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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Dec 12. 2020

세상 하나뿐인 옷을 입히다

아이와 함께한 단열작업

방통 전 마무리되었어야 할 단열 작업이지만, 이사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바닥 그리고 바닥과 닿는 벽면만 1차로 급하게 단열을 마무리했었다. 방통이 끝나고 짐만 이사를 한 후 이어진 단열작업에 15살 딸아이의 손길이 더해졌다. 

방학이라 시간이 많아진 아이가 엄마, 아빠를 보러 집에 들렀던 어느 날, 단열재에 우레탄 폼본드를 바르고 있는 아빠를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관심을 보였다. 아빠에게 우레탄 폼본드를 바르는 방법을 배우더니 이내 여기저기 하트를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우레탄 폼본드가 너무 얇게 분사되어 두 번을 분사하여 엉망이지만 남편은 뭐라 하지 않았다. 너무 얇게 발라진 것 같다며 다시 해 보라고 할 뿐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일 텐데 해보고 싶다며 팔을 걷어붙이는 딸아이는 비타민이 되어주었고 작업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남편이 손이 더 가는 딸아이의 작업에도 미소만 짓는 모습이 더해져 훈훈한 풍경이 되었다. 

아빠의 사랑을 느껴서일까. 우레탄폼도 쏘고 단열재를 붙여서 고정하는 작업을 도와주던 딸아이로 인해 작업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와주니 진행이 정말 빨라졌다는 이야기에 아이는 작업복까지 갖춰 입고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도 귀여움 발산하며 힘을 주던 딸아이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진만 찍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존재감을 드러내던 아이 뒤로 우레탄 폼본드 사이에 단열재 전용 접착제를 바르는 남편이 보인다. 천장에 붙이는 100mm 단열재가 더 견고하게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접착제를 도포했다. 

천장에 단열재를 붙이는 작업은 벽에 붙이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단열재 부착이었는데 직접 해보니 여간 까다로운 공정이 아니었다. 우레탄 폼 본드는 단열재에 도포한 후 바로 붙이면 폼본드가 사그라져 접착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끈적거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착할 곳에 붙여야 하는데 붙이고 나서도 완전히 고정될 때까지 누르고 있어야 한다. 수분을 공급하면 접착력이 더 높아지기에 물분무기를 이용하여 단열재와 천장 또는 벽면에 미리 물을 뿌려주며 작업을 했다. 


무엇보다도 천장에 단열재를 붙일 때 고정될 때까지 누르는 작업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손으로 누르고도 있어보고 팔이 아파 머리로 받쳐도 보고 남편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벌을 섰는지 모른다.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아틀라스 신의 고통이 생각날 정도였다. 


방통 전 단열재 작업 속 늠름한 사진에 이어 위 사진 속 단열재를 머리로 받치고 있는 사람 또한 나다. 아이와 나 조차도 사진을 보면서 아빠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한 참을 웃었다. 나는 어쩜 이리 어떤 옷이든 소화를 잘 시키는지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100mm의 단열재는 커터칼로 자르는 것부터 간단하지가 않다. 단열재가 두꺼워서 한 번에 잘리지 않기 때문에 뒤집어서 양쪽을 잘라줘야 한다. 열선 컷팅기가 있다고 하는데 작업장이 어수선하여 화재의 위험이 있을까 봐 그냥 번거로움을 감내하기로 한 남편이 작업하면서 자꾸만 되뇌기도 했다.


"열선 컷팅기를 샀어야 하는 건가..."

천장에 단열재를 붙이기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왕자 행거'를 이용해서 단열재를 지지하는 모습도 봤는데 유효 길이가 280cm 정도라 우리 집 층고와는 맞지 않았고 가격도 그다지 싸지도 않아서 그냥 패스했었다. 그런데 작업이 너무 힘들다 보니 그냥 구매해서 아래쪽에 단열재를 받치고 지지해볼까라는 고민을 했던 기억도 난다. 다행히 몸이 힘드니 머리가 방법을 찾아냈다. 단열재로 기초단을 높이 쌓은 후 단열재를 이용해서 받쳐주니 받치는 면적도 크고 편해졌다.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새로운 지지 방법에도 단점은 있었다. 천장과 틈 없이 제대로 받쳐줘야 하는데 높이가 맞지 않으면 몇 번이나 다시 세워줘야 했고 힘을 줘서 밀다보면 단열재가 부러지기도 했다. 단열재 작업을 함께 했던 딸아이가 이 시간을 기억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단열재가 부러졌을 때 그 부러진 단열재를 옆으로 던지면서 아빠 표정이 굳어졌었죠?"
"응. 아빠가 작업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답답한 감정을 좀 격하게 표현할 때도 있었지. 어려운 작업을 혼자서 해나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던 것 같아."

아이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글로는 하나씩 완성되어가는 모습으로 정리되어 올라가니 힘겹고 고민했던 시간이 감춰지기도 하지만 때론 보이지 않는 시간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기다리거나 그 사람이 원할 때 어깨를 두드려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의 표면적인 기억에 그 안에 감춰진 이해와 노력의 감정을 입혀주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단열재 부착 후 단열재 사이의 틈도 우레탄폼으로 꼼꼼하게 메워주었다.

작업 보조와 분위기 업~ 역할까지 담당했던 딸아이가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열재가 붙길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그림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단열재는 아이의 도화지가 되었고, 어두운 회색빛은 아이의 손끝으로 인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단열재가 되어갔다.

아이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던 남편이 어느 날 펜을 들었다. 딸아이가 오면 놀라게 해 주겠다며 아이가 얇은 펜으로 그린 그림을 진하게 덧대더니 갑자기 스마트폰을 빼서 이미지를 검색하여 아빠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의 재치 가득한 그림이 한쪽 벽면에 채워졌고, 재치 있는 문구로 더욱 빛을 발하는 아빠의 그림을 볼 아이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빠의 그림에 답 하는 딸아이의 재치 가득한 그림에 웃음꽃이 피었다. 

단열재 작업이 마무리되고 목공 작업을 하기 전 부녀의 재치와 솜씨가 가득한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훗 날 시간이 흘러 이 집에 살게 될 누군가가 집을 고치기 위해 석고보드를 떼어냈을 때 숨겨진 그림을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조용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아이를 보는 일은 피로회복제였고 아이가 그린 그림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시간은 힘겨운 집수리 시간 속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작업 모습을 그린 딸아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위에서 작업하는 아빠랑 아래에서 받쳐주는 엄마 모습인데 아빠가 힘이 들었는지 방귀를 내뿜는 모습이에요"


아이의 그림마다 남편의 엉덩이가 뿡이라는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그만큼 힘든 게 아니었을까 웃으며 추억해본다.

아이의 그림이 웃음과 함께라면 남편의 그림에는 힘겨움과 다짐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작업이 잘 되지 않을 때나 이런저런 고민이 밀려올 때면 한 숨 쉬며 힘들어하던 남편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 그렸던 그림을 보는 일은 여전히 아프다.

목작업이 진행되면서 좁아진 단열재는 아이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뒤늦게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 속 동매라는 캐릭터에 빠진 엄마를 위한 선물도 1층 거실에 채워졌고

부엌 입구 천장 부근에는 토끼와 핼러윈데이 유령이 가득이다.

우리 집 화장실을 지켜주는 돼지라며 화장실 출입문 위쪽 벽에 그려진 아이의 그림에는 목공작업을 위한 먹선이 하필 눈을 통과하는 바람에 꼭 그래야만 했냐는 아이의 웃음 섞인 속상함을 불러오기도 했다.

기밀성을 높이기 위해 단열재 연결 부위를 은박 테이프로 붙이기

아이와 함께한 시간을 담는 지금도 그때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엄마, 우리가 그린 그림은 잘 있겠죠?"


이제는 석고보드와 벽지로 마감되어 보이지 않지만 어느 벽에 무슨 그림이 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담긴 희로애락의 감정 역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건 화려하게 꾸며진 결과물이 아닌 이 시간을 이어가는 과정 속 땀과 함께 하는 추억이다. 




사용한 단열재 종류 및 시공법은 이전 단열작업에 이미 기록을 했고, 이어진 단열 작업 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천장뿐이지만 또 하나의 기록으로 단열 2탄을 남기기로 했다. 간단한 작업이라도 우리의 손길이 닿은 곳이기에 지나칠 수 없기도 하지만, 이사 후 이어진 단열 마무리 작업 속에는 딸아이의 땀과 아름다운 손길이 가득했기에 꼭 담아두고 싶었다. 


남편의 꼼꼼한 시공과 아이의 손길이 깃들어 있는 단열재라 더욱 단열효과가 뛰어난 것 같다. 보일러를 조금만 돌려도 훈훈해지는 집안 공기에 추웠던 그날의 따뜻한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이 집은 못 팔 것 같아요."


자신의 노력이 깃든 집을 대하는 딸아이의 이야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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