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이름이 없는 어른이다. 성도 이름도 지워진 채 그저 '아저씨'라는 보통명사 속에 갇혀버린 사람. 하지만 그 호칭 덕분에 그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무해한 사람이 된다."
“자기야, 여기 와서 인사 나눠요. 여기는 오늘부터 함께 근무할 서현씨, 그리고 이쪽은 음... 우리 아저씨. 서현씨가 주말 근무니까 아마 아저씨를 자주 보게 될 거예요.”
신년이 되면서 아르바이트 학생이 새로 왔다. 기존에 함께 하던 지민씨가 졸업반 인턴 활동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고, 몇 주 전에 친한 친구와 함께 와서 인사를 나누고 면접을 보고 함께 일하기로 확정했던 터다. 그 친구가 오늘 첫 출근을 해서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매장 오픈 준비는 어떻게 하며, 케이크는 어떤 종류가 있고, 쇼케이스에 케이크는 어떻게 진열하는 게 효과적이며, 박스 리본은 어떻게 이쁘고 깔끔하게 묶으며, 에스프레소 머신은 어떻게 다루는지 차근차근히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매장 내에서 나의 직책은 아저씨다.(직급으로 따져도 아저씨다. 그냥 통칭 아저씨다.) 가게를 오픈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이 호칭은 변함이 없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에게 나를 소개할 때,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며 어떤 역할을 하는 분인가 궁금해하는 표정의 새 직원에게, 써니는 명확하고 단호하게 나를 ‘아저씨’로 규정해 준다. 그 세 음절의 단어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네가 궁금해할 것 같은 저 사람은 법적으로 내 남편이며, 가게에서는 아저씨라 불리며, 평일에는 본인 직장 다니느라 마주칠 일 없긴 한데 퇴근 후나 휴일에는 가게 한 켠에 소품처럼 머무는 사람이니 얼굴은 익혀둘 필요가 있으며, 그렇다고 딱히 매장의 업무를 도울 거라 기대할 사람은 아닌 그런 ‘아저씨’라고.
생각해 보니 이 호칭은 매장 오픈 때 첫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정윤씨 때부터 시작되었다. 써니는 정윤씨에게 ‘사장 남편’이 처음인 나를 ‘아저씨’로 소개하며 정의해 주었다. 정윤씨는 대학생이었지만 이미 여러 매장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풍부했었는데, 특유의 붙임성과 해맑음으로 낯설 수밖에 없던 아저씨의 신분을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 주었다. 이 친구는 숫제 친척 아저씨 대하듯 스스럼없는 말투로 나를 대했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매장에 들르면, “아저씨, 왔어? 많이 늦었네?”하며 주방에 있는 써니보다 먼저 나의 퇴근을 반겼다. “아저씨, 커피?”라는 짧은 말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평일 낮에는 IT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 신분으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고객을 만나서 협의하고 팀원들을 이끌고 업무상황을 보고하며 바쁘게 지낸다. 그러다가 퇴근하면 ‘아저씨’ 신분으로 바뀐다. 딱히 정해진 역할은 따로 없다. ‘아저씨~’라고 불린 후 뒤에 붙는 각종 청유형 동사를 구체적으로 몸으로 실행하면 된다. 레몬청 병뚜껑을 열어 달라, 천장 전구를 갈아 달라, 변기 상태가 예사롭지 않으니 살펴보고 조치해 달라, 단체 손님 오신다니 테이블 좀 배치해 달라, 매장 앞 낙엽 좀 쓸어 달라, 재활용품 좀 버려 달라 등등 주방 공간을 제외한 소소한 일을 맡는 게 아저씨로서의 R&R(Roles & Responsibilities, 역할과 책임)이다.
‘아저씨’라는 직급은 어찌 보면 참 매력 있다. 사회생활 속 직급과는 달리, 무게감 없고, 거리감 느껴지지 않고, 크고 중대한 이슈보다는 소소한 문제를 소소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 같은 세상 친근한 존재로서의 호칭이다. (아저씨 직급을 표시한 명함을 하나 제작할까 궁리 중이다.)
오늘도 매장 한 켠에 손님인 듯, 소품인 듯 자리 잡고 앉아서 ‘아저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저씨, 밥 먹으러 가자’는 호출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