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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Dec 16. 2022

우리 집은 어디에 - 2

결국 계약 직전까지 갔던 두번째 집은 또 우리의 맘 속에서 보내줘야했다. 계약서를 쓰자고 연락하던 당일까지도 주인행세를 하던 젊은 남자는 계약을 하면 당연히 세입자에게 보여줘야할 집문서도, 집주인 신분증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본인 말로는 집은 장인어른 소유인데 장인어른이 워낙 발리에서 한가닥하는 중요한 인물인지라 이런 계약까짓거에 신분을 함부로 노출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중요한 인물이어도 그렇지 집문서도 없이 집주인도 없이 계약을 하자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놓치기 아까운 조건의 집이었지만 우린 눈물을 머금고 또 우리가 맘에 들었던 두번째 집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다.


매번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집주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과 세 협의가 되어 계약직전 이런 복잡한 관계로 계약이 파토나기 전까지 우린 마음 속으로 이미 두 번이나 이사했다. “이 방에는 퀸사이즈 침대를 놓아야하나 아님 손님방이니 싱글이면 충분하려나”, “계단이 많은데 나윤이가 오가다가 미끌어지진 않으려나”, “여긴 소파를 치우고 다이닝 테이블을 놓아야겠다”… 같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 뚜둥 역시나 보여줄 집문서가 없단다. 우리한텐 너무도 당연한 기본적인 집문서가 없다니… 우리가 집을 볼 때마다 “집문서가 있느냐”고 물으면 “가족 땅이라…“ 혹은 ”이웃한테 물어보면 이 집이 누구 것인지 알려줄꺼다“ 등등. 우린 그저 우리 세 식구가 편하고 안전하게 살 작은 집이 필요한 것뿐인데.


그와중에 크리스마스는 점점 다가온다. 싱가포르 있을 때 진짜 크리스마스 나무를 미리 예약하고 픽업해서 12월 초면 코딱지만한 우리 집에 집채만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들여놓고 자랑스러워하던 우리 남편. 올해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커녕 트리를 들여놓을 집 한 칸 없이 세 식구가 떠돌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한창 기다릴 나이인 나윤이가 주 3일 가는 키즈카페 교실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 장식을 만들어왔는데 달아줄 트리가 없다. 그래도 해맑기만한 우리 딸은 처음 만난 친구와 베프가 되어 그 친구를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초대했단다.


처음에는 이 과정도 즐기자 생각했었다. 이 때 아님 이렇게 바닷가 가까이 언제 살아보겠어. 집은 천천히 찾아보면 되지. 그런데 점점 힘에 부쳐온다. 맘에 들던 집을 두 번이나 마음 속으로 살아보고 보내버리니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 분위기를 띄우려고 틀어놓은 캐롤이 게스트하우스 한 켠 우리 방에서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크리스마스는 새로 구한 집에서 보낼 수 있을꺼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이 모든 정착의 과정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나보다.


마음은 문드러져가지만 옆에서 더 고생하고 있는 남편때문에 울지 못한다. 부모님께는 속상하실까봐 자세하게 말하지 못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 바닷가에서 놀고있는 아이 사진만 이따금 올린다. 언젠가 이 시기를 추억할 날이 오기는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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