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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Oct 30. 2023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안다.

Scar Tissue - Red Hot Chili Peppers


살다 보면 중요한 것들을 잊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먹는 게 곧 내가 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 주변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 나를 둘러싼 주변은 암호로 가득하다.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고,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진심을 다하고, 주변에 지나가는 것들을 느끼면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이 하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줘서 자유로워진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꽤 좋은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나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했다. 조금 더 정확히 아이언맨을 좋아했다. 미국 백인 남성인 아이언맨과 전혀 공통점이 없는 아시아 동양 여성인데 왜 나는 그렇게 아이언맨을 반복해서 봤을까. 다시 생각해 봐도 조금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언밸런스하다. 아마 스스로가 사회의 비주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 역시 그와 같이 대우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리 불편하지 않게, 오히려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중학생 때 영화 아이언맨 1편을 보고 또 봤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다. 마블 부흥기를 이끌 만큼 기승전결이 탄탄하고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아이언맨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영화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첨단 군수산업의 CEO이자 공학자인 토니 스타크가 신무기를 선보이러 출장 갔다가 게릴라군에 납치를 당하고, 그의 공학적 지식을 이용해 탈출 갑옷을 만들어 기적적으로 생환하고, 자신의 핵심가치관이 뒤바뀌는 내용의 영화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토니 스타크는 억만장자, 그리고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아마 그는 서민적인 생각 - ‘요즘 불경기인데 취업이 걱정되네.’, ’ 토익 봐야 하는데 시험응시료가 너무 비싼 것 같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 은 전혀 해보지 않았을 인물이다. 그는 다른 고민을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거래처에게 화려한 PT를 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설립한 사람을 견제하고, 아이언맨 슈트를 가동하는 아크 원자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조금 더 공적이고, 규모가 큰 고민들 말이다.



우린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익숙해져서 모르는 것, 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인종, 종교, 성별, 나이.. 이런 수많은 것들에 대해 사회가 전통적으로 그려온 이미지들이 존재하고, 어릴 때부터 공학자, 과학자를 꿈꾸던 나에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관습에 의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길 강요받는다고 느낀다. 순종적이고 위계질서를 따르는 모범적인, 위에서 내려온 일을 책임지고 잘 처리하는 피라미드 맨 아래 성실한 노동자, 얌전하고 현명하게 모두의 말을 귀담아듣는 결혼적령기의 정숙한 여자, 운동장에서 땀이 흐르도록 뛰어다니는 시간보다 기술가정시간에 배우는 바느질 수행평가를 해치우는 시간이 생기고…

 무엇이든 배워두면 쓸모가 있긴 하지만 어느 단계에선 내가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당하는 게 아닌가 불쾌감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나도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내 몸에는 아시아, 젊은 여성에게 적용되는 관습이 배어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본 토니 스타크는 내 롤모델이라기보다 영원히 되지 못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토니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억만장자다. 거기에다가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설립한 아버지를 따라 공학에 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것 말고도 토니는 그 자체로 잘난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 판타지 장르로 생각하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애초에 나는 스스로 한계 짓는 걸 잘해왔다. 이만큼 하면 잘한 것이다, 이렇게.

 아니, 잘 생각해 보니 아니다. 원래의 나는 더 열정이 넘치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 1등이 목표였고, 심장이 턱 끝에서 두근거리게 최선을 다했고, 반장 선거에 나가서 친구들이 나를 뽑도록 적극적으로 유세하고 다니기도 했다. 피구를 하면 요리조리 날렵하게 피해서 자주,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음악수행평가를 위해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리코더를 불며 활발하게 복도를 돌아다녔다. 무엇보다 지금과 가장 다른 점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토니 스타크 못지않게 자신감이 넘쳤다. 태어날 때부터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고, 우리 집안이 가진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밝고 친구 많은 성격 좋은 어린이였다. 내가 조금씩 무난해지길 택한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누굴 싫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미움받는 일이 나에게도 생길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늘 뜻대로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때 나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날 좋게 봐주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나를 놀리고, 기분 나쁘게 하는 애들을 애써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참 어리석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맞았다. 내가 가진 고유한 특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람들을 주위에 뒀던 시간들이 조금씩 내가 가진 적극성, 열정적인 모습을 좀먹은 원인이었다. 내가 가진 내 모습을 덜어내면서 그 관계를 유지할 만큼 그게 소중했는지 묻는다면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참 착하다는 소리에 민감했고, 착하게 사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선함이 결국엔 승리한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선함이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맹목적인 믿음은 가끔 오류를 낸다.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지나친 자기 검열을 하고, 내 외모가 말끔한지 거울을 들여다보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뚱뚱하다던지, 너무 말랐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먹는 양도 강박적으로 조절해 겉으로 볼 땐 적당히 마른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근데 자세히 보면 근육이 부족한 마른 비만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건강하지 않았다. 성장기의 미성숙에 대해 완전한 발달을 기다리며 그들의 미성숙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이를테면 사춘기라서 더 정서적으로 예민할 수 있다, 시간 지나면 다 자연스레 나아진다, 이런 위로는 청소년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이 느껴져서 이런 말을 들으면 서운했다. 대학에 오고 나면 달라지겠거니, 나 역시도 나에게 무심했다. 매일이 무기력하고 회의감에 빠져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정신의학과에서 받은 진단은 우울이었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청소년 우울이 있었다. 진료를 받기 전에 제 때에 누가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봤더라면 성장과정에서 그 미성숙이 이렇게 오래 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떨 땐 내 생각이 없어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결정권이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여섯째 아들에게서 나온 둘째 딸이라서 우리 가족사이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이었다. 생일날 케이크를 고를 때조차 나의 의견보다 첫째인 언니의 입김에 밀렸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내 위에 수두룩 빽빽한 친척오빠들 사이에서 언니와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전을 부쳤다. 오빠들은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다가 전 몇 개 부치는 척하고 일찍이 집에 갔다. 아무튼 간에, 나는 선택을 나서서 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조율하고 따르기를 선택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는 게 중요했다. 운 좋게 나의 목소리가 울릴 기회가 있어도 오랫동안 나의 말을 해보지 않아서 덜덜 떨리는 염소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아무도 나에게 사회적인 관습과 규율에 얽매이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환경은 나 자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사회에 걸맞은 순종적이고, 모범적이고, 제 목소리를 못 내는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영원히 바뀌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내 목소리가 너무 싫었다. 제대로 소리 내기 위해 휴학기간 내내 일주일에 최소 4번 이상 코인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그냥 소리를 지른 것이다. 목이 메었다. 자고 일어나서 나오는 잠긴 목소리 정도가 아니라, 정말 깊은 단전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소리가 나왔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악을 쓰다 보니 조금 소리가 트였다. 성대도 근육이다 보니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소리를 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몸의 근육도 생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 몸은 전혀 활동적인 움직임을 하지 않아 둔하고, 느렸다. 지금도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와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나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된 점은 나는 예전부터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건, 특히 쇠봉을 잡고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건 나에게 어떤 의식이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마른 신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망을 지우고 나는 원래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간이라고 일깨우는 나다워지는 행동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가고 싶던 가수의 콘서트에도 갔다. 아이패드를 사서 웹툰도 그렸다. 내가 말을 하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실수를 저질러버릴 것 같아서 침묵하고, 또 침묵해 왔지만, 나는 말하는 것에 능숙해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잠재우고, 무시하고 살아가다 보면 삶의 의미를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지쳐버린다. 삶의 의미는 그냥 살아가는 것에 있는 것인데 자꾸만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특별한 게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바보 같았다. 그래서 쓰고, 말하는 것에 능숙해지는 게 내 삶에서 중요해졌다.



아이언맨을 보면서 그와 같은 천재공학자로 성장하는 꿈을 꿨던 과거는 추억으로 남긴다. 아이언맨은 다시 봐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을 것 같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어릴 때 꿈이 좌절된 경험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나를 이루는 전부가 되는 과정도 낭만적이지만, 나의 경우엔 내가 볼 수 있는 전부가 그 하나라고 믿는, 편협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편협하다는 말이 아니고, 나는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는 성향인지라 다른 세상을 더 탐험하기보다 가진 하나에 대해서만 파고들어서 좁은 시야를 가진 채 살아갔을 것이다. 세상을 그리 깊이 파고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삶의 가치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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