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소나기마냥 순간 흩뿌리고 지나간 오늘, 아니나 다를까 낯선 우산이 하나 늘었다.
비나 눈이 내리는 날, 하루 종일 내리는 게 아니라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변덕 심한 날이면 여지없이 손님이 잊고 간 잃어버린 우산이 매장 입구 우산꽂이에 한두 개씩 꽂혀 있다. 다시 찾으러 올 거라 믿으며 그대로 꽂아둔 채 기다려 보지만, 일주일 아니 한달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마주친 손님들이 더러 빌려가기도 한다. 좀 많아졌다 싶을 때에는 한 번씩 정리를 하는데, 그러고 나서 또 비나 눈이 오고 나면 주인 잃은 우산이 화수분마냥 다시 생긴다.
의외로 나는 좀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전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분실 경험이 적다고 나름 자신할 수 있다. 지갑, 휴대폰 등도 누군가 고의로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어딘가 두고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가 한참 내리다가 갠 날이더라도 우산을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경우도 별로 없다. 써니가 신기해할 정도로 꼬박꼬박 물건을 챙겨서 나온다. 그만큼 모든 것(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것마저도)에 신경이 곤두선 채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이 되면 겨울채비 일환으로 해묵은 장갑과 목도리를 챙긴다. 둘 다 십 년이 훌쩍 넘은 - 언제부터 내 소유였던지 기억나지 않는- 것들로, 써니가 올해는 새로 하나 장만해 주겠다고 챙기지만 굳이 한사코 쓰던 물건을 고집한다. 아마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닳고 낡을 때까지 겨울마다 착용하게 될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신기해한다. 여전히 같은 장갑과 목도리를 쓰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그걸 수년 동안 잃어버리지 않고 챙겨 다니는 것에 대한 경탄이다.
언젠가 한 번 페이스북에 올렸던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이 떠올라서 다시 글로 옮긴다. 내가 생각하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는 법’은 아래와 같다.
1. 계속 착용하고 있으면 잃어버리지 않는다 : 간단하다. 잃지 않으려면 끼고 있으면 된다. 벗어두는 것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2. 중간중간 자꾸 확인한다 :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면 틈나는 대로 수시로 확인한다. 잠시 잊고 있었다고 깨달을 때면 무조건 호주머니를 더듬어 제대로 있나 체크한다.
3.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 온종일 끼고 있을 수만은 없다. 벗어두게 되면 최대한 눈에 보이는 곳에 두면 된다.
4. 남들도 볼 수 있도록 알린다 : 굳이 남들이 봐서는 안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면 남들 눈에도 잘 띄는 곳에 둔다. 내가 잊어버리고 자리를 뜨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챙겨준다.
5. 언제든 꺼내기 쉬운 곳에 보관한다 : 잠시 사용을 접어두어야 할 때는 평범한 장소에 보관한다. 너무 특이한 곳이 아니어야 한다. 너무 엉뚱한 곳에 처박아두면 ‘증발’한다. 언제든지 다시 꺼내쓸 수 있는, 접근이 쉽고 익숙한 곳에 보관한다.
‘꿈’이라는 게 어쩌면 이것과 닮았다. 인생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인데도 여전히 ‘꿈’이라는 것을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과 ‘꿈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요령이 필요하다.
1.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 간단하다. 잊지 않으려면 나아가고 있으면 된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2. 중간중간 자꾸 확인한다 : 마음 속 간직한 꿈을 수시로 확인한다. 잠시 잊고 있었다고 깨달으면 무조건 다시 꿈을 상기하여 체크한다.
3. 눈에 보이는 곳에 새긴다 : 매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수만은 없다. 멈춰있거나 다른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경우라도 최대한 눈에 보이는 곳에 꿈을 새겨둔다.
4. 남들도 알 수 있도록 선언한다 : 굳이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성격의 꿈이 아니라면 남들에게 자신의 꿈을 선언한다. 내가 꿈을 잊어버리고 방황하더라도 누군가는 나의 꿈을 챙겨준다.
5. 언제든 다시 꿈을 꺼낼 수 있는 곳에 보관한다 : 꿈이 현실이나 여건 등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잠시 접어서 넣어둘 필요도 있다. 이때, 꿈의 보관 장소는 너무 특이한 곳이 아니어야 한다. 너무 엉뚱한 곳에 처박아두면 ‘증발’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상황이 되면 다시 꿈을 꺼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시간이 흘러 새해가 되었고,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냈다. 해묵은 오래된 낡은 장갑같은 꿈이다. 그 꿈의 일부가 바로 이 글이 담기는 이 공간이다. 써니의 케이크 매장을 소재로 소소한 일상다반사를 책에 담겠다는 게 최근 수년간 묵혀두었던 꿈이다. 개점 스무 해를 자축하는 의미에서, 평범한 기념품 대신에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책 출간을 꿈꿨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접어두었던 꿈을 꺼냈고, 이렇게 남들도 알 수 있도록, 내가 게을러지더라도 챙길 수 있도록 선언한다. 장갑 따윈 수없이 잃어버려도 되는데, 부디 소중한 꿈은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이뤄나가길 소망한다.
비가 그쳤다고 우산꽂이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연고 우산들처럼, 내 꿈이 어느 한 시절의 치기와 변덕으로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장갑을 낀 손을 수시로 쥐었다 펴며 온기를 확인하듯,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며 내 꿈의 온도를 확인해야겠다. 낡았지만 여전히 따뜻한 내 장갑 같은 이 꿈이, 마침내 한 권의 책이라는 결실로 내 손을 맞잡아줄 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