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슬슬 매장 정리를 하려는 참이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매가 문을 들어서며 케이크 구매가 가능하냐고 묻는다. 우리는 웃으며, 아직 마감시간 전이라며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한다. 근처 학원에서 수업을 듣다가 잠시 짬을 내어 서둘러 나온 듯하다. 둘은 쇼케이스에 진열된 케이크들을 꼼꼼히 살피며 도란도란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 대화에 굳이 껴들지 않고 짐짓 기다린다. 한참을 고르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 드디어 결정한 듯 케이크를 주문한다.
저기, 레몬치즈케이크로 하나 주세요.
스몰 사이즈... 저 제품 말씀하는 거죠? 초는 몇 개 챙겨드릴까요?
초는 음, 17개 챙겨주세요. 긴 거 1개, 짧은 거 7개.
네, 생일케이크를 사나 봐요?
아뇨, 저희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라서 선물해 드리려구요.
서로의 백팩 뒷주머니를 열어서 카드지갑을 꺼내든다. 결제는 정확히 반으로 나눠서 해달란다. 매장에 방문하기 전에 서로 룰을 정했나 보다. 학원에 다니면서 간식을 사먹으라고 준 카드일 것 같은데, 용돈을 아껴서 부모님 결혼 기념선물을 마련하는 그 모습이 귀엽고 대견하다. 남학생이 케이크 상자를 조심히 받아들고 나서고, 여동생이 뿌듯한 표정으로 뒤따른다. 식탁 가운데 애들이 챙겨준 케이크를 놓고 8개의 초에 하나하나 불을 붙이고 즐겁게 축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소원을 빌며 초를 불어 끄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축하와 축복의 자리에 우리 케이크가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리진 않겠지만 마음 속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얹는다.
문득 이어령 선생님께서 작고하기 전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난다. 조선일보 김지수 기자가 인터뷰어로 참여하여 진행했던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라는 제목의 인터뷰다. (출처 :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중에서)
김지수 : 87년간 행복한 선물을 참 많이 받으셨지요?
이어령 : 그랬죠.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요즘엔 생일케이크가 왜 그리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걸 사 가는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여(웃음). "초 열 개 주세요." "좋은 거로 주세요." 그 순간이 얼마나 고귀해. 내가 말하는 생명 자본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기가 먹을 빵을 생일 케이크로 바꿔주는 거죠. 생일 케이크가 그렇잖아. 내가 사주면 또 남이 사주거든. 그게 기프트지. 그러려면 공감이 중요해요. 공의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예요.
자기가 먹을 빵을 생일 케이크로 바꾼다. 자신을 위한 빵은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이의 생일 케이크는 특별한 이벤트다. 자신의 일상을 타인의 기념일에 양보하는 게 생일 케이크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대물림이 되어 건네진다. 그것이 선물이며, 그것이 공감의 의미일 게다. 그 말씀에 실린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매일 '생존을 위한 빵'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가끔은 '공감을 위한 케이크'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일상을 기꺼이 접어 누군가의 특별한 날을 세워주는 마음이야말로 차가운 공의(公義)보다 따뜻한 공감(共感)이 먼저임을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장 불을 끄고 퇴근하는 길, 아까 그 남매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밤,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공감'을 선물 받았을 것이다. 나 역시 내일은 누군가를 위해 내 몫의 빵을 기꺼이 케이크로 바꾸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