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해녀가 들려주는 속 깊은 바다 이야기
사방이 꽉 막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휴식이나 평안함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 가깝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거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을 때, 습관처럼 바다를 찾곤 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적이기만 한 곳이 아니다. 그동안 만난 바닷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내일을 알 수 없는 곳이라고. 먹고사는 현장이 늘 그렇듯이 바다는 만만치 않은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가로운 낭만과 치열한 삶의 투쟁 그 어딘가에 위치한 바다는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엔 맨 몸으로 뛰어들어 오로지 인간의 힘에만 의지하여, 자연이 주는 만큼 수산물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이 산다.
거제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인 구조라항. 주말이면 출조 나가는 낚시꾼들로 발 디딜 틈 없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듯, 평일임에도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배의 엔진소리와 낚시꾼들이 물고기로 가득 찬 보냉박스를 옮기는 소리로 항구는 조용할 틈이 없었다.
제법 시린 초겨울 바람을 맞으며, 해녀를 태운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나 둘 배들이 항구로 돌아왔다.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배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반복하던 중, 저 멀리 배 앞머리에 주황색 덩어리를 싣고 들어오는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황색 덩어리의 정체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도구인 테왁이었다. 물에 뜨는 재질로 만든 테왁은 멀리서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볼 수 있게 눈에 띄는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테왁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해녀들의 휴식처이자, 채취한 수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어망인 망사리가 달려 있는 임시 창고이기도 하다.
해녀들이 배에서 내리자, 바다에서 갓 올라온 수산물을 가져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다가왔다. 거제도에서 활동하는 해녀들이 어획한 수산물 대부분은 사회적 기업인 숨비해물에서 수매한다. 숨비해물이 해녀들로부터 직접 수매하기 때문에, 해녀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구축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잡았지는 명확한 수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두레생협과 환경운동연합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투명한 수산물이력관리의 첫 번째 생산지로 숨비해물을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두 위로 오늘 해녀들이 캔 바위굴과 돌멍게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해녀들과 관계자들이 달라붙어 한 망에 10kg씩 담아 무게를 재고, 바로 냉장차에 실었다. 냉장차에 실린 수산물들은 곧바로 바닷물이 담긴 수조로 옮겨져 하룻밤 해감한 다음, 소비자들에게 발송된다고 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을 모두 넘기고 홀가분하게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해녀들 사이에서 해녀 신호진을 만났다.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인지, 왜 투명한 수산물이력관리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거제에 귀농입촌을 해서 3년 차 되어가고 있는 막내 해녀 신호진입니다.”
Q. 거제도 바다에서는 주로 어떤 것이 잡히는지
“오늘은 석화라고 하는 바위굴이랑 그리고 돌멍게를 잡았고요. 겨울에는 해삼을 주로 잡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패류는 거의 다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뿔소라, 전복, 멍게, 해삼도 있고, 보말이라고 하는 작은 고둥도 있고요. 미역이랑 묵으로 해 먹는 우뭇가사리 등도 채취하고 있습니다.”
Q. 그중에서 좋아하는 수산물은
“저는 전복을 제일 좋아합니다. 네 비싼 게 제일 맛있죠.”
Q. 직접 잡은 전복에 대해 자랑한다면
“저희가 잡는 전복은 바다에서 태어나고, 바다의 생태계 환경에 맞춰서 진짜 자연적으로 자라난 자연산 전복들이에요. 해녀들은 기본적으로 일정 크기 이상의 전복을 잡기 때문에 해녀 자연산 전복은 되게 큽니다.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약간 조금 더 딱딱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래서 더 꼬들꼬들하고 씹는 맛이 있어요.”
“저는 이 시대에 태어나서 행복한 게, 요즘에야 가능한 1일 배송 해산물이 주는 맛이 정말 다르거든요. 해산물을 정말 싱싱하게 그리고 이력이 잘 관리된 수산물로 서울에 계신 분이나 정말 육지 저 안쪽에 강원도 이런 데 계신 분들도 맛을 보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죠. 저도 집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가족들끼리 나눠먹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놀러 오시면 꼭 제가 잡은 걸로 대접을 하거든요. 그만큼 맛을 꼭 보여드리고 싶은 최고의 품질이에요."
Q. 흔히 바닷속은 고요하다고 하던데 실제로도 그런지
“가만히 있으면 둥둥 떠 있는 그런 편안함이 있잖아요. 제가 몸치인데 물에서는 몸치인게 조금 커버가 돼요. 이렇게 움직이는 게 편안하거든요. 그런 점이 좋아서 왔는데, 막상 일로 하니까 고요함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엄청 역동적이에요. 물고기는 계속 움직이지, 나 쫓아다니지, 굴을 부숴서 꺼내 와야 되지, 저도 막 숨이 헐떡이지, 순간순간이 정말 역동적이거든요.”
“전 오히려 그게 좋아요. 어떤 삶이나 생에 대한 뭐라 그래야 될까요. 살아 있음을 느끼는 거죠. 일하는 동안은 몸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뭔가 나 살아있네 싶고. 소라나 전복 같은 것을 잡으려고 보면, 나름 걔네들도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도망갑니다.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잡으면 움직이고 있거든요. 분명 이렇게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로 둘러쌓인 환경 속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 에너지가 넘치죠.”
Q. 젊은 나이에 해녀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지속가능한 어업이라는 관점에서 해녀가 일하는 방식을 보면, 사람이 직접 그날 생산할 수 있는 양만큼을 필요한 만큼 택하고, 나머지는 자연에서 자라서 다음에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에 씨를 뿌려요. 해녀는 해양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어업 방식 중에서 대표적인 방식이고,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는 해외에서도 많이 관심을 갖는 어업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서 해녀 일을 계속하고 있고, 자꾸 알리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해녀를 보존의 의미보다는 비전 있는 어업이니까 젊은 분들이 같이 많이 하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Q. 해녀로서 바다와 공존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해녀가 하는 일 자체가 바다와 같이 공존하면서도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정말 지속가능한 어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생태계를 그대로 놔두면 좋긴 하겠지만, 또 어느 정도는 선별을 하고 채취를 해야 생태계 균형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실 때 어느 해에는 성게가 많아서 다른 것이 안 나고, 어느 해에는 뭐가 많아서 성게가 안 나고 이런 걸 아시거든요.”
Q. 예전 바다와 지금 바다를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른들이 말씀 많이 하시죠. 많이 다르다고 해요. 지금 저랑 같이 일하시는 어른들만 해도 저희 나이 때 혹은 한 20년 전만 해도 깊이 잠수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요. 그냥 5m 정도만 내려가도 전복이 너무 많아서 담다가 지쳐서 그 위에 가서 놀고, 놀다가 일 끝내고 이런 날들도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전복 한 마리를 잡으려면 하루 종일 찾아도 못 잡는 날도 있어요."
Q. 바다를 보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쓰레기는 어민이 제일 많이 버린다고. 근데 저 여기서 사는데 옛날하고 달라요. 옛날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지자체에서 나름 시스템을 갖춰주신 게 있어서 한 곳에 다 모아서 버리시거든요. 쓰레기도 오히려 어민분들이 버리는 건 지금은 거의 없고 반대로 주워옵니다. 캠핑하시거나 낚시하시는 분들 중 극소수가 이렇게 바다에 막 던지시면 그런 것도 주워오고 하고요."
"어민들은 많이 바뀌어 가고 있으니까 여기에 관광을 오시거나 레저를 위해서 오신 분들도 따뜻한 마음으로 어민들이 어촌 생태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걸 인식을 해 주셨으면 해요. 그럼 나도 이거 하나라도 좀 손을 덜어야지, 내 쓰레기는 내가 가져가야지, 이런 마음의 인식의 변화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싶어요."
Q. 바다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어업을 하시는 분들은 나라에서 정해주는 몇 가지 규정을 지켜야만 해요. 판매를 할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도 정해져 있고. 그런데 불법 어업을 하시는 분들은 크기나 이런 것들을 선별하지 않아요. 야간에 다이빙을 해서 전복을 잡는 분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다 싹쓸이를 하시거든요. 문어도 마찬가지고. 저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이런 패류 같은 경우는 독소가 퍼지는 시즌이 있거든요. 그때는 이제 기관에서 알려주세요. 지금은 무슨 독소가 퍼지고 있으니까 그런 거는 채취를 하지 말라 안 하죠. 저희는 채취도 안 하고, 판매도 안 하고 하는데 불법 어업을 하시는 분들은 개인판매로 파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Q. 투명한 수산물이력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산물이력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진다고 하면, 불법 어업에 대한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분들이 판매할 곳이 없어지면 그런 행위를 안 하시겠죠. 요즘 일본 방사능 문제 때문에 소비하시는 분들이 많이 민감하잖아요. 어느 지역에서 어떤 해류를 타고 있는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인지 꼼꼼히 보시는 분들은 엄청 꼼꼼히 살펴보시니까 많은 도움이 되고, 수산물 소비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Q. 해녀 신호진에게 바다란
"저도 매번 똑같은 답을 해서 식상할 수도 있는데 저한테 바다는 시작과 끝,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이 일을 하는 이유도 제가 눈을 감았을 때 볼 수 있는 장면이 바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냥 끝까지 바다 옆에서, 언제든지 내가 쉬고 싶을 때 혹은 내가 열심히 일을 하는 그 모습조차도 바다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이서 온 거라서요. 제 삶의 시작까지는 아닐 수 있겠지만, 바다를 인생의 끝으로 맞이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