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이는 만큼 이야기는 깊어간다

_지구마을 보부상을 꿈꾸는 어스맨 최희진 대표의 두 번째 이야기

by DURE
결국 답은 현장에 있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여행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랜선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화면으로 전해지는 풍경만으로는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어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와 북적이는 분위기, 그곳만의 독특한 에너지가 쏙 빠진 겉핥기 여행에 불과했으니까요. 어스맨은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전, 반드시 생산지 현장을 방문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요. 직접 만나야 보이는 건 과연 무엇일지. 최희진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봤어요.





공정무역 티가 포레스트 티가 된 까닭은

올해 어스맨에서 선보인 스리랑카 포레스트 티 4종은 사실 3년 전부터 준비하던 프로젝트였어요. 코로나로 인해 해외 출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든지 생산지와 제품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이메일로 받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현지에서 전달받는 이야기는 결국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고 느낀 이야기잖아요. 어스맨의 눈으로 바라보고, 저희만의 관점이 실려 있지 않다 보니 뭔가 마음에서 감흥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공정무역 허브티로 소개하려고, 패키지 시안까지 다 만들어놨는데, 출시 전에는 꼭 한 번 현장을 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 2022년 2월 급작스럽게 스리랑카로 떠났어요."


어디나 그렇듯 공정무역을 내세운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인 건 아닌가 봐요. 진심으로 공정무역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생산자가 있는 반면, 공정무역을 마케팅 요소로만 활용하는 생산자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생산지와 거래하기 전 꼼꼼히 살펴보는데, 이번 포레스트 티 생산자는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나 이메일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해요.


"스리랑카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에 차가 돈이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각종 식물들과 차나무가 뒤섞여 자라는 기존의 야생 차밭을 싹 밀어내고, 차나무만 심는 단일재배방식을 도입했어요. 단시간에 많은 찻잎을 따리 편리하도록 말이죠. 전남 보성 녹차밭하면 떠오르는 풍경을 생각하면서 생산자와 함께 차밭으로 가는데, 가도 가도 차밭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차밭에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여기가 차밭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무도 자라고, 바위도 있고, 공작새가 유유히 걸어가는 평범한 숲인 줄 알았는데, 차밭이라니 놀랐어요. 더 놀라웠던 건 원래 있던 숲에 차나무를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원래 단일재배로 망가졌던 땅을 다시 숲으로 복원시킨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홍차 가공공장에서 실무자들과.jpg 홍차 가공공장 생산자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비결은 자연의 생명력

풀부터 나무까지 서로 높낮이가 다른 5~6개 층위의 식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는 숲에서 차를 재배하는 방식을 포레스트 가든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다양한 식물과 미생물, 동물들이 서로 양분을 주고받으며 자생력을 키우는 방식이자 스리랑카에서 전통적으로 차를 재배해 온 방식이기도 하죠.


"포레스트 티를 공급하는 생산자는 3대째 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처음 할아버지 대에서는 영국에서 플랜테이션 방식대로 차 농장을 운영했다고 해요. 계속 비료를 주면서 차나무를 키우다 보니 땅이 황폐화되고 사막화되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차를 지속가능하게 재배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해요. 그러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포레스트 가든 방식인 거죠."


아무리 좋은 방식이라고 해도 생산성이 떨어지면 지속가능하지 않는 법이죠. 단일재배방식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생산자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았어요. 해답은 환경에 적응하는 차나무의 놀라운 생명력에 있었어요.


"이곳은 스리랑카 홍차 3대 생산지로 손꼽히는 우바(UVA) 지역으로, 건기와 우기의 차이가 극명해요. 물이 풍부한 우기를 지나 건기에 들어서면 물이 부족한 차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 독특한 아로마를 내는데, 그 점이 우바(UVA) 홍차를 특별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비료를 주면, 차나무가 깊이 뿌리내릴 필요가 없어요. 여기는 비료를 주지 않으니 차나무들이 뿌리를 땅 밑으로 깊게 내려간다고 해요. 그래서 우기에는 단일재배 방식이 월등히 수확량이 많지만, 건기에는 급감해요. 반면, 포레스트가든 방식으로 재배한 차나무는 뿌리가 깊고 자생력이 강하기 때문에 수확량의 편차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1년 평균을 내면 수확량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고, 한편 유기농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있어 사업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포레스트 가든.png 차나무가 자라는 포레스트 가든




좋은 차의 비결은 좋은 노동환경

어스맨에서 하나의 제품을 선보이는 과정은 길고 때론 지난하기까지 합니다. 세계 곳곳의 공정무역단체나 기업으로부터 샘플을 받아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을 갖췄는지부터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의미가 있어도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지 않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추려지면 본격적으로 생산 현지를 직접 방문해서, 제품이 자라는 땅부터 살핍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가공시설은 위생적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도 꼼꼼히 살펴봐요. 공정무역단체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지, 고용된 노동자나 소농과의 관계는 어떤지, 공정무역이 생산자의 삶에 어떤 여양을 주는 있는지는 확인해요.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공정무역 단체나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탐탁지 않으면 거래를 진행하지 않아요. 자칫 공정무역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으니까요."


홍차는 채엽한 당일 오후나 그 다음날 바로 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큰 설비가 필요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서 소농이 생산한 물량을 매입하는 방식 대신 일꾼을 고용해서 농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요. 많은 농장에서는 할당된 하루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비율대로 일당에서 얼마를 제하는 방식으로 페널티를 가한다고 해요. 하지만 포레스트 티를 생산하는 농장은 달랐어요.


"차의 품질은 채엽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좋은 잎만 골라 딸수록 품질이 올라가는 거죠. 여기는 잎을 적게 따든 많이 따든 정해진 기본 일당은 모두 지급해요. 그러면 할당량을 채우려고 마구잡이 채엽한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차의 품질이 올라가겠죠. 더 좋은 노동 조건으로 일할 때 더 좋은 결과를 내는 셈이에요. 공정무역이라서, 숲에서 자라서 좋다는 이유 외에 좋은 노동환경이라서 제품의 품질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이게 바로 제품 출시 전, 반드시 현장에 와서 직접 확인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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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보다 까다로웠던 두레생협

어스맨이 두레생협과 인연을 맺었던 건 포레스트 티보다 앞서 선보였던 공정무역 건과류부터였어요. 이전에 사회적경제쪽은 물론 백화점부터 올리브영 같은 H&B스토어, 홈쇼핑까지 다양한 유통채널에 도전한 경험이 있었기에, 두레생협도 무난히 입점되리라 생각했다고 해요.


"두레생협은 공정무역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품에 들어간 원료 하나하나 다 어디에서 자랐는지 모든 것을 일일이 다 확인하더라고요. 파키스탄에 당장 못 가니까 자료로 대체하는데 그 깊이와 양이 어마어마했어요.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추가 자료도 몇 번이나 요청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제가 두레생협 입점을 추진하면서, 생협은 백화점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고 더 철저하게 보니까 생협에 들어와 있는 건 그냥 믿고 사면된다고, 생협에서 장 보라고 주변에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두레생협에서 집요하게 자료를 요청해서, 어디까지 자료를 요구할까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고 해요. 한편,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았다고 해요.


"정말 공정무역이 맞는지, 어떤 사람들한테 어떤 영향이 가는지까지 물어보더라고요. 누가 이렇게까지 할까 물어볼까 싶을 정도로요. 원재료가 체리 100%니까 유기농 체리 인증서 하나만 있으면 더 볼 것도 없이 대부분 통과되거든요. 그런데 두레생협은 준비했던 많은 자료를 다 읽어 보고 나서, 진짜 농부들에게까지 어떤 효과가 있고, 진짜 환경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더 건강하고 좋은 제품인지 곰 꼼 하게 물어보셨어요. 그 점이 좋더라고요."


DSC07424_어스맨 생활재.JPG





앞으로도 어스맨은 모든 제품 출시하기 전에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해요.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생산하는 사람들은 공정무역으로 인해서 더 나은 삶을 얻고 행복해졌는지, 회사는 충분히 위생적이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설을 갖췄는지, 대표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운영하는지, 회사와 농부와의 관계는 어떤지, 서로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현장에 가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품질도 우수하고 공정무역의 가치와 의미도 훌륭하다고 확신할 때, 비로소 제품으로 만들어 조합원께 소개할 거라고 해요.


어스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서 저 멀리 지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벌써부터 어스맨이 들려줄 다음 지구마을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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