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셀프 리모델링을 하며 '설마 이것까지?'에서 '우와!'로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어가는 시간을 자주 경험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남기는 시간이 그 사이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 작업은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기까지 가장 많은 걱정을 한 공정이다. '전기'라면 무서운 생각이 들어 남편이 잘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다른 작업과는 달리 내가 도와줄 부분이 많지 않기에 지켜보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해내는 남편의 셀프 집수리 이야기, 오늘은 '전기 편'이다.
먼저 완성된 사진을 올려본다. 하얀색의 주름관(CD관이라고 부름)을 전선의 경로에 맞게 미리 가설하여 그 CD관으로 전선을 집어넣어 전기 배선을 하는 방식이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외부의 전기가 인입되어 내부에서 분기되는 분전함을 설치하는 것이다.
2층엔 5분기 분전함, 1층엔 6분기 분전함을 샀는데, 주택용 분전함이 아니라 산업용 분전함이 왔다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생산회사 홈페이지를 보고 감도 전류와 동작 전류가 차이가 없어서 그냥 써도 되겠다고 하면서 설치를 시작했다. 전기가 무서운 나는 정말 써도 되는 건지 폭풍 질문을 쏟아냈지만, 남편은 차분하게 외부 인입선을 분전함 메인 차단기에 연결했다.
평소 작업에 대한 설명 등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간과는 달리 침묵이 흐르는 시간...
전기가 살아 있는 활성선이기에 무척 조심해서 작업하는 남편의 모습에 나 또한 말을 아꼈다.
CD전선관 가설은 전기 작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다. CD관(Corrugated Duct, Conduit Duct)은 '주름 잡힌 연결관'인 것 같은데 '합성수지제가요전선관'이라고 부른다. '가요(可撓)'가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다는 뜻이라는데 전기는 작업만큼이나 용어도 어렵다. 일반 CD관과 불이 잘 안 붙는 난연 CD관이 있는데 우리 집은 단열재와 붙어서 가설하는 관계로 난연 CD관을 사용하였다. CD관이 둥그렇게 말려 있으므로 길게 풀어서 양쪽에서 두어 번 잡아당기면 반듯하게 펴져 작업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 이때만큼은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일에는 끌려가지 않고 잘 펼 수 있는 나의 파워가 필요했다.
전등, 스위치, 콘센트 등 가설되는 CD관이 많기 때문에 네임타이를 이용하여 반드시 표시를 해두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메인 분전함에서 각 방으로 전등과 전열 분기선이 들어오면 적절한 위치에서 전등과 스위치, 콘센트가 각각 퍼져나가는 형태이기에 CD관이 한 곳에 모이게 된다. 그렇기에 필수적으로 네임타이를 이용해서 표시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은 남편이 멀티탭을 이용해서 전선들이 방에 보이는 것이 싫다고 처음부터 각 벽면에 기본 1개 이상씩 콘센트를 설치하여 CD관이 유독 많아 보인다. 원래 콘센트 전선은 바닥으로 가설한다는데 방통공사를 너무 시급하게 하여 바닥에 CD관 작업을 하지 못하여 모두 천장에서 나가고 있다.
기본적인 전기 작업 자재로
전등선으로 사용할 2.5 SQ의 검정, 흰색, 노랑
전열선으로 사용할 4.0 SQ의 빨강, 흰색
접지선으로 사용할 2.5 SQ 녹색 HIV 전선
철로 되어 있는 스위치 박스, 콘센트 박스, 등박스
CD관과 철박스를 연결할 CD관 커넥터도 보인다.
이런식으로 CD관이 철박스와 커넥터를 이용하여 깔끔하게 접속이 된다. 위 사진은 방에서 전등과 스위치, 콘센트로 분기하기 위한 곳으로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수정이 용이하도록 한 곳에 모아서 작업을 한 것이다.
CD관이 벽을 통과해야 할 경우에는 해머드릴을 이용해서 벽을 뚫는다. 16mm CD관이 내경이 16mm이고 외경이 21mm 이므로 22mm 콘크리트 드릴날을 장착하여 뚫어야 하는데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콘센트 박스와 스위치 박스를 설치하는 모습이다. 콘센트 박스와 스위치 박스는 똑같아 보여도 조금 차이가 있다. 스위치나 콘센트를 연결하는 나사 접속부가 콘센트는 들어가 있고, 스위치는 들어가 있지 않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남편이지만 작업을 하면서는 예민해져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버럭 하곤 한다. 콘센트 박스를 달라는데 스위치 박스를 가져갔다가 혼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며 즐거운 시간보다는 엄마한테 혼난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는 아이를 보며 왜 그러나 했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나름 열심히 하다 실수한 건데 한 소리 들을 때면 어찌나 서운하던지 물론 당시에는 작업에 여러 가지로 신경 쓰는 게 많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업이 끝나면 푹풍같이 쏟아내곤 했다.
종종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 싸우지 않는 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닌 문제라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해석과 타이밍의 차이이다. 작업하면서 힘들고 속상할 때마다 바로 표현을 했더라면 우린 정말 많이 싸웠을 것이다. 남편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감정을 남편이 더 잘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을 때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기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집을 만들어가면서 부부관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더 많이 익히게 된 것 같다.
간혹 콘센트가 벽면에서 1cm 정도 돌출되어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스위치 박스를 콘센트 박스로 사용해서 발생한 경우라고 남편이 말해왔다. 남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 실수를 이. 해. 한. 다.
CD관 작업이 끝났으면 이제 전선을 삽입할 차례이다. CD관은 16mm를 사용했는데 가능한 하나의 CD관에 한 용도의 전선만 넣었다. 즉 전등은 활성선+중성선 2가닥(접지는 생략), 전열은 활성선+중성선+접지선 3가닥 이렇게 넣었다. 하나의 CD관에 전선이 많이 들어가면 허용전류가 떨어진다고 한다.
아주 멀지 않은 거리는 전선 하나를 구부린 다음 나머지 전선과 테이프로 묶어서 집어넣으면 어렵지 않게 반대편으로 빠져나온다. 그러나 CD관이 많이 구부러져 있거나 거리가 멀면 인입선(요비선) 도구를 이용하여 어렵지 않게 전선을 삽입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스위치 박스나 콘센트 박스에서 여유분 전선을 20~30cm 정도 더 빼는데 이때 철박스 테두리에 전선이 닿아서 피복에 쉽게 스크래치가 발생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늦은 시간까지 작업이 이어지던 겨울 어느 날, 딸이 톱을 들고 나와서는 그만 끝내고 빨리 자야 된다며 사랑스러운 협박을 하고 있다.
사진을 보니 그때의 장면이 떠올라 미소 지어진다. 전기 작업도 되어있지 않고 벽면 마감도 되어 있지 않은 집에서 웃어주는 아이의 모습이 미안하면서도 고맙게 다가온다. 공산당도 무서워한다는 중2였던 딸아이는 짜증을 내기보다는 불편한 상황도 유머로 표현하곤 했다.
"엄마, 요즘 기가 시간에 집에 대해서 나오는데 내가 잘 아는 것들이 나와요. 어찌나 반가운지 몰라요. 그리고 친구들이랑 걷다 보면 공사하는 곳이 있는데 익숙한 단열재가 보여서 저도 모르게 아는 척할 뻔했다니까요."
훗날 내 아이는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추억할까.
전선의 연결은 WAGO 꽂음형 전선커넥터를 사용한다. 시공이 간편하고 수정이 용이하며, 숙련도에 따른 시공 하자가 발생할 확률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쥐꼬리 접속법이 많이 시공되는데 점차적으로 꽂음형 커넥터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고 한다.
꽂음형 커넥터를 이용하여 각 전선의 연결을 완료했다. 이곳은 작은 점검구를 만들던지 아니면 위치만 표시한 후 석고로 막던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전선 연결이 끝났으면 분전함에서 전등과 전열 분기선을 연결함으로써 전기가 통하게 되면 이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전기 작업 후 이어진 석고보드 부착까지 마무리된 상태의 사진을 살짝 공개해 본다. 중고나라에서 구매해 놓았던 콘센트와 스위치를 한번 부착해 보던 날, 스위치를 켰을때 불이 들어오던 순간 우리는 외쳤다.
"우와~~~ 불이 켜진다"
나도 모르는 튀어나왔던 감탄사에 혹 옆집에서 듣지는 않았을까 뒤늦게 눈치를 보며 웃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셀프 리모델링이지만 하나하나씩 나아지는 모습에 불편함보다는 기쁨을 오래 담아두려 노력했던 우리의 마음에도 밝고 따뜻한 불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