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_지구마을 보부상을 꿈꾸는 어스맨 최희진 대표

by DURE


나를 찾으러 떠난 여행에서 공정무역을 만났어요.


훌쩍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여행의 이유나 목적지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여행길에서 얻는 깨달음이 있다는 걸요. “아, 나 이런 사람이었구나!” 때론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내 모습,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더욱 뚜렷해지곤 해요. 나를 찾으러 간 여행에서 어스맨 최희진 대표가 만난 진짜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졌어요.





당신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요?

누구나 사춘기를 겪기 마련이죠. 최희진 대표의 사춘기는 20대 후반에 뒤늦게 찾아왔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던 중, 남들도 퇴사를 고민한다는 3년차에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해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일을 하면 조금 더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어요. 당시 서른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땐 서른이란 나이가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서른은 넘기면 영영 직장을 떠나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가볍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때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나한테 1년 정도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죠."


앞뒤 재지 않고 용감하게 떠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국제대학원 입학 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로 여행을 떠났다고 해요.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 굴러가지 않는 법. 여행길에 들른 인도에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나를 수식하던 모든 것들을 다 던져버렸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어요. 대학원 등록을 포기하고 여행을 계속 하면서. 태국의 작은 섬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6개월 가량을 보냈어요."

어스맨 최희진 대표



마침내, 공정무역

세상에 우연이란 건 없다는 말이 있죠.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던 건 꽤나 오래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고등학교 때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인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수업을 들으면서인지, 국제대학원에 가서 공정무역을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면서인지 정확히는 몰라도요. "태국에서 지내는 동안 비자 갱신을 하러 3개월 마다 한 번씩 국경을 넘어야 했어요. 6개월 되던 때에 이번엔 어디를 갈까 하다가 라오스에 한 번 가볼까 싶더라고요. 이왕 가는 거 공정무역하는 곳을 방문해보자 해서, 인터넷으로 라오스 공정무역 생산자를 찾았어요. 그러면서 당시 라오스 공정무역협회장이었던 베로닉과 인연이 닿게 되었어요."


베로닉의 소개로 머문 공정무역 생산자 마을에서 최희진 대표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던 편견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어요. "라오스에 가기 전에 최빈국이라고 들어서, 엄청 가난할 거라도 생각했어요. 가난한 나라는 이럴 거야라는 이미지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런데 예상했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가장 고민이 많고, 삶에 찌들어 있는 가난한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손으로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말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재미와 의미, 둘 다 잡을 수는 없을까

우리의 기준으로는 가난하다고 분류되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을 보며, 최희진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해요. "지구 건너편에서 삶을 성실하게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에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공정무역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동등하게 만나서 필요한 것을 주고 받는 거란 걸 알리고 싶었어요."


라오스에서 돌아온 최희진 대표는 1인 기업 어스맨을 세우고 공정무역에 뛰어들었어요. 그 누구의 인정이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말이죠. "재미와 의미, 그리고 밥벌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고민이 늘 있었어요. 처음에는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백지에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실제로 만들어보는 일이 재밌었어요. 신나세 놀듯이 3년을 하는 동안, 좋은 파트너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무모하지만 뭔가 순수한 에너지로 일하는 제 모습을 보고, 지지하거나 응원해주셨던 것 같아요."


생산자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그리고 삶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3년이 끝날 때쯤, 최희진 대표는 어스맨을 계속 이어나갈지,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고민했다고 해요. 결론은 어스맨을 하나의 비즈니스로 이어나가자는 것이었죠.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하나의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수장이 된다는 건 또 다른 성장의 계기였어요.


"10명의 주주를 모아서 주식회사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저도 엄청 야근하고 직원들도 야근하고 그렇게 일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지속가능함을 지향하는 브랜드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의 삶은 지속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불현듯 들어라고요. 가족이나 공정무역 생산자보다 더 많이 보는 직원들의 삶도 지속가능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야근을 없앴어요. 일과시간 중에 열심히 일해서 성장하는 그 속도가 지속가능한 어스맨의 속도라고 선언했죠."





당신은 일할 때 행복한가요?

최근 조용한 퇴직이 유행이라고 해요. 일은 최소한으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만 겨우 하고 퇴근 이후의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일과 삶을 완전히 분리하는 걸 목표로 하죠. 과연 일은 스트레스의 근원이자 밥벌이 수단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는 걸까요? 최희진 대표는 오히려 일에서 에너지를 얻고 자신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고 말해요.


"저는 생산지에 가서 자연을 보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집약적으로 폭발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어요. 생산지에서는 오히려 약간 꿈꾸는 듯 있다가 오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소소한 에너지도 분명히 있고요."


"일하는 동안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가, 혹은 찌질한가 후진가. 이런 나의 바닥들까지도요. 이렇게 일하면서 나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게 되고, 또 성장하는 과정이 정말 좋아요. 일을 하면서 좋은 부분 중에 하나예요. "





최희진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이 무척 게으르다고 생각했어요. 고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나는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일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는 걸 최희진 대표는 직접 보여줬어요.


공정무역과 최희진 대표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미처 풀어내지 못한 공정무역 생산자들과 생활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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