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루루루

피서용

by 글담

새벽 3시 30분. 뚜루루루. 뚜루루루. 누가 내 현관문 앞에서 통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백색의 비디오폰 화면을 본다. 아무도 없다. "어디서 장난질이냐." 윽박지르면서 문을 연다. 발 끝에 뭔가 툭. 문 앞에 낡은 곰인형이 놓여 있다. 군데군데 터진곳이 있다. 일으켜 세우면 사람 키보다 클 것 같다. 솜이 터져나온 곰 발 옆에 화분이 있다. 거의 지워진 푯말에 사랑목이라고 쓰여있다. 화분에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 너머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하는 자가 저기에 있다. 방화문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걸까. 연결음은 문 전체를 타고 울리고 있다.


방화문과 현관문 사이에 엘리베이터 2대가 있다. 11층과 1층에 서있다. 여기는 18층.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15분간 누구도 이용하지 않으면 11층과 1층에 파킹한 상태로 대기한다. 누가 저 문뒤에 있든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게 틀림없다.


계속 통화연결음이 들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화분이 계속 눈에 밟힌다. 방화문으로 가보자. "스륵 스륵" 슬리퍼 끄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방화문은 계속 공명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앗 차거!" 열대야가 한창인 여름밤에 있을 수 없는 표면 온도다. 아니 있어서는 안되는 문고리다.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방화문에 잠금 장치가 없는게 새삼스럽다. 열어야할지 말지. 내 온몸의 신경은 열지말고 돌아서라고 외치고 있다. 방화문이 열리고 있다.

"응?" 허무하다. 방화문 뒤에 누가 핸드폰을 청테이프로 붙여놨다. 화면을 봐야겠다. 누구인지 확인해야만 한다. 도대체 누구지? 이 새벽에. 장난치고는 심하잖아. 문을 닫고 화면을 들여다보려하니 노란 빛의 센서등이 꺼진다. 계단실에는 푸른 빛만 돌고 있다. 다시 화면을 들여다본다.

"105동 18층" 계단실 창문으로 105동이 보인다. 18층. 건넛동 같은 층에 센서등이 켜있다. 누군가 서있다.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장난질을 쳤구나. 그 때 105동 그자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로 자아아..." "뭐라고?" 중얼거리고 뭐라는지 들리지 않는다. '멍충이 창문을 열어야지' 하며 내 앞의 창문을 열고 닫으며 이렇게 하라고 보이며 알려줬다. 이제 눈치를 챘는지 창문을 여는게 보인다.

"그래 그자야!"

젠장! 뒤를 돌아보니 곰돌이가 서있다.
화분을 손에 쥔 곰인형의 팔은 내 머리를 조준하고 있다.

"쿵"

'툭' "사랑목"이라고 쓰인 푯말이 눈 앞에 떨어졌다.

"사랑을 담아. 장 레오."
내 이름이 왜 여기에 있지...

105동 18층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 의자에 오른다. 땅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나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105동 18층에 목을 매단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저자가 범인이다.


내 엄지 발톱이 보인다. 붉은 하트의 패디큐어가 칠해져 있다. 누구지 누가 발랐지. 언제. 왜. 패디큐어라니...눈앞이 흐리다.

왜... 내 이름이 내 이름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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