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근로자 박두릅 이야기1

by 박두릅

공단은 '공업 단지'의 줄임말로, 쉽게 말하면 여러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뜻한다. 보통 중소기업이 입주하기 때문에 땅값이 싼 곳에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교통을 포함한 인프라가 열악하다.


그리고 나의 첫 직장은 공단에 위치한 어느 제조업 공장이었다.


처음부터 공단으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나도 당연히 뽀대나는 오피스에 하얀 샤쓰 입고 스벅 커피들고 출근하고 싶었다. 근데 세상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뽀대나는 오피스에서는 따뜻하고 정중한 워딩으로 매번 나를 내쳤다.


'취준생 감동시킨 메시지' 뭐 이런게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라 그랬나? 너도 나도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구구절절 길게도 써서 보냈다. 그냥 제목에 '불합격'이라고 쓰여 있는게 속 시원하겠다 싶었다. 그러다 '면접 불합격 안내'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내주는 회사를 만났다. 오, 이렇게 직설적인 통보는 처음이야. 신선한걸?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상처였다. 취준생 잔여 자존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자존감을 부여잡고 겨우 겨우 이력서를 100군데 정도 (과장 아님) 돌리다가 가장 먼저 날 불러주는 곳으로 가게 됐다. 그게 범주공단의 '파서블 렌즈'라는 곳이었다. 내가 사는 안녕시에 위치한 회사임에도 채용공고에서 보기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였다. 나 여기서 20년 살았는데, 초면인 회사면 진짜 어디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곳 아니야?


근데 웬걸. 면접 보러 갔을 때는 45인승 대절 버스를 보내주지를 않나, 그 공단에 위치한 공장들 중에 가장 으리으리한 건물에, 면접비를 쥐어주는 거였다. 결정적으로 파리*게뜨 소세지빵까지 줬을 때는 여기 숨겨진 대감집인가 싶었다. 쌓여있는 빵을 보고 붙으면 여기 와야지 결심했다. 소세지빵이 내 운명을 뒤흔들다니... 지금보니 마음 약해져 있을 때 정신 똑바로 차려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세지빵 버프였는지 아니면 운때가 맞았는지 그날의 면접은 내 인생 최고의 면접이었다. 그간 숱하게 말아먹은 면접을 보상이라도 받듯 지원자들 사이에서 나는 독보적이었다. 그야말로 고인물 취준생의 면접 꿀팁 대방출의 현장이었다. 아무리 면까몰*이라지만 이게 불합격이면 낙하산 채용 밖엔 설명할 길이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며칠 뒤 "최종 면접 결과 발표"로 시작되는 메일을 받았다.


[파서블 렌즈] 최종 면접 결과 발표


박두릅님, 파서블 렌즈 신입사원 최종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아래와 같이 입사 관련 안내 드립니다.


- 입사일: 6월 1일 오전 9시 (기숙사가 제공되오니 필요하신 분은 알려 주십시오.)

- 복장: 비즈니스 정장

- 구비서류: 첨부파일 확인, 입사 당일 지참

※ 건강검진은 가까운 병의원에서 진행하시고, 입사 당일 결과지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여러 전형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파서블 렌즈 인사팀 나덕희 대리 드림


반전 없는 최종합격, 장기 백수생활 드디어 청산이었다!



*면까몰: 면접은 까보기 전엔 결과를 모른다는 뜻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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