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나는 주택의 단열 문제를 들을 때마다 남편에게 걱정 가득한 말을 했었다. 남편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신경 써서 단열작업을 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이런 남편이 선택한 단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집의 한 벽면이 도로 경계와 바로 붙어 있어서 외단열을 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내단열로 결정
각 방을 박스 형태로 바닥/천장/벽면을 모두 단열
외벽과 마주하는 벽면과 천장은 100mm 비드법(EPS) 2종 2호 단열재
내벽면은 50mm EPS 2종 2호와 30mm 압출법(XPS) 1호
바닥은 75mm EPS 2종 2호 선택
맘 같아서는 모두 100mm 두께로 뒤집어 씌우고 싶었으나 단열재+목 상 작업(30mm)+석고보드(9.5mm) 작업을 했을 때 줄어드는 면적이 너무 많아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엔 남편의 단열작업 방법을 보며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아내를 위한 남편의 눈높이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야 한 겨울에 추워서 오리털 점퍼를 입었어요. 그런데 그 점퍼에 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봐요. 아무리 두껍고 좋은 옷이라고 해도 제대로 보온이 안 되겠죠? 그런 원리라고 보면 돼요. 집 전체를 박스라고 생각하고 빈틈없이 감싸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열 손실이 커져서 단열 효과가 떨어지는거죠"
급하게 잡힌 방통 일정 때문에 부랴부랴 단열재를 신청했다. 단열재의 부피가 워낙 크기에 소요될 단열재를 모두 쌓아 둘 곳이 없어 바닥과 벽면 일부에 사용할 단열재만 1차로 납품받기로 하였는데 업무 처리하는 직원의 착오로 인해 모두 한꺼번에 도착했다. 셀프 리모델링은 기술적인 부분도 어렵지만 어떤 자재를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배달되어 온 자재를 옮기는 과정도 쉽지 않다.
부부가 오래된 집을 사서 하나하나 직접 고쳐간다는 말을 들은 업체 사장님은 화물비를 무료로 해주었다. 남편은 그런 사장님의 성의도 있고 다시 돌려보낼 경우 실수한 직원이나 배송하는 직원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다시 돌려보내지 못했다.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 집 안으로 옮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1층 2층 빈 곳에 정신없이 적재하느라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바로 사용할 것과 방통 후 사용할 것을 분류하고 방통 후 사용할 것은 비닐로 포장하는 등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정신없었던 그날의 힘겨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배송 당일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바로 단열을 다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기에 비가 온다거나 작업에 따라 단열재를 이리저리 옮겨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불만이 튀어 나왔다.
"그러니까 그때 주문했던 데로 다시 돌려보내야 했다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사랑한 남편의 모습이 그런 따뜻한 배려임을 잘 안다.
바닥에 단열재를 놓기 위해 고르게 수평 작업부터 시작한다. 반듯한 판재에 수평계를 글루건으로 붙인 후 수평을 봐가면서 작업했다.
어느 정도 수평을 맞춘 후 두툼한 비닐을 2겹으로 깔아 주었다. 오래된 주택이어서 바닥 전체에 콘크리트 통기초가 아니라 벽이 세워지는 부분만 기초가 되어있고, 방바닥 부분에는 황토가 깔린 후에 모래로 다짐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습기가 많이 올라왔다. 이런 습기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여기저기 곰팡이 천국이 되기에 비닐을 깔았다. 비닐이 만나는 곳은 유리테이프로 붙여 준다.
비닐을 깔고 난 후 그 위에 단열재를 놓고 최대한 밀착시켜가며 이음매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준다. 바닥 단열재를 100mm 하지 못한 것은 기존의 거실 창틀, 출입문 등을 감안했을 때 바닥 높이가 너무 높아져 100mm 단열재를 사용 못했는데 남편은 단열재의 수축을 감안해 50mm 두께의 단열재를 2겹으로 서로 교차되게 시공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전해오기도 했다.
작업을 할수록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나와는 달리 하나하나 경험하며 알아가는 게 즐겁다는 남편.
이 힘겨움을 경험했기에 다시는 못할 것 같다는 나와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며 훗날 집을 온전히 직접 지어보고 싶다는 남편.
우리는 정말 다르다. 닮아야 잘 산다는 말도 있던데 난 남편이 나와 다르기에 더 배우고 사랑하는 부분이 많다.
바닥면과 맞닿아 있는 벽면에 단열재를 붙이기 위해서 우레탄 폼본드를 사용했다. 우레탄 폼과 우레탄 폼본드는 주택 수리하면서 지금도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둘 다 15도 이상의 날씨일 때 작업성이 좋다. 사진의 단열재 작업을 하는 시기가 1월 한겨울이었기에 너무 힘들게 작업했던 것이 떠오른다.
날씨가 추우니 폼본드가 잘 나오지도, 부풀지도 않아서 난로를 가져다 물을 올려놓고 그 안에다 폼본드 통을 넣어 따뜻하게 하니 폼본드가 잘 나오고 부풀어 올랐다. 폼본드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스프레이기로 단열재와 벽면에 물을 뿌려가면서 작업을 했는데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우레탄 폼본드를 이용한 단열재 작업은 무조건 겨울이 아닌 계절에 하시기를 절대적으로 추천한다.
창문을 줄여서 위쪽이 뚫려 있다. 방통했을 때 찬바람이 들어와 얼면 안 되기에 단열재를 미리 붙여 주었다. 우레탄 폼본드를 뿌려놓고 붙이면 바로 접착되는 게 아니라 뿌리고 1분 정도 지나면 폼본드가 끈적거리면서 접착력이 높아지는데 이때 고정위치에 붙인 후 5분 정도 움직이지 않게 누르고 있어야 한다.
사진 속 늠름한 뒷모습은 남편이 아닌 나다. 커플 외투를 입고 작업을 한 탓에 사진을 보며 남편은 자신과 나를 구분 못할 때가 있다. 어떻게 아내도 못 알아보냐고 내가 그렇게 덩치가 크냐고 한 소리 할 때도 있지만 사실 나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다.
단열재를 고정하는 디스크 화스너를 화스너 타정기로 고정하면 누르고 있지 않아도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목작업을 하면서 에어타카를 이용하여 벽면에 고정을 해봤던 남편이 우리 집 벽돌은 오래되고 건조가 많이 되어서인지 부서지는 게 많다며 가능한 타카 작업은 벽에 직접적으로 하면 안 되겠다고 해서 일일이 하나하나 손으로 눌러가며 고정을 해야 했다.
엄마는 잘 있다. 방통 날짜는 가까워져 오고 급한 마음에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있으니 딸아이에게 날도 추운데 아직까지 작업하시냐는 문자가 왔다. 걱정하는 딸아이에게 단열재 위에서 v자를 날리며 엄마는 잘 있음를 알려주었다.
즐거운 모습은 사진으로만 잠시...
방통과 이사날짜가 가까워져 오며 다급해진 남편이 단열재로 이글루처럼 공간을 만들어 이곳에서 눈을 붙이자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집에 가면 피곤함에 분명 일찍 못 일어날 것 같다던 남편의 말이 어찌나 무섭던지..
추위와 피곤함, 동창으로 아픈 손을 보며 그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을 한 후 새벽 3~4시에 집에 가야 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부엌에 싱크대가 놓일 부분은 미리 오수배관과 수도배관을 설치하였다. 수도는 나중에 PB배관을 이용해서 설치할 것인데 PB배관을 인입하기 위해서 22mm CD주름관을 깐다. 까만색의 주름관에 나중에 수도관을 넣어서 뽑아낸다고 한다. 이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나중에 남편이 하는 작업을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바닥에 단열재를 넣고 이음매 테이프 작업을 하며 방통 하기로 한 날의 새벽까지 작업은 이어졌다.
방통이 맞닿는 아래쪽 부분의 벽면도 단열재 작업을 하고 은박매트를 깔아 주는 등 방통 사전작업을 완료했다. 은박매트는 수량 계산을 잘못해서 꼼꼼하게 빈틈없이 덮지를 못했다.
남편이 꼭 해보고 싶었던 엑셀 배관작업은 계약된 방통 일자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전문가를 섭외하여 맡겼다.
작업 당일, 딱딱한 엑셀 배관을 고정하기 위해 와이어 메쉬 철망을 미리 깔고 난 후에 엑셀 배관이 꼬이지 않게 풀어주는 장비에 엑셀관을 넣고 풀어가면서 깔아가는데 괜히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식으로 엑셀 배관 작업을 하는데 2명이서 반나절만에 1층과 2층이 모두 끝났다. 당시에는 남편과 내가 했으면 며칠이 걸렸을지 모르는 작업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시간적 여유만 있었다면 남편이 직접 하는 게 더 꼼꼼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오후에 방통팀이 와서 크랙을 방지하고 엑셀 배관이 들뜨지 않도록 차광막을 설치한 후 방통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엑셀 배관 작업팀과 방통 작업팀이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주문이 많아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작업 사진이 거의 없다.
정신없던 방통 작업을 마치고 영하권의 날씨에 시멘트가 얼지 않도록 열풍기를 대여해서 틀었다. 소음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어서 평소 조용한 남편은 동네분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던 저 대포 같은 열풍기는 이젠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틀 정도 지난 후 조심히 안쪽으로 들아가 보니 내 눈에는 곧 장풍이라도 쏠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열풍기만 보였다.
그렇게 방통 작업 일주일 후 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1층에 짐을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계약 날짜를 맞춰야 하니 이사를 하긴 했지만 도저히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었기에 짐만 이사시킨 후 우리 가족은 모텔로 들어가야 했다. 어른인 우리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불편함을 견딘다지만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된다지만 아직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건지 여전히 볼 때마다 미안한 이삿날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