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너 파티에 다녀오는 길이다. 운전대를 두 손으로 쥐고 있다.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이 내리고 있다. 밤이라서 앞도 잘 안 보인다. 코냑을 몇 잔 마셨지만 이런 날에는 자신있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장담컨데 오늘은 음주 측정 절대 안 한다.
눈을 가늘게 뜬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디너 파티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은수저 세트가 보조석에 잘 놓여있는지 흘끔흘끔.
'무사히 있군'
경품 행사에서 아무것도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모두에게 하나씩 줬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태풍 때문에 사람이 많이 안와서 경품 하나 쯤 탈 줄 알았는데 나만 못 탔다. 재수도 없지.
아침 저녁으로 늘 지나는 길은 군데군데 파여있다. 이 길에 들어서면 주의해야한다. 언제 바퀴가 푹 꺼진 도로에 빠질지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지방자치단체는 도무지 도로 보수 의지가 없다. 도로에 문제가 생기면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된다.
쿵. 삐이이이이...
방금 전에 홈이 파인 곳을 지나갔나보다. 귀에서 이명까지 들린다. 강한 충격이었다. 비 때문에 도로면이 잘 보이지 않아 피하지 못했다. 엄청난 구멍에 재수없게 걸렸나보다. 차에게 미안하다고 모두 도로탓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하나 뿐이다.
'어? 누가 있다.'
다리를 절며 걷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땅에서 굴렀는지 바짓단에 진흙 투성이었다. 차를 곁으로 대고 천천이 창문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세요~?!"
"요 앞 병원까지 좀 태워다 주세요."
낮은 목소리로 의외로 침착히 말했다. 조수석 문을 열고, 후드득 거리는 빗소리와 함께 그가 차안으로 들어왔다. 인조가죽 시트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번쩍번쩍 빛났다.
"사고 났었나봐요?"
"그렇습니다"
"많이 다치셨어요?"
"아프지는 않아요"
더 말을 걸어볼까하다가 괜한일이라는 생각에 관뒀다. 나만큼이나 말수 적은 남자다.
병원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혹시라도 내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큰일이니 병원 근처까지만 태워다줘야겠다. 이 남자 아까부터 조수석에 둔 은수저 세트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신경쓰인다.
"다 왔어요. "
"같이 안 내리나요?"
"네? 아 네, 죄송해요. 좌회전 해야해서요.
오른쪽으로 돌면 병원이 코 앞이에요. "
"...어쨌든 고맙습니다."
나도 병원 앞으로 지나가야하지만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었다. 원을 그리듯 차를 몰아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좌회전, 좌회전, 좌회전, 좌회전.
우회전.
헉.
그 남자가 여전히 병원 앞에 서 있다.
옆구리에 내 은수저 세트를 끼고 있다.
저 나쁜놈!
설까말까 설까말까...에잇
병원까지 태워준다고만 했지 집까지 태워준다고는 안 했다. 은수저 세트는 그냥 줘버리자.
백미러로 뒤를 보니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기분 나빠. 빨리 집에 가자. 속도를 좀 더 내자. 더 빨리 더 빨리 집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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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쪼개질듯한 두통에 잠이 깼다. 어제밤에 병원 앞을 지난 후에 집에 어떻게 왔는지,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봤다. 오른쪽 식탁 위에 은수저 세트가 놓여있다.
'뭐지...어제 분명히 그 남자가 들고 있었는데...저게 왜...'
이해가 잘 안 됐다.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해야겠다. 차로 갔다. 블랙박스가 있었으니 찍혀있을거다.
철컥. 텁.
문을 닫고 시동을 켰다. 다시보기를 눌렀다.
'그래 저기...저기는 기억나지.'
그 남자가 타는 모습, 내리고 내가 휘파람 불면서 네 번의 좌회전을 하는 모습. 병원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까지...
있어야 하는데...
있어야 하는데...
없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하다.
외부 블랙박스가 뭔가 이상하다.
어? 내 차가 왜 빙글빙글 돌고 있지?
어?
/ ...아침 뉴스 입니다. 빗길 사고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157번 국도에서 차량 한대가 가드레일을 넘어 산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차량 운전자는 병원으로 이송 중에 사망했습니다... /
(TV 화면 귀퉁이에 은수저 세트가 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