보다 컴퓨터를 만질 기회가 많았다. 엄마, 아빠가 차려준 간식 - 요플레나 사과, 포도 같은 과일 -을 먹으며 사무실에 딸려있는 작은 방구석에서 야후나 네이버 같은 웹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떤 동영상을 클릭하게 되었다. 예쁜 언니들이 공주옷을 입고 춤을 추는 영상이었는데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본 그 언니가 데뷔했다는 그룹명을 검색창에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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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언니네 그룹의 데뷔 뮤직비디오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난해함? 독특함 속의 사랑스러움이 한방에 가슴 꽂히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뮤직비디오에서 본 풀컬러의 언니는 신문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웃음은 더 예뻤다. 눈꼬리가 확 휘어지면서 타인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말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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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눈길이 간 첫 순간을 떠올리고 보니 언니의 외적인 요소에 끌렸다,라고 정리된다. 언니는 외모평가에 대해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탁월한 언니의 외모를 묘사하는 게 ‘옳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얼굴이 어떻네, 뾰루지가 났네, 다리가 굵네, 웃을 때 주름이 많네 등 외적인 평가는 속으로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게 옳다,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언니에게 관심이 생긴 순간을 이야기하려면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대목에서만 이야기하고 더 이상 언니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났고, 눈에 띄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묘사는 절제하겠다.


들판에 가을이 오면 꽃이 시들어 꽃대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 또한 그렇게 사라져 버릴 터인즉, 인간의 외양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보에티우스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장미의 이름 34p 문장 그대로 인용)

부디 언니가 날 용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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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논란으로 힘들어하던 언니의 시간도 기억한다. 그땐 내가 좀 더 자라서 서칭 능력이 올라갔다. 그건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온갖 비상식적인, 도저히 사람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수 없는 말을 서슴없이 전시해 둔 웹사이트도 보게 되었다.


그 사이트에서는 언니에 대한 외모 비하부터 온갖 루머가 베스트 글에 올라와 있었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간 나는 언니의 사진을 인터넷 연예뉴스 사진으로 찾아봤었는데, 인터넷뉴스 사진 아래 적힌 댓글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익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람을 다 같이 호박씨를 까는 걸 적나라하게 보게 되어 충격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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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세상을 뜨기 2, 3년 전부터는 언니 이미지가 ‘이해할 수 없는,’이라는 쪽에 가까웠다. ‘이상한 사람이다.‘


정말 미안하게도 나 역시도 ‘언니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이상한 사람 -주목받으려고 일부러 비호감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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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나가서 딱히 언니를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 없었다. 언니가 나온 뮤비를 인터넷이나 tv로 챙겨봤지만 그 정도로는 내가 언니의 팬이 아니라고 여겼다. 팬이라고 하면, 어떤 열성적인, 광적인, 매니악한 그 어떤 것, 혹은 요란하게 좋아한다는 걸 사방에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와서 언니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건 구차하고 치졸한 변명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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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넌지시 “아, 난 요즘 oo그룹 노래가 제일 좋더라.”라고 고백했을 뿐이다.


언니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초등학교 앞 작은 근린공원에서 그네를 타고, 하늘색 mp3로 음악을 들었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이었고, 해는 아직 떠 있었다. 음악을 듣는데 독특한 그 뮤직비디오 장면이 떠오르고 헤어지는 길에 불현듯이 이야기했다. 작은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댔나. 그냥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뿐이었는데 심장이 떨렸다. 친구의 반응은 건조하지만 긍정적인, 약간은 기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반사적인 대꾸였다. “아, oo그룹 콘셉트 특이하고 예쁘더라.”

아무렇지 않은 척, 별 얘기 아닌 척 진심을 담았던 대화는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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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참 지나서, 언니는 선배가 되어있었다.


온갖 기사에서도, 영상에서도, sns 댓글에서도 다 언니를 이상하게 봤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하는 티를 냈다.

왜, 이상하면 싫어하잖아. 예쁘면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끼듯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이상하고 기이하다고 배척하려는 태도는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체포하는 백혈구의 메커니즘과 비슷하달까… 아니다. 이건 좀 다른 것 같다.


아무튼, 언니의 태도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리송한 면이 있었다. 기존에 많이 보이는 인간유형과 달랐다.

왜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사서 하는 거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왜 저렇게 정 맞을 행동을 하는 거지? 저렇게 하면 안 좋은 관심만 더 끌 텐데. 일부러 그러는 걸까? 가만히 있어도 예쁘다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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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고 넘어가자면 언니는 어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 아니다. 죄지은 사람도 아니고, 누구나 그렇듯 세상살이에 서투를 뿐이었다. 다만 외모가 너무 뛰어나서 카메라가 언니를 쫓아다녔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실수하고 조금씩 성숙해지는데 직업 특성상 미숙했던 부분이 확대해서 언급되고, 언급되고 하다 보니 더 억울함이 있었을 것 같다. 일반인이면 죽을 때까지 무덤까지 가지고 갈 흑역사도, 녹음되고 싶지 않은 음성, 순간을 담은 사진도, 편집된 영상도 모든 게 저장되고 누군가 보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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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단일민족국가의 전형적인 생각을 거지고 있다.. 끝까지 ‘언니가 튀는 짓을 했기 때문에’ 미움받을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몰라?라고 생각했던 거니까. 물론 모든 한국인이 나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만.


생각할수록 언니는 참 힘들었겠다.


이쁨 받고 싶으면 이쁜 짓을 해야지,라는 게 아니라 그냥 빼어나게 이쁘게 태어나서 그 자리에 갔을 뿐인데 이쁜 짓까지 하라고 하니까 혼란스러울 것 같다. 보통 예쁨 받을 만한 게 있으니까 tv에 비치는 것일 텐데, 과거엔 매체의 통신속도가 느려서 어느 정도 적응, 혹은 감추기가 가능했지만 언니 때는 불가능해졌다. 너무 빠른 전달, 너무 빠른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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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언니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다.

내 눈으로 언니가 나온 영상을 보면 얼마나 언니가 외롭고 답답했을지, 괜찮은 척하지만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그 눈빛이 보인다. 사실 다들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미숙하기 때문에,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하고 말문을 틔워야 하는지, 더 상처가 되는 건 아닐지 생각이 많아서… 온갖 이유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니를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으면 달라졌을까 상상한다.

언니가 나온 예능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아픔에 대해 웃음으로 넘겨버리려고 하지 말고(웃음으로 승화되기엔 부족한 상처니까) 상담사라도 참여했으면 좋겠다 “라는 리뷰라도 달 걸.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나는 아마 영원히 난쟁이일 것이다. 거인의 무등을 타도 언니의 시간 끝을 잡지 못하는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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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의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 정말 예쁘다. 근데 언니는 좀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다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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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만약 내 동네 언니였으면 같이 놀고 싶은 언니다. 우리 부모님 사무실에 데려가서 과일도 같이 먹고, 게임도 같이 하고… 언니는 똑똑하고 예뻐서 부모님도 되게 예뻐했을 거다.


굳이 영혼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까지 뿜어져 나온다,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정도 그게 사실이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물론 선천적으로 가진 유전적 아름다움 말고, 후천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얻는 아름다움 쪽 말이다.

확언할 수는 없다. 모르겠다. 근데 나는 언니가 웃는 것을 볼 때 언니는 참 선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속았나? 다를까? 달랐을까?


언니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건 없다. 다만 tv에 나온 언니를 볼 때 ‘좋았다.’.

재미있다, 기뻤다, 즐거웠다 이런 감정들 말고 그냥 ‘좋았다’. 더운 여름 저녁에 살랑 불어오는 미풍이 느껴지면 좋은 것처럼, 길을 걷다가 강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만나면 좋은 것처럼 그렇게 좋았다. 무어라 딱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서 더 값어치 매기기 어려운 것이지만 나는 그 ‘좋았다’라는 감정의 형식으로, 언니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존재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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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쓰는 건 자꾸만 언니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언니를 떠올리는 게 싫진 않다. 근데 조금 슬퍼지긴 한다. 그냥 일방적으로 얼굴만 아는 건데도.


나는 언니의 삶을 멀리서,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사는 사람으로서 관조했다.


아무튼 언니는 독특하고 멋진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언니를 이상하게 봤다. 예쁘고 이상한 사람.


사실 언니를 욕하는 사람은 진짜 일부였다고 믿는다. 그 일부가 엄청난 똥을 싸질러 놓았고, 그 똥은 똥 간에 넘쳐흘러서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언니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던 것 아닐까.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굳이 나서서 이해할 필요 없으니까, 아무래도 tv로만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을 것이다. 언니가 얼마나 괜찮고 평범한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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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언니가 왜 사라진 것인지 생각하긴 싫다. 그냥 언니의 예쁜 미소만 담고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왜 결과가 그랬는지 짚어봐야 나중에 이런 예쁜 사람을 잃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장황하게 썼나 보다.


내 글이 너무 외모지상주의적인 건 아닌지 돌이켜본다. 예쁨, 미에 대한 찬양에 치우친 건 아닌지.. 일단 솔직하게 글을 써보긴 했다.

사람들은 다 예쁜 구석이 하나씩 있다고 본다. 그 아무리 되바라진 학생이어도, 연초를 피는 회사원이어도, 버스에서 발톱 깎는 비매너 시민이어도, 누가 봐도 박색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여기서 말하는 예쁘다는 세상의 모든 예쁨을 말한다. 얼굴이든, 행동이든, 태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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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각적인 ‘미’에 대한 기준은 과학적인 기준도 있고, 사회적인 기준도 있지만 대체로 알만 한 것이다. 아기가 보고 싱긋 웃는다,… 이토록 미에 솔직한 반응이라니. 본능적인..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뭐길래 나는 왜 이렇게 글을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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