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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Nov 28. 2022

아이와 함께 떠돈다는 것

에어비앤비에 체크인했지만 생각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우리는 주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계속 찾아보고 있다.


9월 말 싱가포르를 떠나 자카르타로, 남편 고향인 끄따빵으로 다시 자카르타를 거쳐 발리 게스트하우스, 에어비앤비로 우리는 짐을 싸고 풀고를 반복했다.  대부분 시어머니 댁, 형님댁에서 같이 지냈기에 객식구 생활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사촌동생, 다른 친척들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는 낯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이든 같은 또래 아이들에게든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보다 글이 편한 내향적인 나와는 참 다른 아인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느끼는 요즘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근 두 달간 우리 아이는 놀랄만한 사회성을 보여주고 있다. 싱가포르에 살 때도 동네 산책 한 번 나가면 지나가는 강아지마다 인사해주는 것은 기본 본인 또래의 아이들이 지나가면 통성명을 꼭 했던 딸아이였다. 시어머니 댁에 묵는 동안은 오고 가는 수많은 동네 아주머니들, 시어머니 친구들, 남편 친척, 친구들에게까지 낯을 가리지 않고 말을 걸어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고 귀여워하셨다. 발리에 와서도 그녀는 여전하다. 길에 떠도는 모든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탓에 우리가 경고 아닌 경고를 주어야 할 때도 있었고 놀이터가 있는 식당에 가면 놀이터에서 친구를 사귀어 그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까지 받아올 정도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땅에 덜컥 아이까지 데려와 삶을 꾸리는 여정에서 아이의 적응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중요했다. 막연하게 “나윤이는 사교적이니 가서도 잘 적응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이의 적응력”은 사회성, 사교성으로 끝나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시시각각 바뀌는 하루 일정과 식단 속에서도 무엇이든 잘 먹고 잘 자는 것, 그리고 제한적인 놀거리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 등등. 최소한의 짐으로 움직이는 우리의 짐가방에 아이 장난감이라곤 아이가 아끼는 인형 몇 개와 자카르타에서 맞이한 네 번째 생일에 받은 장난감 차 두어 개, 색연필이 전부인데도 아이는 그것만 가지고도 실내에서 시간을 참 잘 보내준다. 상황이 우리 맘같이 돌아가지 않을 때 우리가 풀이 죽어있으면 (놀랍게도) 나에게 다가와  “엄마, 스마일!”이라고 상기시켜주며 본인도 싱긋 웃는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지 까먹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과 종종 이야기한다. 우리 단둘이었다면 이곳으로 이주해오는 게 참 편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 우리 둘은 아무 곳에서 자도 되고 아무것이나 먹어도 괜찮을 텐데 아이를 생각하면 아무 곳에서 잠을 청하고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 둘 뿐이라면 게스트하우스든 집이든 하루에 오토바이 타고 열 곳은 족히 둘러볼 수 있을 텐데 아이와 함께라면 중간중간 쉬어야 하고 놀이터도 한 번씩 가야 한다. 당연히 시간과 공이 많이 든다.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다가 문득 한 명이 이야기한다. “근데 우리 발리 오고 싶었던 게 나윤이를 이곳에서 키우고 싶어서였잖아. 애초에 둘이 온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그렇다. 우리는 아이가 이 모든 여정의 동기이자 시작이었던걸 종종 잊는다. 이곳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건 사실 우리가 아니라 이 아이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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