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비극.

Departures-Ending -히사이시 조

by 이오십


세상의 모든 비극은 타인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것에서 온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말이나 표정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긴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추측과 짐작.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견딜 수 있는 수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네가 아프다는 수준‘이 ’엄살‘에 불과한 것인지, 정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공감이란 것도 온전히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나누어 지는 짐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결국 개인의 고통은 개인의 것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의사에게 가서 내가 아픈 곳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 의사는 아픔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 없다. 하늘의 구름을 각자 다른 위치에서 쳐다보면 제각기 다른 모양이듯이 사건에 대한 해석마저도 이리 다르다. 하물며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을 통과하는 사람이 보는 풍경과 땅 위에서 고개를 쳐들고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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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운명전쟁49’라는 예능의 클립영상을 봤다. 한 무당이 정말로 심각하게 아픈 표정을 짓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느꼈던 몸의 고통을 느끼듯이, 서 있기도 힘든 듯 엉거주춤 쓰러지듯 주저앉더니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정말, 정말로 너무 고통스러울 때의 표정이라서 심각하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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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믿는 종교는 없다. 신, 절대자, 신화, 혹은 귀신의 실존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는다. 약간은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완성되지 않은 이론, 과학에 차라리 더 믿음이 간다. 과학이 사기칠 일은 없다는 편견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과학이나 종교나 다 비슷하게 믿어야할 것 같다.


최근에는 내가 믿지 않는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무당이나 사주같은 게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거짓은 아닌데 얼떨결에 맞추는 것에 가깝고, 별자리론, 혈액형론과 비슷하게 (과학이 밝혀낼) 잘못된 믿음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마술사가 카드로 자신의 손기술을 숙련하듯이 사주쟁이나 무당은 사람의 얼굴, 안색, 행동거지, 말씨를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예측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럼에도 정말로, 진짜 맞추기 어려운 것들을 예측하거나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다른 사람에 빙의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세상엔 내가 믿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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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지 진짜인지, 거짓인지 사기인지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또 다른 삶의 비극은 ‘내가 말하는 진실’을 다른 사람들이 거짓으로 여기는데에 있다. 양치기 소년이 거짓만 말하다가 참인 명제를 외쳤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처럼 때로는 양치기처럼 거짓말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말하는 참인 명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많다. 즉, 무시당할 때이다. 그래도 처벌보다는 무시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것 같이 권위에 대한 압박 같은 것보단 무시가 낫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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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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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곳곳에는 사기꾼들이 끼어있다. 특별한 ‘증명’이 어려운 샤머니즘 계에서는 특히 사기꾼이 많을 것 같다. 사실 내가 그쪽을 잘 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도 샤머니즘이 이어져오는 데에는 그중 진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는 누가 진짜인지 그런건 모른다. 다만 내가 모르는 어떤 영적인 세계가 있을 것 같단 상상은 한다. 정신의학이나 과학 쪽에서는 그런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조차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라고 대답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런 영적인 세계에 대해 제3의 종교, 그러니까 어떤 이단이나 잘못된 믿음으로 빠지는 것을 굉장히 경계한다. 차라리 다 믿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세상의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락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는 종교는 그야말로 명백한 악이다. 징그럽다.


그나마 종교를 가진다면 가장 보편적인 종교를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이따금씩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이사이엔 늘 사기꾼이 끼어있겠지, 라는 생각에 다시, 차라리 다 믿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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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사기꾼인지 모르는 사기꾼도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길거리를 걷다가 검은색-흰색 모나미 룩을 입은 이단종교인 젊은 여성을 봤다. 그 사람은 어디 서서 어떤 진실을 봤길래 그런 신앙을 갖게 된 것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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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나의 종교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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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느 정도 이상을 갖추면 그 사람은 더이상 사기꾼이 아니고 전문가이고, 어느 정도가 되지 않았는데 전문가 행세를 하면 사기꾼이 된다.


세상은 해석이 전부다. 문제는 세계가 어려운 게 아니라 우리가 말을 잘못 쓰면서 스스로를 헷갈리게 만든다.원래 쓰던 맥락에서 벗어나게 사용하고, 어떤 단어가 고정된 본질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고, 오해하고 어긋난다.


바벨탑을 지어 올리다가 세계의 언어가 갈라졌으니 갈등의 시작이다.

갈등은 나쁜 것인가, 아니면 다양성의 부산물인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순간부터, 각자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어쩌면 과도한 단일성에 대한 제동?


완전한 믿음에 빠져서 충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경우는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 그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 - 살아온 환경, 가치관, 친구들, 본 책들, 영화, 음악 등 -이 이미 믿음의 기반이 되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 기존 세계에 대한 질서 자체에 대한 믿음이 나에겐 중력처럼 작용하지만 때로는 어떤 잘못된 믿음으로 이끄는 오해에 불과한 해석이 될지도 모른다고 가끔은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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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견딜 줄 알아야 해.‘ 같은 말에 대한 오해같은 것 말이다.


가끔은 성공한 사람들 모두가 한 말이라고 해서 그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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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믿는 세계의 규칙같은 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 이러면 진리가 아닐 수도? - 뿌린대로 거둔다.


황금률과 인과율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 - 이게 황금률이고, 선택과 의지의 문제로 윤리, 도덕의 기준이다. 여러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행동 지침이다. 반면 인과율은 세계의 작동원리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생긴다, 라는 물리적, 논리적 규칙에 가깝다. 당연히 둘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둘이 일치할수록 이상적인 세계에 가까워진다.


착하게 행동하면 정말 좋은 결과가 돌아오는가?

선한 행동이 바로 보상받지 않기도 하고, 악한 행동이 당장 벌받지 않기도 한다. 인간은 이 간극을 불편해하고, 이걸 메우기 위해 열 개념을 만들어냈다. 인과응보라던지,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라던지…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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