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섬쌀은 해풍을 거름삼아 여물어간다

사람도 벼도 시련을 겪은 후에야 더욱 깊어진다_강화드림

by DURE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지은 햅쌀밥


즉석밥의 시대가 열리고 나서는 햅쌀밥에 대한 갈망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요. 2분만 기다리면 뜨끈한 밥 한 그릇이 완성되니 말이죠.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찰기 없는 묵은쌀만 먹다가 햅쌀밥이 처음 밥상에 올라왔을 때의 감격까지는 재현하지는 못할 거예요. 뜨끈뜨끈한 햅쌀밥 한 술에 김치 한 점만 올려놔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는데 말이죠.





벼농사는 이제 누가 짓지?

햅쌀밥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듯이, 밥 한 그릇의 소중함도 점차 희미해져 갑니다. 매년 추수할 시기가 되면, 수확의 기쁨보다는 쌀이 남아돈다는 뉴스가 먼저 나오고, 벼농사를 포기할 판이라는 농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강화도에는 직접 재배한 친환경 쌀을 판매도 하고, 건강죽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면서, 벼농사를 이어가겠다는 젊은 농부들이 있어요. 강화드림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젊은 농부들이 왜 남들은 마다하는 벼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한 건지 궁금해졌어요.



"농한기에는 노는 줄 알았어요."

추수가 한창이던 10월 중순,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논 바깥부분부터 두 바퀴 정도 돌면서 벼를 베어낸 뒤,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논 가운데 벼를 베어내는 강화드림 한성희 대표의 모습이 매우 능숙했어요. 콤바인 기계 자체도 비싸고, 콤바인을 운전할 줄 아는 것도 귀한 기술이기 때문에, 수확철에는 이곳저곳에서 불러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해요.


콤바인에서 내릴 시간도 없어, 운전석에 앉은 채로 한성희 대표에게 처음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유부터 물어보았어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갔다가 인천이나 서울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농대에 진행해서 농사를 짓기로 했어요. 제 시간을 가지면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거든요. 농사 짓는 걸 보니 농한기에는 좀 한가해보이더라고요. 정말 큰 착각이었죠. 하하핫."


콤바인_0S6A3107.JPG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



친환경 벼농사를 왜 짓냐면

처음에는 남들처럼 농약치고 화학비료 쓰면서 농사를 지었지만, 남의 농사를 돕다가 친환경 벼농사를 접하게 되면서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해요. "일반 벼농사로는 판로가 막막하더라고요. 친환경 벼농사를 짓기로 하기는 했는데, 농대에서 책으로 배운 거랑 현실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다른 건 다 물어가며 찾아가며 극복할 수 있는데, 날씨나 자연환경은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예측도 안 되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태풍이나 병해충이 한 번 지나가면 수확량이 확 줄어드니까요."


친환경으로 벼농사를 짓는 또 다른 이유는 강화도에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들 때문이기도 해요. 강화도는 간척으로 얻은 넓은 평지에 해가 잘 들어 농사짓기 좋은 환경인데요.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독수리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도 강화도의 비옥한 땅을 일찍이 알아보고, 주요 월동지로 삼아 왔어요. 겨울이 가까워질 수록 수많은 물새와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며, 논밭에 떨어진 낟알과 벌레를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특히 강화도는 전 세계에 약 3,000여 마리 밖에 없는 저어새의 주요 산란지이기도 해요.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자연을 지키고 새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오늘도 제초제 대신 직접 풀을 깎는답니다.


생태농업 팻말_0S6A3179.JPG 저어새를 지키는 생태농업 팻말



강화섬쌀이 유난히 맛있는 이유


차를 타고 언제든지 육지로 나갈 수는 있지만 강화도는 엄연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지요. 강화의 벼들은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해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라야 해요. 고생 모르고 평탄한 길을 걸어온 온실 속 화초같은 사람보다는 거센 풍파를 겪으며 굴곡진 길을 걸어온 사람에 가깝다고 할까요. 사람도 시련을 겪으며 성숙하게 자라나듯이, 강화의 벼들도 해풍에 흔들리면서 자라기 때문에 맛과 향이 좋은 거라고 하네요.


하도 강화섬쌀이 맛이 좋다보니, 예전에는 가격이 저렴한 다른 지방의 쌀을 가져와서 포대만 바꿔서 강화섬쌀이라고 비싼 가격을 받는 포대갈이가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요. 섬의 특성 상, 강화를 드나드는 길목이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cctv로 타 지방의 쌀이 들어오는 것을 손쉽게 막을 수 있었다고 해요. 강화섬쌀이라고 하면, 강화도에서 재배한 쌀이라고 믿고 드시라고 하시네요.

바다와 인접한 논_0S6A3201.JPG



이게 다 벼농사 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강화드림에서는 친환경 벼농사 뿐만 아니라 쌀을 이용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어요. 직접 농사 지은 강화섬쌀로 구워낸 빵과 음료를 파는 카페 섬아이(인스타그램)도 운영하고, 100% 친환경 강화섬쌀에 국산 친환경 농산물을 듬뿍 넣어 끓여내는 섬밀죽을 생산하고 있어요.


직접 끓이는 죽_0S6A3272.JPG


특히, 섬밀죽은 직화솥에 직접 끓여내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정성 가득한 죽이 떠오르는 맛이예요. 일일이 사람이 직접 재료를 다듬고, 죽이 눌지 않게 가마솥을 계속 저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지만, 초고온 초고압에서 빠르게 만들어내는 레토오르 죽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맛을 선사해요. 저염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삼삼하게 간을 해서, 아침 대용이나 어린이 이유식이나 환자 회복식으로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앞으로도 쌀을 이용한 간식이나 다른 음식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해요.


한성희 대표_0S6A3257.JPG 강화드림 한성희 대표


강화드림이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죽을 만들어 파는 것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건 아니예요. 쌀 소비가 줄면서 벼농사만 지어서는 매년 늘어나는 손해를 감당할 수 없기에,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었어요. "누군가는 벼농사를 지어야 하잖아요. 지금 하는 것들은 다 벼농사를 계속 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다들 농사 짓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앞으로 강화드림이 100년 넘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요."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필요할 때 찾아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아요. 멀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발걸음이 뜸해진 사이에 사라진 가게,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결국 소원해진 친구. 그 전에 한 번 더 가볼걸, 한 번 더 연락해볼걸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오곤 하죠. 밥심으로 산다면서도 생각해보면 하루에 밥 한 공기 제대로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어요. 주식이라는 이유로, 흔하다는 이유로, 밥 한 공기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겼던 어제의 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은 구수한 햅쌀밥 한 그릇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젋은 농부를 떠올리며 밥솥에 밥을 해볼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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