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원래 풀을, 아니 풀만 먹는다

풀만 먹는 소의 우유맛은 어떨까_논지엠유가공

by DURE
우유 먹어야 키가 크지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학교 때도 키가 작았던 제가 엄마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에요. 우유를 먹어야 키가 큰다는 성장신화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우유에 대한 맹신은 저를 꽤나 힘들게 했어요. 전 우유를 잘 소화시키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누구는 앉은자리에서 1000미리를 마신다더라는 말로 시작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자란 저에게 우유는 그저 마시면 속이 불편한 음료에 불과했어요. 이번에 논지엠유가공에 다녀오기 전까지는요.





우유맛은 거기서 거기?

풀우유를 처음 보았을 때, 딱 드는 생각은 '무슨 우유가 이렇게 비싸?'였어요. 900ml 우유 한 병에 6,800원이거든요.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PB우유는 2000원도 안 하는데 말이죠. 멸균우유는 또 어떻고요.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풀우유를 한 잔 따라서 마셨어요. 한 모금, 두 모금 넘기면서 어? 어? 다른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우유맛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에서 '우유맛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깊고 농후한 우유의 진한 맛에 한 번 놀라고, 느끼함 없이 싱그러운 풀내음으로 끝나는 깔끔한 마무리에 두 번 놀랐거든요. 그러다 남다른 우유맛의 비밀이 문득 궁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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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옷 입은 짐승의 비애

논지엠유가공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주연섭 대표님은 공장이 아닌 목장에서 만나고 하셨어요. 대표임에도 매일 집유차를 끌고 목장을 다니고 계시거든요. 집유차를 끌고 다니면서 불편한 점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덩치 큰 집유차 때문에 드라이브 스루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거라네요. 서울에서 3시간 넘게 달려 찾아간 목장의 규모는 정말 남달랐어요. 무엇보다 건물 3~4층 높이의 높은 층고가 인상적이더라고요. 웅장하기까지 한 높은 층고 덕분에 바람이 잘 통하다 보니 한낮에도 시원하고요. 털옷 입은 동물의 공통적인 비애랄까요. 추위를 탈 것 같은 젖소들은 사실 더위를 많이 탄다고 해요. 축구장만큼 넓은 축사에 편안히 앉아서 소들이 되새김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대주목장_넓은공간.JPG



소의 위가 4개인 이유

소는 원래 풀을 소화시키기 위해 위가 4개나 있어요.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며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죠. 하지만 요즘 소들은 되새김질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더 많은 고기와 우유를 탐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곡물 위주의 배합사료를 먹고 있거든요. 풀우유는 100% 유기농 풀만 먹은 소에게서 얻은 우유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어요. 이곳 목장의 소들은 풀우유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타고난 본성대로 풀을 먹고 있었어요. 소는 그저 먹던 대로 풀을 먹을 뿐인데, 그게 특징이 된다니 서글프더군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원래 목장을 한 곳만 보려고 했는데, 다른 목장도 꼭 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주연섭 대표님이 직접 운전해주신 덕분에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의 목장까지 가볼 수 있었어요. 두 번째로 방문한 목장의 특징은 넓은 운동장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어요. 소들이 축사에서 쉬다가 밖에 나와서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앉아서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이 정말 그림 속 한 장면 같았어요. 다른 소들도 이렇게 지내지 않냐고 하신다면 정말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DSC09916_운동장에서 풀 먹는 소.JPG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좁은 공간에 한 마리라도 더 넣어 빽빽하게 키우려 하고, 소에게 풀 대신 배합사료를 먹이고 있는 축산업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손가락질하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어요. 과연 생산자 혼자만의 선택이었을까요? 조금이라도 저렴한 우유와 고기를 찾는 소비자에게 맞추기 위해서, 비용절감에 나선 생산자들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우유를 원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소가 행복한 우유였는지, 내 지갑을 위한 저렴한 우유였는지.



왜 비싸냐고 한다면

한 병에 6,800원이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워낙 다른 우유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죠.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풀만 먹는 소는 하루에 약 18~24kg 정도의 우유를 생산해요. 반면, 배합사료를 먹는 소는 37~40kg 가까운 양의 우유를 생산하죠. 단순히 생산량만 비교해도 가격이 2배는 되어야 유지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요. 거기에 공간 대비 소의 숫자가 적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지금의 가격이 결코 비싼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요. 생각해보면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테 한 잔에 4,000~5,000원은 우습게 지불하면서, 건강하고 맛도 좋은 우유 한 잔에는 우리가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닐까요.




목장에서 소들이 뭘 먹고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나니, 우유 하나를 살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마시는 우유 한 잔이 소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니까요. 오늘 당장 모든 목장의 소가 풀을 먹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풀을 먹는 소가 지금보다는 늘어나게 할 수는 있어요. 비싸다는 이유로 풀유유를 장바구니에 담는 걸 망설이지 말았으면 해요. 저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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