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단어로 필연한 문장을 씁니다.
동사
1. 액체가 묻어서 차차 넓게 젖어 퍼지다.
2. 병이나 불, 전쟁 따위가 차차 넓게 옮아가다.
3. 말이나 소리 따위가 널리 옮아 퍼지다.
4. 빛, 기미, 냄새 따위가 바탕에서 차차 넓게 나타나거나 퍼지다.
5. 풍습, 풍조, 불만, 의구심 따위가 어떤 사회 전반에 차차 퍼지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은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 <수묵 정원 9 - 번짐> 중, 장석남 -
‘번지다’라는 단어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고등학생 때 장석남 시인의 ’ 번짐‘이라는 시를 읽고 ’ 번지다 ‘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다.
나는 항상 고정된 가치 혹은 개념과 개념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의심하고 경계하는 편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보는 모든 것들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언제든지 그 의미나 가치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살아간다. 그런 나에게 ‘번짐‘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의 해결책 혹은 방향성이 되어주었다.
‘번지다’가 가진 의미는 굉장히 많지만, 공통점은 명확한 경계 혹은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그 주변으로 점차 퍼져 나가며 그 영향력의 범위를 넓혀 간다. 또한, 물감이 번질 때를 생각해 보면 번져감에 따라 색 또한 옅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번짐의 대상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벌써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삶을 설명할 때 죽음을 빼놓을 수 없듯이, 경계가 명확해 보이는 개념 사이에도 긴밀한 관계로 이어져 있다. 상반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사실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기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삶이 죽음으로 한 번에 뒤바뀌는 것이 아닌, 점차 번져가며 삶이 죽음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우리의 하루는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게 번져가며 조금씩 그리고 점차 변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