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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Nov 24. 2023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내가 얼마나 괜찮게 사는데.

Esthesia - 정재일


설원에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시베리아 쪽에서 지내던 호랑이가 점점 한국으로 내려온다는 뉴스를 봤다. 북한은 아닐지 몰라도 남한은 산이 민둥산이 되어버려서 그들이 서식할 만큼 쾌적한 상태이진 않을 것 같다. 호랑이는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식육목 고양잇과 표범속으로 모든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이자 멸종 위기종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호랑이에 물려 죽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하니 오늘에서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호랑이는 그야말로 전설 속 동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간혹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새삼 우리나라에 산이 많고, 그 속속들이 터널로 뚫려있거나 도로가 쭉 뻗어있어 굉장히 편리하다는 걸 느낀다. 가끔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자동차가 아니라 얼룩말, 호랑이, 가젤, 사슴, 토끼, 코끼리, 고라니 등이라고 상상한다. 현재 사람 눈엔 사람만 보이고, 특히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분포가 과밀한 편이니까 - 주거형태 아파트만 봐도 그렇다. - 과거에는 동물들이 얼마나 자유로웠고, 얼마나 우세했는지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산다.

 살다 보면 가끔, 아니 자주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가 사람을 있게 했지만, 사람은 지구를 이기적으로 다루고, 더 나아가 지구에 있는 다른 종들의 영역을 좁히는 데 한몫했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 다행이다고 느끼는 건, 현 지구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의 보금자리 경쟁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너무 많아진 사람들과 보금자리 경쟁을 한다. 더 많은 분류로 층을 나누고, 서로를 평가한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의 방식이 다양해졌는데, 매일 아침 지하철로 1시간 반씩 출퇴근을 하며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도 있을 것이고, 집에서 공부를 하며 자격증을 따고 있는 취준생도 있을 것이다. 전업 주부로서 집안일을 담당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고, tv에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것으로 인기를 얻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삶의 방식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가파르게 증가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도덕과 규율은 그 속도에 비해 느리다. 사람들은 미분된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공백이 더 잘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받지 못하면 위협을 느낀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의 삶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삶의 방식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뭘 먼저 얘기하는 게 좋을까 싶다. 일단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수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치 앞서 얘기한 ‘사람 눈에는 사람만 보인다.’ 문장처럼.


 이성애자가 다수라고 믿기 때문에 나 역시 스스로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믿고 싶고, 30대 초반이면 결혼을 하는 나이가 다수라고 믿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쯤 결혼을 하면 내 삶이 더 보통의 삶처럼 느낄 것 같고(안정감), 이십 대 후반쯤 되면 회사에 들어가서 자기 몸 건사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는 게 자연스럽다고 보아왔기 때문에 그 나이가 되어서도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더 많다.

 1. 일단 학교의 시스템은 아침형 인간(그리 다수도 아닌 것 같지만…)에게 유리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침형 인간이 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지~ 이렇게 말이다. 근데 아는가. 사실 성실하게 사는 건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고 충분조건이다. 성공엔 운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2.  우리나라 거리를 걷다 보면 휠체어를 타신 분들이 안 보인다. 시내버스를 타고 싶어도 휠체어는 올라타는 것조차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나 환경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오가라는 건가 싶다.

3. 동창회에 모이면 다들 아파트에 살고, 번듯한 직장이 있다. 동창회에 가는 사람들이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빠듯할 정도면 회비가 걷히는 정기적인 모임은 어렵다. 소수는 통계에 잡히지조차 않는 것이다.

4. 완벽히 똑같은 삶을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쉽게 말하는 예시는 셀 수 없이 많다. 존중조차 없는 문장은 정말 치가 떨리게 싫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 연예인 쉽게 돈 버네, (연예인 안 해 봤으면서. 사실 부러우면서.)

- 취업 안 하고 있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 밥 해줘야하는 거 아니냐? (취업을 안 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없으면서.)

- 취업준비한다고 시험본다며, 왜 주말에 놀아? (주말에 쉬고 평일에 공부할 건데.)

- 이제 슬슬 결혼할 때 안 됐어? 여자친구/ 남자친구 있으면 같이 보자.


내가 바라는 존중은 사실 별거 아니다. 말하기 전에 이 때에 상대방에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생각을 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말을 하기 전에 상호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상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다. 사실 이렇게 충분히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알아가다보면 상대방이 그렇게 못마땅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삶의 방식이 소수에 속하면 다수에 속하는 이들은 부러워하거나 무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 인생을 책임질 마음도 없으면서 지적을 한다. 그렇게 살면 네 인생 망해, 그렇게 살면 너 나중에 늙어서 고생한다, 그렇게 살다가는… 정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리고 사실 그렇게 관심도 없으면서 대충 조언이라고 비벼낸 저주는 간단히 물리치면 된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너보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누군가는 진심으로 조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구분해 낼 수 있다. 그 사람은 당신에게 조언하기 전에 당신의 말을 한참 경청했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존중받지 못할 때 큰 스트레스가 온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잦으면 사람을 병들게 한다. 네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 사람이 아무리 한심하게 사는 것 같아도 본인이 가장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굳이 부정적인 말을 얹을 필요가 있나, 응원은 못할망정 존중이라도 하자. 이런 존중조차 받지 못하고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는 정말 적은 사람들만이 거리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 타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겠다. 그 조건 아래 각자의 삶의 방식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이라던지, 호랑이를 생각하면 그냥 인간이 미안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튼 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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