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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08. 2020

벽을 뜯고 집의 형태를 바꾸니 삶도 바뀌었다.

멘붕의 H빔 구조보강

처음 셀프 집수리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수리의 범위는 도배, 장판, 간단한 수리 정도였다. 직접 철거를 할 때만 해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기에 비용절감을 위해서도 직접 하는 게 낮겠다 싶었다. 이어지는 조적과 미장 작업에 꼼꼼한 남편이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니 그 정도까지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벽을 없애고 공간을 재구성한다는 말을 듣고는 경험이 전무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의심과 힘들 거라는 생각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40년이 넘은 주택이다 보니 공간의 구조와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벽과 다락 철거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의 손끝에서 벽이 사라지고 다락이 없어졌다. 힘든 철거의 시간이 지나고 한 숨 돌리겠다고 생각할 무렵 생각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고치고 있는 집이 오래된 세벽조(벽돌조적)식 주택이다 보니 방을 확장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함이 있었다. 철거한 벽들이 모두 내력벽이 아니었지만 벽이 없는 방 길이를 보니 왠지 너무 길어 보여서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할 수단이 필요하다던 남편이 보강을 해야겠다고 말해왔다.


100mm*100mm H빔 보강을 하겠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을 당시 난 H빔이 뭔지도 몰랐다. 셀프로 할 수 있는 보강 작업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H빔 보강을 할 곳은 총 3곳으로 다락이 있었던 1층 상하방(서재방)과 2층 작은 부엌(아이방), 그리고 벽은 없었지만 큰 미닫이 문 분리벽이 있었던 1층 부엌방이다.

1층 상하방이었던 공간은 서재로 꾸미기로 했기에 붙어 있던 화장실과 다락 철거가 우선이었다. 다락은 철거했지만 벽을 철거하지 않았던 건 2층과는 다르게 벽을 쌓고 미장을 하면서 조금 더 신경을 썼는지 천장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 시멘트를 채워놓은 부분이 많아서 H빔 보강을 하고 철거하기로 하고 남겨두었었다.

먼저 기초를 만들기 위해 양쪽 벽에 기초용 구덩이를 팠다.

기초용 구덩이를 판 후에는 시멘트를 넣는다. 고강도 시멘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미처 구입을 못해서 일단 있는 시멘트를 모래와 1:3으로 배합하여 조금 다져놓고 고강도 몰탈을 구매한 후 마저 완성하기로 했다.

시멘트 몰탈을 부어놓은 곳이 1주일 정도 지난 후 나중에 구입 한 고강도 몰탈을 이용하여 기초작업을 했다.

그런데 고강도 몰탈을 처음 사용해 본(일반 시멘트 몰탈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에게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일단 고강도 몰탈은 반죽이 죽 같아서 주룩 흘러내려 필히 가림막 설치가 필수였고, 몰탈에 베이스판 지지대로 사용할 볼트를 꽂아 놓으면 그대로 굳을 줄 알았는데 고강도 몰탈의 특성 때문에 볼트 막대가 자꾸 넘어졌다.

부랴부랴 장판을 이용해 볼트 구멍을 파 임시로 지지해서 볼트가 넘어지지 않게는 했지만, 주먹구구식 작업이 가져다주는 처절한 반성을 끌어안아야 했던 순간이었다.

사실 처절한 반성을 끌어안아야 했다는 생각은 남편 입장이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니 당연히 닥칠 수 있는 순간이다 싶었고 그런 순간에도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작업하는 남편의 모습이 난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요? 정말 대단한데요"

아마 남편은 힘든 자신을 응원해주기 위한 아내의 배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남편의 작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진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몰탈 작업을 마치고 습윤 양생을 위해서 비닐로 잘 덮어 둔다.

그리고 10일 정도 지나서 개봉박두...

H빔을 세우기 위해서는 베이스판이 수평하게 설치되어야 하므로 시멘트 연마날을 장착한 그라인더로 기초 상판을 연마해주었다. 사진에는 없지만 수평계로 체크해가면서 조심스레 평탄작업을 했다.

그리고 베이스판을 끼워 넣은 후 너트로 임시 고정하고 다시 한번 수평계로 수평 체크...

이때까지만 해도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런데 한쪽 벽의 기초는 의도한 대로 잘 되었는데 다른 한쪽 벽은 볼트가 기울어진 채로 굳어서 베이스판 안 들어가는 참사가 발생했다. 달래도 보고 윽박도 질러봤지만 꿈쩍도 안 하는 볼트 지지대를 결국 2개 싹둑 잘라내고 용접하기로 했다. 그런데 잘라내고 보니 기울어진 각도를 감안하여 중간 정도만 잘랐으면 베이스판도 들어가고 볼트도 체결할 수 있었음을 깨닫고 또 한 번의 멘붕이 찾아왔다.

다시 반성을 뼈에 새기고 기초바닥과 접하는 지지대의 아래쪽에 녹방지를 위한 사비락카를 뿌려주고 건조하면서 용접 준비에 들어갔다. (남편은 건축분야와 무관한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에 주택으로 이사 가면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할 거라며 예전에 3개월 과정의 용접 교육을 미리 받아 두었었다)

잘려진 볼트와 베이스판을 용접하고 드디어 H빔을 세우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구입한 H빔이 도착하고 집 안으로 옮기면서 왜 그렇게 기초 작업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옮기기도 이리 힘든데 이걸 어찌 들고 세워서 보강을 하겠다는 건지 눈앞에 캄캄해졌다.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본격적인 기둥 세우기 작업을 시작한 남편은 한쪽 기둥에 수평계를 이용해서 수직을 잘 맞춘 후 용접을 시작했다. 오른쪽을 마무리한 후 왼쪽을 하려던 순간 남편의 표정이 굳어졌다.

베이스판 두께 10mm를 빼고 절단해왔어야 하는데 10cm(100mm)를 빼고 절단 요청을 해서 H빔을 주문했다는 남편은 왜 이리 멍청한지 모르겠다며 한 동안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강력한 허리케인급 멘붕에 뒷목을 한참이나 부여잡고 있던 남편이 짧아진 기둥을 다른 1곳의 보로 사용하고, 그곳의 보를 기둥용으로 절단해 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층 부엌 쪽 보강을 위해 기초용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2층 아이방도 기초용 구덩이를 판다. 파고 또 판다.

2층은 바닥 슬라브가 보일 때까지 파서 몰탈이 층간 바닥에 바로 맞닿아 굳게 하였다.

고강도 몰탈을 채우기 위한 틀 작업을 하고

1층 서재방의 경험에서 얻은 멘붕 방지를 위해 장판이 아닌 3mm 합판으로 볼트 지지대를 만들어 볼트를 끼워 넣었다. 구멍을 볼트 사이즈보다 살짝 작게 하여 돌려가면서 넣었더니 볼트가 넘어지지 않고 지지가 잘 된다.

볼트 지지대판을 앉힌 후 1주일 정도 양생 시키고 나서 합판을 제거한 후 수평계로 체크해가면서 그라인더로 연마 해 주었다. 그렇게 지지대 작업이 완료된 후 필요한 사이즈를 다시 측정했다.

1층과 같은 뒷목 당기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측정하고 또 측정했다.

새로 H빔을 재단하면서 바꿔치기한 서재용 한쪽 기둥에 녹방지를 위한 사비락카 스프레이 작업을 한다. 곧 닥칠 참사는 생각도 못한 채 H빔 보강 작업을 곧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경쾌하게 스프레이질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쪽 기둥을 용접하고 보도 아주 힘겹게 얹히고 용접을 했다. 보를 얹히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약 40kg의 H빔을 양쪽에 사다리를 설치하고 조금씩 올려서 넣었는데 평소 조용한 남편이 불안하게 아래에서 H빔을 받치고 있는 나를 보며 목소리가 커졌다.


"자기야, 위험해요. 그렇게 있으면 위험하다니까요! 비켜요!!"


어찌나 소리를 지르던지 혼나는 듯한 느낌에 괜스레 기가 죽기도 했다. 나중에 작업이 끝난 후 남편을 보니 긴장을 얼마나 했던지 남편이 온몸에 식은땀을 가득 흐르고 있었다. 작업 상황을 잘 모르는 나는 자세가 불안정해도 위험한지 모르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에 사고가 날까 싶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남편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힘겹게 H빔 형태가 자리를 잡은 후 눈에 가시였던 저 벽을 철거할 시간이 되었다. H빔과 천장의 사이는 철판과 각관을 끼워 넣었고 나머지는 빈 공간은 차후에 에폭시를 게워 넣는다고 한다.

7인치 석재 절단날을 장착한 그라인더로 벽을 조금이라도 잘라서 철거를 쉽게 하려고 했으나 사다리 위에서 그라인더 작업이 너무 위험하여 중단하고, 함마드릴을 이용하여 일렬로 타공을 많이 한 다음 뿌레카로 부수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거쳐 드디어 벽이 모두 철거되었다.

뻥 뚫린 벽을 보는 후련함과 이 곳에 나를 위한 서재를 만들어준다는 남편의 약속이 가까워지고 있음에 흐르는 땀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이제 나의 단순 보조 작업이 빛을 발할 시간이다. 남편은 부서진 벽의 큰 덩어리를 잘게 부수고 나는 마대포대에 담아 옮겼다. 이제 한 번 해봤으니 조금 더 수월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부엌과 2층에 보강을 하기 위해 이동한 순간 예상치 못했던 참사에 작업이 중단되었다.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에 보가 올라가므로 10cm 줄여서 절단해야 하는데 그것을 빼지 않고 재단을 해버렸다는 남편, 당시 남편의 얼굴에 나타난 그 표정은 정말 세상을 다 잃은 듯했다.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정말 핵폭탄급 멘붕에 어찌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당시에는 남편의 절망스러운 얼굴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생각을 전했다.

"자기는 정말 완벽한데 쉽고 작은 부분을 놓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나랑 더 천생연분이 아닌가 싶어요. 어려운 건 못하지만 간단하고 쉬운 건 잘하는 나와 찰떡궁합인 거죠. 작업할 때 나한테 설명을 한 번 해주면 기억해뒀다가 그런 부분을 내가 체크할게요. "

동의한 남편은 그 뒤로 주문을 넣기 전이나 재단 등 다시 돌이키기 힘든 작업에는 나를 꼭 불러 확인받곤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마주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는 있다.


"그래도 짧은 게 아니니 다시 철강 집으로 보내서 잘라달라고 할 수 있잖아요. 짧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1층 부엌 H빔 보강
2층 아이방 H빔 보강

며칠 후 새로 절단한  H빔으로 나머지 구조보강을 끝내면서 여러 번의 멘붕 참사와 함께 였던 H빔 구조보강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너무 힘들었던 탓에 꼭 해야 할 작업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의 땀과 노력으로 구조가 변경된 집에서 살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벽을 뜯고 집의 크기와 형태를 바꾸면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
형식은 집을 바꾸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삶을 바꾸는 것이다.

김재관 건축가 인터뷰 中


단순히 집의 구조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우리 삶의 방식과 태도가 달라졌다.

건축가의 말처럼 삶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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