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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Oct 25. 2023

1대 다수의 사랑, 어쩌면 공평할지도..?

You make me - Day6

사랑의 작동원리를 알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물리학자들이 수학으로 만물을 이해하고자 하듯이 나는 글을 도구 삼아 사랑의 작동원리를 실험한다. 사랑에 빠지면 많은 게 변한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달라 보인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사랑에 빠지면 너그러워진다.


나는 연애를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짝사랑은 꽤 많이 해봤다. 흔히 덕질, 이라고 표현하는 다수와 한 명이 주고받는 사랑의 형태인데, 세어보면 고등학생 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4년, 2년, 1개월 조금 안 되게 총 3번 정도 한 것 같다. 각각 조금씩 다른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고, 깊이도 다르다. 하지만 사진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는 점에서 그 결은 같다.



 아이돌 산업이 이렇게나 활성화된 것에는 연애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는 덕질과 다르게 1대 1 관계로, 연애의 끝은 전통적인 결혼이라는 제도로 재탄생한다. 결혼은 내 세상과 상대방의 세상이 흔들리고 절묘하게 뒤섞이는 혼돈의 과정이다.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을 가진 다중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관계성과 집단, 계약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연애나 결혼은 많은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우위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연애나 덕질이나,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덕질에서 오는 나의 감정도 사랑에 기반한 어떤 아름다운 느낌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다양한 사랑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무언가를 이름 붙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의미를 가진다. 세상의 많은 것들, 다양한 것들의 이름을 알고 새로운 이름이 생겨난다. 동경, 모성애, 우정.. 사랑의 다른 이름은 정말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어떤 느낌,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감정, 관계들은 이름은 없지만 확실하게 존재한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자본 속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사랑인 것 같다.



아이돌이라는 표현은 내가 알기로는 가왕 조용필로부터 나왔던 걸로 들었다. 우상의 영어 표현인 idol이 언제부터인가 가수, 배우, 탤런트, 연예인, 방송인 등의 단어를 제치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린다. 아이돌은 쉽게 말하면 10대, 20대를 대상으로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을 의미한다. 아이돌이라는 명사는 팬이라는 단어와 함께 묶여서 관계성을 띤다. 무어라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팬은 아이돌을 사랑하는 집단이다. 아이돌은 참 매력적이고, 참 어려운 직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상화될 여지가 너무나 다분하고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그 속은 살피기 어려운 그런 직업. 아이돌 산업 자체가 사람의 매력을 가지고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해 이윤을 내는 데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풀려지기도 쉽고, 꺼지기도 쉽다. 정말 까다롭다. 전문직이 아닐 수가 없다. 누가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걱정하는 데에는 애정이 기반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탑 연예인들의 벌이를 보면 우와, 소리가 나오고 너무 부럽지만, 기본적인 소양(외모, 노래, 춤, 랩, 센스…)을 타고나야 하고, 올곧은 마음가짐과 성실함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음치 DNA와 기복 있는 성실함을 타고난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 사람을 사랑하는 다수에 속할 운명이 확실해 보인다. 누구를 좋아함으로써 얻는 에너지를 내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용시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나는 왜 아이돌을 좋아할까. 조금 차갑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돌을 좋아하면 연애와 달리 상처받을 위험이 적다. 상대 역시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선택에 대한 압박 없이 다수에 섞여 걱정 없이 마음껏 좋아해도 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할 만한 이유는 대개 보장되어 있다. 안전한 사랑이고, 들이는 비용도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또 다른 이유는 가장 멀지만 가장 가까이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시공간에서 그들의 삶을 살지만 내가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 영상을 틀면 그들은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초연결이 별다른 게 아니었다. 나에겐 8평 원룸에서 광활한 콘서트장에 서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게 초연결이었다. 위로받고 싶을 때 그들이 부른 노래를 듣고 기분이 나아지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두근거린다. 그들이 어려운 녹음을 한 영상을 보면 나도 내 인생에서 힘든 일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처럼 해내야지, 하는 각오도 다지게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내가 필요로 할 때, 원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다. 어떻게 보면 1대 다수의 사랑이 굉장히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찾지 않으면 그 관계는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굉장히 공평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돌은 반짝이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모습으로 내가 찾기만 하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다.  모두가 하나를 사랑하고, 하나는 모두를 애정하는 관계라니.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되게 자본에 의해서 작동되는 우연이 새롭고 어떤 면에서는 좀 섬뜩하다. 가장 괜찮은, 아니, 가장 멋진 모습으로 사랑받기 위해 큰 무대에 서는 직업이라니. 아이돌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춤과 노래, 랩은 기본값이고 운이라고 불리는, 사랑받기 위한 매력이 가장 크게 작용해야 한다. 아이돌 개인의 굉장한 노력과, 기가 막힌 타이밍과, 수많은 관계의 레이어와, 부담감을 이겨내는 정신력이라던지, 또 가장 중요한 운과,,, 아무튼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많은 품이 들어간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팬이라는 큰 묶음으로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지칭하고, 그들을 위해 무대에 선다. 평행우주가 별 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무대에서 반짝이는 그들은 꼭 다른 세상 사람 같다. 그래서 아이돌을 보고 있으면 다른 평행우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영원히 겹치지 않을 것 같은 하나의 우주말이다.

하지만 그와 우리는 같은 우주에 살고 있다. 심지어 같은 하늘, 같은 땅 위에 서있다. 똑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흔히 시간 속에 오고 간 많은 사람들이 선행한, 살아가면서 겪은 힘든 일, 아픈 일, 즐거운 일 등 모두 시간, 장소에 따라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불변하고 고유한,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문학에서 공부하고, 소설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드라마를 보며 깔깔대는 그 고유한 것을 모든 사람은 가지고 있고, 느끼고 있다. 평행우주 속 사람이라 느끼는 먼 존재의 그도 사실 보통의 사람이다. 멀리서 보면 천사 같지만. 아무튼 아픈 것도 똑같이 아프고 힘든 것도 똑같이 힘들다.

영상 속 그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이런 데이터들이 쌓이다 보면 그들이 뭐랄까… 어떤 캐릭터로 보인다. 근데 이건 함정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경계해야 한다. 언제나, 늘, 그런 사람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이돌이 더욱더 개인으로써 행복해졌으면 바라게 된다. 나에게 준 행복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사랑받기 위한 어떤 강박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았으면 바란다.



위와 같이 아이돌에게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인류애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고, 모성애를 느낀다기엔 그 정도로 위대하지 않다. 우정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정도로 친밀한 것은 아니고, 동경이라 하기엔 조금 다르다. 이름 붙이길 포기하고 가장 큰 범주인 사랑이라고 퉁치기엔 우리의 관계가 가벼워진다. 뭐라 하면 좋을까.. 방탄소년단 뷔는 ‘보라 해’,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보라-색을 -하다와 붙였는데 독창적이고 멋진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무한 관계라고 해야겠다. 그냥 옆 창문을 봤는데 나무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로 고맙고 내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나무가 딱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나무 보는 걸 좋아한다. 어감이 너무와 비슷해서 잘못 들으면 너무한 관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표면적으로는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한 관계라고 해도 혼자 깔깔댈 수 있는 특별한 표현 같다. 꽤 재미있으니 나만의 단어 만들기를 종종 해야겠다.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팬카페에 가입을 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위로받고 좋아하고 있다고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기 때문에 쑥스럽지만 가입을 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처음이라 팬카페에 가입하는 것 자체로 나는 너무나 수줍었다. 왠지 그가 나오는 모든 행사에서 응원봉을 들고 열정적으로 소리 질러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것은 필시 응답하라 1997과 같은 드라마에서 HOT팬인 주인공이 보인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입한 팬카페는 생각과 달리 차분하고, 굉장히 조근조근하고, 왠지 모르게 수줍은… 그런 분위기였다. 딱 그 가수에 그 팬이라고, 정말이지 그 팬카페는 그 가수를 닮아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커버곡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번에 열릴 콘서트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자신도 가수를 따라 기타를 쳐보고 싶어 져서 기타를 구매했다는 분도 있고, 그냥 단순히 응원의 글, 사랑고백하는 글이 다수였다. 가끔 팬카페에 들어가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하나씩 눌러보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사부작거리며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글을 쓰는데 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인지.

누군가를 귀여워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든지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귀여운 사람이 보이면 그냥 그대로 귀엽다고 말해야겠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귀여운 걸 귀엽다고 말하기.

나에게 귀엽다,라는 표현은 일종의 사랑고백이다. 근래 귀여운 사람이 늘어서 세상이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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