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기며 사는 부부는 아닌데 아내의 생일을 그냥 지나치기 미안했던지 남편이 물어왔다. 우리가 언제부터 생일을 챙겼냐고 괜찮다고 하다 반복되는 물음에 한 마디 던졌다.
"그냥 하루 종일 부엌에 안 들어가면 편할 것 같긴 해요"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하루 세 끼를 차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끔은 하루 종일 부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기에 코로나 이후 종종 떠오르던 바람이었다.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일어나는데 남편이 일어나지 말라며 부엌으로 향했다. 아침에 해놓을 국거리를 전날 저녁에 준비해놓았기에 그것만 내가 하겠다고 한 후 남편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나는 국을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인 핑크빛 소시지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남편이 장을 보러 나가자며 시장 가방 카트를 챙겼다. 한 손에는 카트를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남편은 걸었다. 걷다 보니 누군가 버려놓은 빗자루가 보였다. 부러진 대만 바꿔 끼우면 되겠다며 남편은 빗자루를 들었다.
선물로 받은 커피 쿠폰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들고 나와 잠시 쉬어가는 길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자기야, 카페 갔더니 다들 그 비싼 커피를 사러 줄줄이 차 타고 들어와서는 들고나가던데 우리는 장바구니에 부러진 빗자루에 정말 튀지 않아요?"
"좀 창피한가요?"
"아뇨. 이런 게 창피했으면 우리가 부부가 아니죠. 그리고 선물이 들어왔으니 먹지. 도무지 이 비싼 브랜드의 커피가 뭐가 좋다고들 줄줄이 줄 서서 먹는지도 모르겠고요."
혹 다른 이들과 비교가 되는 건지 미안한 눈빛으로 말을 시작하던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얼마 전 차를 샀다는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던 남편이 미안함을 내비쳤던 적이 있다.
"미안해요. 친구들은 그렇게 다들 잘 나가는데..."
"자기가 왜 미안해요? 그 친구가 돈 벌어서 산 거지 누가 사준 게 아니에요. 그리고 필요하거나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내가 벌어서 살 생각을 하는 거지 왜 남편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어서 불편하고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게 남편 탓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퇴사 후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 미안함 가득한 남편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게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의 무늬는 다르다. 다행히 나나 남편이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무늬는 닮아 있다. 처음부터 닮았던 건 아닐 것이다. 남편을 사랑하기에 그를 위함이 우선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물질적 풍요로움 대신 심적 풍요로움을 택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내가 채워주고 싶지만 아직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않기에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자동차 대신 장바구니 카트를 끌며 걷고, 비싼 커피보다는 부러진 빗자루가 더 마음에 드는 닮아가는 우리임을 확인한 후 슈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재료를 꺼내놓은 후 요리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떡볶이나 호박전과 같은 메뉴는 종종 하는 남편이지만 오늘의 요리는 처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앉아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요리를 하면서 바로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어느새 설거지 감이 산더미같이 쌓이고 요리를 할 공간도 부족하게 된다.
"옆에서 이렇게 치워주니까 편하죠?"
생색내는 아내에게 맞장구쳐주는 남편의 손끝에서 닭볶음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기야, 맛은 있는데 왠지 모를 처음 느껴보는 맛이 나요."
아내의 솔직한 평에 난감해하던 남편이 이것저것 넣기 시작하다 결국은 잘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 왔다.
다른 반찬거리도 구입을 해왔지만 닭볶음탕을 만드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기에 일단 먹기로 했다. 미안해하던 남편이 떠올라 평소보다 더 맛있게 먹으려 노력했다.
"당신은 뭐든지 맛있게 잘 먹어주니 좋아요^^"
"아닌데, 난 맛없으면 안 먹어요. 우리 아들이 편식이 심한 건 나를 닮아서라고요. 맛있으니까 잘 먹는 거예요. 정말 최고의 생일 선물이에요^^"
2021년부터는 소식하며 다이어트하겠다는 다짐이 그렇게 또 무너졌지만 남편이 좋아한다면야 다이어트는 내일로 미루자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다이어트 계획을 더 미뤄야 하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라 자주 만들지 못하는 '무나물'이 두 번째 요리로 완성되었다. 내일은 떡볶이도 만든다고 하니 다이어트는 하루 더 미뤄야겠다. 또 무슨 반찬을 만드는 거냐고 물어오는 딸아이에게 남편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엄마를 위해서 또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하신다. 넌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해"
"네. 노력해볼게요. 엄마 아빠는 정말 천생연분이에요"
엄마 아빠의 닭살스러운 모습에 아이가 자주 들려주는 선물 같은 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이라 믿기에 흐뭇해졌다. 남편과도 흐뭇함을 나누고 싶어 아이의 말을 전하니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자기야, 아이들한테 알려주세요. 천생연분이라는 건 없다고, 인연은 하늘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부부가 서로 노력하면서 만들어가는 거라고요"
남편과 보낸 하루를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다.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나를 보며 그런 남자는 드물다고 정말 좋은 사람 만난 거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기준에서의 좋은 사람이었기에 사랑했던 건 맞지만 정말 이 사람만 유독 좋은 사람인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내 바람만을 요구하거나 익숙함과 편안함을 핑계로 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부터 조심하려 한다. 다음에 아이가 또 그런 말을 할 때는 꼭 이야기해 주리라 마음먹어본다.
엄마, 아빠는 천생연분이 아니라 계속 노력해나가는 부부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