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파란 신호가 켜지자마자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뿌아앙~ 거리는 소리로 봐서 많이 급해 보였다. 나도 보통 때보다 더 속도를 냈다. 내 차는 소형차에다 수동 기어를 달고 있어서 상대차가 급발진을 하지 않는이상 따라오기 힘들다. 적어도 3단까지는 그렇다. 사실 클락션을 울리는 그 차는 출발 직 후, 내 차를 거의 따라오지 못했다. 아니 빨리 달릴 의지도 없어보였다. 그러나 교차로마다 출발 시에 클락션을 누르는 일은 반복됐다. 그것도 세 번이나 연속으로. 이쯤되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가라고 나는 옆 차선으로 빠져줬다. 클락션 마니아 차 뒤로 가서 붙었다. 다음 교차로에 도착했다. (이때 나는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뒤에서 신호대기를 했다. 그렇게 4번의 교차로를 따라가며 더 관찰해봤다. 그 차 앞에 다른 차는 없었는데 어김없이 클락션을 누르는게 아닌가! 놀라웠다. 자기 앞에 차가 없더라도! 차가 없더라도! 누른다! 뿌아앙~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차가 미쳤든지 사람이 미쳤든지.
혹시 차가 고장나서 출발 할 때마다 클락션이 자동으로 눌리는게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정지 후 출발 할 때마다 클락션을 울리지는 않았기에 탈락. 즉, 교차로에서 출발 할 때만, 클락션이 들렸다. 그것도 살짝 툭 건드려 내는 소리가 아니라 부저를 쾅 내리치듯 누를 때 나는 클락션 소리였다. 남은 가능성은 하나. 저 사람이 미쳤을 가능성인데... 이 외의 다른 가능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목적지로 차를 돌리며 그 차 운전자는 어떤 상태일지 상상해봤다. 혹시, 교차로의 파란 신호등에 불이 켜지면, 몸서리치며 황홀경에 빠지는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이 황홀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클락션을 크게 울리는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치료제도 없는 자기 병을 잠시라도 낫게 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