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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11. 2020

이사했다. '짐만' 이사를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더니 집 고치는 것 또한 우리의 계획에서 다 빗나갔다. 

40년이 넘은 주택을 구입한 후 간단한 것만 직접 하고 나머지는 업체에 맡기려던 계획이 모든 것을 셀프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2~3개월이면 될 거라는 예상이 2~3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집을 고치는 게 아닌 새로 짓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원래의 구조에서 도배, 장판, 페인트 등 보이는 부분만을 수리하고 들어갈 거라 생각했던 지인들은 우리의 철거 모습에 걱정을 내비쳤다. 힘들어서 어떻게 하겠냐는 걱정과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 조차 그렇게 작업하면 힘들고 진도도 안 나간다며 많이들 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방법을 일러주곤 했지만 남편을 꺾을 수는 없었다. 건축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남편은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해나갔다. 수많은 정보를 찾아보며 많은 이들이 하는 방법을 쫒는 게 아닌 안전하고 하자가 없다고 생각되는 공법을 익혀나갔다. 대충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편의 성격으로 인해 옷이 다 벗겨졌던 집에 잘 맞는 맞춤옷이 하나씩 입혀졌다. 하나씩 우리 손으로 만들어간다라는 즐거움과 함께 당연하다고 여겼던 삶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겹쳐지기도 했다. 

중3 중1이던 아이들이 회색빛으로 가득한 수리 중인 집에 와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던 2018년 11월 24일은 영재학급에 다니던 아이들의 수료식이 있던 날이었다. 사교육 한 번 없이 시험에 합격 후 수업을 듣는 것도 기특하건만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으며 멋지게 마무리 해준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춥고 불편할 수 있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캠핑 온 것 같다며 즐거워했고 그로 인해 차가웠던 집에 또 하나의 추억이 입혀지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 상태로 이사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2019년 1월 23일, 철거, 조적, 미장, 단열 1차, 방통만 한 채 우리는 이사를 했다. 아니 짐만 이사를 했다.

(좌) 모텔 생활 중 공부하는 딸아이 (우) 1층 쌓아놓은 짐 가운데에서 문제집을 푸는 아들

잠이라도 잘 수 있을 정도의 집을 만들기 위해 2주 동안 모텔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갔다. 아침이면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우리 부부는 수리할 집으로 향했다. 2층 방 한 칸이라도 서둘러 단열 작업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2주 후 사람도 집으로 들어갔다.

예쁜 벽지와 장판이 아닌 단열재까지만 작업된 방이었지만 아이들은 웃어주었다. 


"우리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겠는데요. 아직 문도 안 달려있는데 이전 아파트보다 더 따뜻한 것 같아요"


아이들의 느끼는 따뜻함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예쁜 마음의 온기였음을 나는 안다. 집의 철거 과정부터 모두 지켜본 아이들이기에 불편한 상황마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임시 방문과 등에 아이들은 감탄했다. 


"이야~ 역시 우리 아빠는 대단하다니까..."

수도 작업이 되어 있지 않아 1층 수도 원선 부근에서 큰 통에 물을 받아와 2층 베란다에서 씻어야 했던 겨울...

설거지를 위해 받아둔 물이 아침이면 얼어있었지만 우리의 마음까지는 얼리지 못했다. 

버려진 작은 책상 위 버너로 끓이는 커피 한 잔도 충분히 달콤하고 따뜻했다. 

추위에 힘겨워하는 가족을 위해 오픈된 베란다가 아닌 1층에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던 날 15살 딸아이가 말했다. 


"이렇게 이 상태로 지낼 수 있게 편하게 만들어 놓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이 불편한 상황이 자꾸 익숙해져 가요"


겨우 찬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인데도 편함으로 받아들이며 익숙해져 간다는 귀여운 웃음을 보여주는 아이를 보며 남편은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우리 아이들 성격이 좋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짜증도 안 내고 지내주는 것 같아요"

이사 후에도 이어지는 작업에 먼지 가득한 엄마의 작업복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동참하는 아이의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옷을 입은 연예인보다 빛났다. 




집 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된다는 것, 수도꼭지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 스위치만 누르면 불이 켜지는 것 이런 일상이 당연함이 아님을 확인했던 시간이 있었다. 우리의 시간을 보며 누군가는 "어떻게"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왜 이렇게까지"라고 한다. 처음 해보는 여러 작업의 힘겨움도 컸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는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과 이해가 없었다면 나 또한 "어떻게"와 "왜 이렇게까지"의 물음에 사로잡혀 이어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집의 가장 멋진 주인공은 집을 고치는 우리 부부가 아닌 이 시간을 함께 견뎌준 아이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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