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아이와 나란히 누워 두 세권의 책을 읽어준 후 불을 끄기 전 ”잘 자 우리 딸” 이라고 하면 보름날 휘영청 밝은 보름달 같은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세상에서 엄마 제일 사랑해, 아빠도” 하고 내 품을 파고드는 순간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잠들기 전 아이의 사랑고백을 받고난 후 새삼스럽게 벅찬 마음으로 나는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표현해본 적이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나 또한 그런 사랑의 직접적인 표현을 들으며 자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의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아침 일곱시면 차려지던 갓 지은 밥과 반찬이었고
매일같이 빳빳하게 다려져 걸려있던 내 학창시절 교복 블라우스였고
내 결혼식날 남몰래 훔치던 엄마의 눈물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자란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 뿐인줄 알았다. 더운 날 수시로 갈아입는 남편의 옷을 매일 빨고 개어 넣어놓고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 곁에서 부지런히 다 쓴 도구들을 설거지해주는 그런 사랑.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사랑한다는 말에 궁색한 나와 달리 내 눈을 수시로 바라보며 예쁘다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남편의 어머니, 즉 우리 시어머니는 지금도 나와 헤어질 때마다 나를 안아주시고 볼에 뽀뽀도 해주신다.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이니 오죽하랴. 자존감이 높지 않은 나는 그런 남편의 표현방식이 좋았다.
그 덕에 나의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듣고 자랐고 아빠를 닮아 사랑을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나를 보면 “너는 엄마랑 아빠의 좋은 점만 쏙쏙 빼다 박아 예쁘구나” 하시곤 했는데 그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남편의 모습을 꼭 빼닮은 우리 아이. 매사에 현실적(비관적)이고 표현에 인색한 나와 긍정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남편을 닮았다. 그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