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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수험생으로 살아봤다.

Heart of Joy - Mr.Kensington

by 이오십

> 지나친 감수성.


오늘 아침에는 날이 살짝 흐렸는데 도서관에 도착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비가 쏟아졌다. 점심을 안 먹는 대신 하루 종일 먹을 녹차라테 한 잔과 반납해야 할 책 여러 권을 들고 있던 터라 이동 중에 비가 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웠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다. 본인에게 어떤 평가를 내린다는 게 얼마나 객관적일지 우스울 수도 있겠으나, 비가 오는 축축하고 흐린 날이면 내 기분에도 크게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기분이 생각에까지 영향을 줘서 약간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판단을 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최근에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는 문장을 만났다.


‘비가 오고 있는데 그저 네가 거기 있었을 뿐이다.’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자연현상과 내가 거기 있는 것은 별개의 사건이다. 비가 오기 때문에 내가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취향과 선택에 의해 약한 의지로 내가 밖에 나가지 않은 것이다.



종종 이를 착각해서 ‘비가 와서 외출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하는데, ‘비가 와서 (날씨도 쌀쌀하니 나가기 싫기 때문에) 외출하지 말아야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런 착각이 반복되면 인식에도 오해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테면 ‘나는 비가 오면 외출하는 걸 자제해.’라는 습관을 단정 짓는 말을 하게 된다. 이후에 이 문장이 발전하면 ‘나는 비가 오면 피로해져.’라는 신체 감각까지도 생각으로 제한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겪어봐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오해가 생기곤 한다.


*


이런 오해는 가끔 잘못된 믿음과도 비슷한 양상이다.


나는 종종 할머니가 ‘우리 손주, 잘 되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슬퍼지면서 죄책감도 느끼고, 부채감도 느낀다.

하지만 그 말은 할머니가 한 말에 불과하고, 나는 그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할머니의 말은 발화되었을 뿐이고, 나는 할머니와 같은 장소에 있었을 뿐이니까.


종종 이런 기억은 우울한 날에 내 머릿속에 재생될 때가 있는데, 이건 나의 상황에 대한 연민을 자극하는 문장이다. 굳이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아래는 고3 모의평가에 나온 지문의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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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도 내가 느끼는 감각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육체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의 육체는 오직 나만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육체에 발생하는 감각은 나의 육체를 넘어 타인의 육체로 이전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원칙적으로 어떤 감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 감각은 개별적이고 일회적이다. 그리하여 만약 자신의 고통이나 쾌락이라는 감각에 대하여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개별성에 함몰되기 쉽다. 다시 말해 쾌락과 고통에 대한 지나친 감수성은 사람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들 수 있다. 자기가 고통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고통 속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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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비가 개고, 언제 날이 어두웠냐는 듯이 밝아왔다. 날씨는 계속 바뀐다. 그냥 거기 내가 있었을 뿐이지, 날씨는 늘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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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큰 위로가 된다. 아주 짧은데 위로가 된다.





> 목표 앞에서의 달콤한 사치.


나는 사치스러운 것을 사랑한다. 모두가 시간에게 빚지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나는 평균보다 더 미래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말하는 사치스러움은 이러한 것이다. 모두가 어떤 인생의 사이클에서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 앞에 서서 목표와 상관없어 보이는 것과 어울리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고시생이 밤마다 30분씩 소설책을 읽는다던지,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자기 전에 1시간씩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을 한다던지 뭐 그런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모의고사 때, 생명과학 문제를 풀다가 불현듯이 '글을 써야겠어.' 하고 그 뒷면에다가 어제 꿈꾼 이야기를 줄줄 쓰는 기행을 저질렀다. 그건 시험에 대한 소극적인 항의도 아니었고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했다. 아마 당시에 하고 싶은 것들은 억압해두고 해야 하는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 뒤에서 터져 나온 본심 같은 것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종종 글을 쓰기도 하니까 건전한 방식으로 조금씩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내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 생긴 미숙함의 현상이었다.



경쟁자의 책은 한 장씩 뒤로 넘어가고 있다,라는 경각심을 주는 문구를 보면 그 적나라함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맞는 말이지만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할까.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별로다, 나쁘다 비판할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 말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나 인생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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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치스러움은 많다. 통기타를 연주한다던지, 재즈를 들으며 글을 쓴다던지,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던지, 옷을 골라 입는다던지...


어떤 확고한 목표의식 앞에서 사소한 즐거움은 사치가 된다. 나는 이런 상황, 인생의 전환이 너무 싫은 사람이다. 어떤 목표만 가지고 터널비전으로 그 목표만을 뚫어져라 향하는 것, 그런 삶은 끔찍할 것 같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봤다. 내가 목표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즐거움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사치를 한다고 모두가 인생의 목표달성에 실패하진 않았다.

삶에서 사치를 배제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의 전제가 목표를 가질 수 없게 하는 큰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공생하고 협력, 조절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게 느껴진다. 통제에 대한 자기 확신이나 믿음이 없을 때 오히려 목표의 장애물이자 사치스러운 행위를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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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치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삶의 윤활유이기도 하다.


위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역시 아버지가 나에게 자주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이 그렇게 책만 읽어도 되는 거야?', '시험을 앞뒀는데 기타 연습할 시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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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인생의 어떤 시험들 - 고시류 공부, 입사시험 등.. - 앞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근속한다면 30년 동안 다닐 직장을 1년 만에 들어가느냐, 2년 만에 들어가느냐, 5년 만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앞으로 남은 근속연수가 달라진다. 29년, 28년, 25년... 그래서 수험기간이 길어지고 장수생이 되어 갈수록 인생이 불리하다고 느껴지는 게 타당하다고 설득된다.


하지만 또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삶을 그런 식으로 '통제'가능한 것으로 보고 계산하는 것이 옳은 방식인가. 때에 따라서 필요한 일이지만 옳다, 그르다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내 앞에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 계획을 위해 활용하는 수단인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결국엔 활용하기 위해서 내 앞에 남은 삶을 유추하는 것이 '어떤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도구라기보다, 방향성을 잡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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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건 방향성이라고, 그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처음 만난 제삼자가 해준 말인데, 누군가는 정말 원하는 목표가 50대에 생겨서 그때 학위를 따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결국은 60대에 그 전문가가 되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나도 나의 목표가 생기고, 그것을 꿈꾸며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원하는 자리에 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나는 간절해지는 상황을 가장 경계했다.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간절해지는 것이 가장 비참한 인간의 종말인 것 같아서 그렇다. 스스로가 간절해지는 것이 너무나 가여워서 그런 상황에 나를 두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정확하다. 두려움에 가깝다. 무엇보다 간절하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신이기도 하다.


간절해지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뭐가 됐든 어쨌거나 시간의 형태로 지불되는 것인데, 건강이 간절하면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해야 하고 , 돈이 필요하면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지식이 필요하면 공부를 해야 한다. 우선순위가 생기고, 밀려나고, 교체되고, 뒤바뀌고,... 그런 시간을 노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무튼 간에, 나는 제법 삶을 날로 먹고 싶은 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간에 간절해지기가 두렵고, 시간을 사치하며 살고 싶고, 노력하며 사는 것을 두려워하고 말이다. 두려움 자체가 어떤 동기든, 정신이든, 신체든 얼어붙게 만들어서 선택하는 기능을 마비시킨다. 우유부단함은 끈적한 슬라임처럼 내 몸에 들러붙어 내 모습을 변형시킨다. 실제 나는 삶을 파렴치하게 대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선택을 평생 유보하다 보면, 나는 삶을 날로 먹고 싶어 하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판명 난다.


요즘은 이러한 사항이 가장 두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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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유명세가 있거나, 증명이 있거나, 자격이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라는 표현은 무시당할까 봐 두렵다, 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크게 무시당한 적도 없고, 외면받은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데 그냥 '존중'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강한 회피성향을 가진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보는 게 두려워서 먼저 도망갈 구석부터 만들어 놓는... 아무튼 간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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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은 합격을 위한 공부이지, 교양을 쌓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이 말에서 시작된 글이었다. 난 전자는 지긋지긋하고 후자는 환영하는 쪽이니까.


수험은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와 더 유사하지 않을까…

교양은 취미에 불과한 것이고.?, 아무튼.




> 스마트폰과 한 몸이 아닌 삶.


스크린타임을 줄여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요즘 어떻게 지냈냐면,

기본 원칙은 어떤 일을 할 때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거나 다른 방에 두는 형식으로 일주일을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환기를 시키고 태블릿을 들고나가서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30분 동안 달렸다.

간단히 삶은 계란, 사과, 토마토 같은 걸 먹고 그날 공부할 것들을 챙겨 도서관으로 나갔다. 물론 나가기 전에 간단히 설거지를 하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정리하고 내 방도 청소기를 한 번 돌린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생겨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열람실을 잘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생겨서 책상 앞에서 한참 공부를 한다. 서너 시간이 지나면 조금 그 과목, 그 단원에 나오는 말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슈탈트 붕괴가 온다. 이를테면 '전도띠', '원자가띠', '허용된 띠', '전자가 채워진 띠'와 같은 이런 띠, 띠, 띠를 발음하다가 전도((띄고)) 띠가 아니라 전((띄고)) 도띠, 원자가((띄고)) 띠가 아니라 원자((띄고)) 가띠... 이런 부분에서 실소가 터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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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과목을 바꾸어 다른 공부를 한다.


그 외에도 다른 과목을 인터넷 강의로 수강해 봤는데, 사실 인강을 들으면서 많이 배우긴 하지만 아직 그 지식이 내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아무튼, 갑자기 그 과목에 대해 궁금해져서 무료 강의로 풀려있는 강의를 3일 내리 들어서 완강했다. 대강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과목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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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스크린타임으로 돌아와서 이런 식으로 일주일 간 지내보니 매 순간 머리가 맑고, 잠도 더 잘 자고 일어날 때도 덜 피로하다. 사실 지난 3일 동안은 인터넷 강의를 태블릿으로 주야장천 봐서 눈은 피로하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보고, 문제를 풀어보고 하는 과정에서 효능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떤 시험을 마주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아직 자신이 없다. 고작 일주일을 책상 앞에서 8시간 정도를 보냈는데 그 꾸준함이 이어질지 자신하지는 못하겠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수험을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닌 거고, 별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별거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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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좀 읽거나 스트레칭을 했다. 아니면 글을 썼다. 사실 이 시간이 제일 기대되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즐겁긴 한데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고, 지금 이 시간은 가장 편안한 차림으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루틴한 삶을 살아보니 굉장히 정신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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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집중력 부분이 확실히 개선되었다. 책상에 스마트폰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무시하는 데에 뇌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지금은 스마트폰을 주방식탁에 올려놓고 생활한다.


무엇보다 약간은 심심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어지니 '정말 쉰다'를 느낄 수 있었고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에 대한 쓸데없는 번뇌 같은 것도 사라진다. 당장, 지금, 내가 뭘 해야 좋을까? 에 대한 답을 미루지 않고 곧장 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행력도 좋아진다.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새로운 정보가 없는지 보내는 시간도 줄고, 판매사이트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충동소비의 계기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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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브레인이라는 책이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 그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페이커가 추천한 책이라고 그래서 읽게 됐다.


롤이라는 게임의 1 황, 거의 신격화되는 존재가 페이커라는 사람인데 게임을 얼마나 잘하길래 그러나 궁금했다. 나는 롤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유튜브에 검색해서 본 페이커의 플레이는 엄청났다. 일단 반응속도가 일반인과 비교도 안 되게 빠르다. 아직도 뭐가 어떻게, 잘 되는 건지 이해할 수는 없으나 게임 캐릭터의 HP정도는 알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보면 소위 '무빙'이 엄청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HP가 바닥났는데, 그러니까 완전 바닥나있는데 별거 아니라는 듯이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을 봤다. 세상엔 참 재능도 다양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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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킹이라는 게임이 있는데 그 게임을 깼다는 것도 참 대단했다. 점프킹은 캐릭터가 점프해서 공주를 만나러 가는 게임인데, 올라가는 과정에서 삐끗하면 바닥이 있는 곳까지 계속 낙하한다. 그리고 착지한 지점부터 다시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게임 중간에 '저장하기, 불러오기'도 없어서 98%까지 올라갔어도 점프 한 번 잘못하면 70%까지 다시 내려갈 수도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게임도 재능 같다. 페이커가 그 게임을 한 것을 짧게 클립으로 보고 그 게임의 엔딩이 궁금해져서 어떤 외국인이 녹화한 페이커의 게임영상 1시간짜리를 봤는데 정말 잘하더라. 무엇보다 인내심이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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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점에서 이런 사람이 읽는 책은 어떤 책인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갔는데 우연히 추천한 책이 보이길래 읽었고, 스마트폰을 내 방에서, 내 책상에서 치워버리는 삶을 살게 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뭐 그런 과정이었다.


어떤 목표를 원해서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 져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은 또 토요일이라서, 핑계를 대고 오후에는 교보문고로 외출했다. 간단히 필요한 노트, 형광펜 한 자루, 샤프심 정도를 구입해서 다시 집으로 오는데 약간은 평일의 그런 빡빡함이 줬던 휴식의 달콤함이 그리워졌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분명 나는 이런 여유 있는 날을 바라면서 지난 일주일을 빡빡하게 살아왔는데 정작 휴식이 주어지니 약간은 평일의 퍽퍽한 삶이 또 그립다. 이래서 사람은 반복해서 살아갈 수 있나 보다. 시시포스는 의외로 그 과정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산에 무거운 바위를 굴려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언정 막상 꼭대기에서 바위를 굴려 다시 아래로 내려갈 때는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이런 내용의 책이 있었던 것 같다. 시시포스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아. 알베르 카뮈다.


철학 에세이 시지프신화(Le Mythe de Sisphe, 1942)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카뮈의 저작은 <이방인>을 읽어봤는데, 아무튼간에 삶의 부조리에 대해 쓴 삼부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마지막 하나는 미완으로 카뮈가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인간의 삶이 부조리하고 반복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반복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의지 때문에 시시포스는 비극적인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자유로운, 해방되었다.라고 설명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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