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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Dec 09. 2022

우리 집은 어디에

발리에 들어온 지 2주가 되어간다. 그간 두 번 숙소가 바뀌었고 지난 번 에어비앤비에서 체크아웃한 이후 그 주변 게스트하우스 방을 한 달간 빌렸다. 방값은 우리 돈으로 40만원. 발리 전통 주택 형태에 한 채에는 주인 가족이 거주하고 나머지 몇 채에 손님들 방이 칸칸이 있는 전형적인 이 곳 게스트하우스인데 시설이 특별히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방을 둘러볼 때 무척 깨끗했고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셨다. 무엇보다 마당에 새 여러마리 (심지어 부엉이까지…)가 있어서 나윤이가 좋아했다.


아이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엄마, 여기가 우리 새집이야? 너무 좋다! 여기가 최고 좋아!“라고 하며 미소를 짓는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점점 저렴한 숙소로 바뀌고 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깥마당에 새가 있어서 좋고, 바닷가에 가까워서 좋고, 항상 좋은 점 투성이이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숙소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기분이 가라앉았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이 곳에서 집을 찾는 과정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지역은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많이 살고 아이가 다닐만한 학교들에서 멀지 않은 르논 및 주변 지역이다. 온라인으로 매물들을 찾아보고,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은 얼마나 되는지, 집에 작은 마당은 있는지, 집밥 먹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요리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주방이 있는지, 화장실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우리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걸까, 우리의 예산이 너무 낮았던걸까. 사진만으로도 우리가 직접 가보고픈 집 자체가 많지 않았다.


우리의 처음 계획은 아이를 오전에 키즈카페 일일 교실에 잠시 맡기고 집을 둘러보는 것이었는데 아이와 너무 오랜 시간을 같이 붙어있어서인지 우리가 게을러서였는지 결국 우린 아이를 오토바이 가운데 앉히고 뜨거운 태양아래 집을 보러다녔다. 발리에서장기 체류자 혹은 현지인과 단기 관광객들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오토바이를 탈 때 긴 팔, 긴 바지를 입는지 아닌지 일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오토바이를 타면 5분만 달려도 살갗이 얼마나 금방 타들어가는지 모른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집을 보러갈 때마다 위 아래 중무장을 하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모든 집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물론 단점만 있는 집도 있었다.) 나름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으로 꼼꼼하게 둘러보고 추린 집들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주방과 화장실이 너무 오래된 곳이 많았고 주인은 임대를 위해 고쳐줄 생각이 별로 없어보였다. 발리는 중개인에게 주인이 집 키를 맡겨놓지 않고 여러 중개인들과 연계하는 경우가 많아서 중개인에게 연락을 해도 바로 집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간 우리는 맘에 든다 싶은 곳을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보고 그 담당 중개인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가끔은 아예 답이 없기도 하고, 이미 세가 나갔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발리 특성인지 주인은 따로 있고 세를 협상하고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어 그 경우엔 중개인-관리자-집주인 경로로 의사소통을 해야해서 불편하기도 했다. 중개인들은 그들대로 만약 우리가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되면 가끔 집주소에 있는 집주인 정보로 중개인들을 제하고 주인과 바로 세 협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주소를 약속시간 1시간 전에나 문자로 알려주는게 일상이었다.


한번은 중개인이 아직 주인에게 집 열쇠를 받지 못했다고 했던 약속을 취소했는데 이미 그 주변 지역에 도착했던 우리가 동네 골목길을 하나하나 구경하다가 우연히 그 집을 발견하고 그 타이밍에 집 앞에서 길을 쓸고 있는 땅주인 아저씨에게 집주인 번호를 받아 연락해서 결국 집을 둘러보기도 했다. 마당이 넓고 집이 크지 않은데다가 세도 저렴한 집이 있어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복잡한 토지, 집 소유 관계 (땅주인아저씨는 앞 길을 쓸고 있는 발리인 아저씨였지만 집을 임대해주는 사람은 또다른 발리인과 결혼한 러시아 아줌마, 하지만 외국인은 집이나 땅을 소유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의 실정에 따라 아줌마의 시어머니가 우리와 계약을 맺어야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땅주인 아저씨에게 땅을 빌려 집을 지은 집주인 발리인 남편이 최근 죽고 집이 러시아인 아내가 아닌 시어머니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안그래도 발리에는 집을 빌리려는 외지인들 상대로 사기치는게 기승이라 집소유 문서 땅소유 문서를 확인하는게 중요한데 이렇게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다니… 게다가 우리가 입주 전 요청했던 망가진 샤워부스를 교체 해주지 않겠다고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을 볼 때마다 느꼈지만 우리가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지저분한 구석을 지적하면 집주인들은 우리가 별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싱가폴, 한국의 깔끔함에 익숙했던 우리가 그들에겐 유난스러운 사람들로 비춰졌던 것이다. 아마 이 곳 사람들은 집을 빌릴 때 하자가 있어도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고 빌리고 빌려주는 사람도 굳이 완벽하게 고쳐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못 구멍 하나, 벽에 있는 자국 하나에도 트집을 잡으며 보증금을 덜 돌려주려는 싱가포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미 치수도 다 재고 머릿 속으로 어떤 가구를 사서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까 즐거운 상상까지 다 끝내놓은 우리 집이 될 뻔한 곳과의 계약이 물거품이 되고 우린 서로 말은 안했지만 살짝 절망했다. 우리의 예산으로는 우리 눈에 차는 곳을 구하기는 어려운가. 이 뙤약볕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처음부터 집을 보러다녀야하다니… 이쯤되니 웹사이트에는 우리가 이미 본 집 아니면,  연락했지만 이미 세가 나갔거나 답이 없었던 집밖에 남지 않았다. 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러시아인들이 발리로 피난을 와 이 곳 임대물가가 올랐다는 말이 사실인듯했다. 발리 어딜 가도 러시아어가 들리니 말이다.


절망에 빠져 매일 밤을 웹사이트를 뒤지며 몇 날을 보내고 우리 마음에 드는 매물이 올라왔는데 중개인이 실수인지 주인의 연락처가 찍힌 사진을 지우지 않고 사이트에 올려 우리는 중개인이 아닌 집주인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집주인은 본인 집 상태가 완전 최상급이라 이 집을 잘 관리하고 아끼며 써줄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깔끔한 한국인 아내와 싱가포르에서 오래 머문 인도네시아 남편에 네살짜리 아이 이렇게 세 가족이니 집 관리는 자신있다며 우리를 어필했다. 집주인이 인터넷에 게시한 가격은 우리의 예산보다 훨씬 높았지만 우리가 여태까지 봐온 매물들 - 가구와 가전이 이미 있는 집이라면 집과 안 어울리고 너무 오래되어 무너지기 직전인 가구들에 얼룩이 가득한 매트리스들 아니면 가구와 가전이 하나도 없는 집이라 에어컨부터 소파, 식탁까지 우리가 다 채워야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집들에 비하면 모두 새가구와 새 가전에 집주인이 적당히 인테리어도 해놓은 듯한 곳이어서 한번 먼저 둘러보고 가격 협상을 해보잔 생각이었다. 위치는 예전 우리가 계약하려던 곳보다 중심가에서 약간 멀어진 듯 했지만 옆이 논밭이라 뷰가 좋았고 집이 무척 깔끔했다. 중개인을 빼고 집주인과 직접 협상을 해서 가격을 우리가 생각하던 가격에 맞출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어머니나 친정식구들이 방문하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손님 방이 생겨서 좋았다. 뷰잉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집주인에게 바로 연락을 했고 집주인도 우리가 첫번째 뷰잉이었다며 우리에게 세를 주겠다고 흔쾌히 답을 했다. 아직 계약서를 쓰진 않아서 축배를 들기는 이르지만 부디 이 방랑생활이 곧 끝나길… 크리스마스는 조촐하더라도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 맞이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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