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비가 오면 소금장수 아들을 걱정한다

바닷물에서 하얀 소금꽃을 피워내기까지 _마하탑

by DURE
제발 일기예보가 빗나가길


일반적으로는 일기예보가 틀릴 때 사람들은 기상청에 날씨 하나 못 맞추냐며 불만을 표하곤 하죠.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어요. 일기예보가 맞을까봐 전전긍긍했거든요. 전날부터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만을 빌고 또 빌었어요. 그 이유는 바로 마하탑 소금을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 이틀 이상 해가 쨍쨍 내리쬐어야 소금 알갱이가 맺힌다는데, 3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다는 예보는 소금을 보지 못할 거라는 저주에 가까웠거든요. 소금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더 이상 일정을 미룰 수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서울에서 신안까지 4시간이 넘는 길을 떠났어요.




육지가 된 섬, 임자도

전남 신안에 위치한 임자도는 2021년 3월 임자대교 개통 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진짜 섬이었어요. 이제는 다리를 2번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이름만 섬인 곳이 되었지요. 예전에는 배가 끊기면 할 수 없이 하룻밤 묶어가야 했지만, 이제는 언제든 훌쩍 맘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 보니 임자도의 낮과 밤은 같은 곳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커요. 한낮에 북적이던 사람들이 떠난 뒤 임자도의 밤은 유난히 깊고 적막했어요. 일기예보 속 비구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더군요. 과연 이번 출장에서 소금을 볼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했어요. 진한 회색 구름이 낀 하늘이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어요. 첫 방문지는 염전에서 채취한 천일염을 보관하고 세척, 포장하는 공장이었어요.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에 커다란 소금자루가 3층 탑을 이루고 있었어요. 김장 직전에는 창고 가득 소금이 쌓인다고 하더군요. 소금은 오래 묵힐수록 간수가 빠지기 때문에, 일부러 오래된 묵은 소금을 찾는 분들이 있다고 해요. 매년 재고를 조금씩 남겨 오래 묵힌 소금을 보관해왔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있던 해에는 워낙 소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그 해만 재고가 없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동안 천일염은 여러 차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던 과거가 있어요. 천일염에서 다이옥신이 나온다더라, 납이 나온다더라, 방사능에 오염됐다더라 등 각종 카더라 통신에 자주 소개되곤 했죠. 하지만 그렇게 호들갑을 떨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금 수요가 제자리를 찾는다고 해요. 오랜 논란과 부침을 겪어선지, 마하탑 유억근 생산자의 말투는 높낮이가 없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평상심이 배어 있었어요. 부침이 심한 세월의 칼날이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조각해냈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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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뽑지 마요, 함초

날씨 때문에 맘고생했던 저를 위로라도 하듯이 염전에 들어서자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군요. 생산자님의 안내를 받아 염전을 둘러보았어요. 푸릇푸릇한 풀들이 증발지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바로 함초였어요. 퉁퉁마디라고도 불리는 함초는 염도가 높아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요. 그 생명력에 감탄한 사람들이 신이 내려준 풀이라는 뜻을 신초라고도 하죠. 함초는 바닷물의 염분과 미네랄을 품고 있어 함초가루를 소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일부 염전에서는 함초가 염분을 빼앗는다고 뽑아내거나 약을 치지만, 유억근 생산자는 함초가 염분을 얼마나 가져가겠냐면서 같이 사는 길을 택했어요.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건강한 소금을 얻고, 잘 자란 함초는 가루로 만들어 함초가루로 이용하니 일석이조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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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해주의 비밀

햇볕이 내리쬐는 염전 풍경도 찍었겠다, 이제 내일이면 소금이 맺히는 걸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났어요. 여유롭게 염전을 둘러보는데 집처럼 지붕이 있는 공간이 눈에 띄더군요. 유억근 생산자는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에만 독특하게 있는 소금물 창고인 해주라고 하셨어요. 염도 3%의 바닷물은 증발지를 거치면서 20% 소금물로 농축되는데, 함수라고 불리는 20% 소금물을 결정지에서 이틀 정도 더 증발시키면 소금 알갱이가 맺혀요. 이 과정에서 20% 소금물을 만들기까지 오직 햇볕과 바람에 의지하기 때문에 약 2주가 걸린다고 해요. 단, 비가 내리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그래서 비가 오면 서둘러 함수를 해주 안에 넣어서 보관하고, 비가 그치면 다시 함수를 해주에서 꺼내 증발시키는 거죠. 게다가 11월부터 3월 말까지는 천일염 품질 유지를 위해 소금 생산을 하지 않으니, 2주를 허비하는 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는 큰 손해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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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게랑드 소금이 비싼 이유는

천일염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하는 건 아니에요. 많이 알려진 곳으로는 프랑스 게랑드 지방의 천일염이 유명하죠. 게랑드 소금은 우리나라 천일염에 비해 가격대가 훨씬 높은데, 가격이 비싼 이유는 뭔가 성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라고 해요. 유억근 생산자가 연수차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그곳 관계자에게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는데 비가 오면 애써 증발시킨 바닷물을 그냥 바다로 흘려보낸다고 답했다고 하더라고요. 비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증발 작업을 하니, 자연히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요.



소금의 짠맛은 어디서 오는가

좁은 도로라도 조금만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어려움을 헤쳐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가 온다고 소금 만들기를 포기했을 리가 없잖아요. 앞서 소개한 해주를 만들어 비로 인한 제약을 극복해내면서 생산량은 늘어났고, 천일염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하지만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비 올 기미만 보이면 언제든지 농축된 소금물인 함수를 해주로 옮길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하죠. 자다가 꿈결에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하셨어요. 오늘 주문해도 오늘 받는 빠른 배송 서비스가 누군가 편안한 잠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하듯, 소금의 짠맛은 염전에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다른 사람들의 수고로 채워진 하루를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말이죠.



소금꽃이 피었습니다

비록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까지는 볼 수는 없었지만, 작은 소금 알갱이들은 볼 수 있었어요. 까만 세라믹 타일에 맺힌 소금 알갱이는 마치 밤하늘의 별 같았어요.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마치 누가 스케치한 것처럼 줄지어 모양을 이룬다고 하셨어요. 아직도 풀지 못한 비밀이라네요. 빛나는 소금 알맹이를 눈으로 보는 것만큼 카메라에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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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억근 생산자는 계속 해가 내리쬔다고 소금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을 보내야 소금 결정이 굵게 맺힌다고 해요.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큰 일을 해낼 수 없듯이, 잘 나가는 경험만으로 큰 성공을 이룰 수 없듯이 말이죠. 잠시 쉬어가는 여유와 냉정한 성찰,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통과할 때 더욱 영그는 건 우리도 소금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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