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완결, 퇴원
아침이다. 부스스. 가늘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초점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눈을 다시 감는다. 의식이 꿈에서 돌아올 동안 기다려 주자.
사방이 강철이다. 흔들림은 없다. 벽에 동그란 유리가 박혀있다. 강철같이 단단해 보이는 창이다. 밖을 바라본다.
"바다?"
난 배 안에 있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된다. 자고 있는 옆 사람을 깨우자.
"저기요 저기요 여기가 대체 어디죠?"
"(욕은 생략) 여기? 타이타닉 호!"
아... 기억이란 녀석이 말한 분기점이 바로 여기군. 내가 타이타닉을 모른척해야 살아 나갈 수 있다...밑져야 본전. 해보자.
"에이. 선생님 무슨 농담을 이리 잘하세요."
"아, 너 어제 머리를 다치더니 어떻게 됐냐"
"여기가 타이타닉이면 저는 디카프리오예요"
"디카프리오? 무슨 말이냐. 너 청소하러 가기 싫어서 꾀부리는거냐?!"
"아아 알았다. 지금 내 꿈 속 이구나!"
"헛소리 그만하고 1등칸 흡연실 청소해!!"
"늬에늬에 잘도 그렇겠쥬"
"치직 치직..."
치료 진행률 98%.
퇴원 절차를 권합니다.
시뮬레이션을 종료 합니다.
"에그병원..기분 나쁜 이름이군."
장레오가 병원을 나오며 말했다.
그는 지금이 한 여름이라 생각했지만,
밖은 예상과 다르게 한 겨울이었다.
좌판에서 주머니의 돈을 털어 설악산 가방을 샀다. 양가죽과 돼지 가죽으로 장서한 두툼한 일기장 서너권을 가방에 넣었다.
"'설악산 가방'이라 정겹군. 그래 이번에는 강원도로 가자." 장레오가 말했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그는 쉽게 목적지를 정했다. 그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기에...
장레오는 함박눈이 천천이 내리는 기차역에서 강원도행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오는 송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늦는 사람은 늘 늦지" 장레오가 말했다.
장레오 옆자리에는 백선향이 있었다. 그녀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얀 패딩을 입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은 부어 있었다. 킁킁거리며 코를 풀었다. 그럴때마다 목걸이가 슬쩍 슬쩍 빛을 반사했다. 장레오는 목걸이의 반사광 때문에 눈이 부셔 눈물이 찔끔 났다.
'1910년대에 유행하던 목걸이군."
장레오는 눈을 감고 의자를 뒤로 젖히며 생각했다. 그리고 타이타닉 호에서 만났던, 장레오의 마지막 사랑을 떠올렸다.
그녀의 이름은 "백장미", 자신이 "로즈" 라고 불리기를 바랬다. 장레오는 이번 만큼은 마음껏 백장미...아니 로즈와 나누지 못했던 사랑을 꿈에서라도 나누고 싶었다.
백선향은 목걸이 뒷면 음각으로 새겨진 할머니의 이름을 손 끝으로 만지며, 먼저 떠난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을 추억했다.
송헌은 두리번거리며 앉을 곳을 찾았다.
빈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직장 동료들은 송헌이가 출근하지 않은줄도 몰랐다. 무단 결근을 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슬픈 축복이군" 송헌이 말했다.
송헌은 노트와 펜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장레오는 설악산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눈꺼풀이 살짝 열리는 듯하더니,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곧 눈물이 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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