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눈고양이가 산다.

by 살곰살곰

몇 년 만에 보는 함박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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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눈만 보면 바람에 흩날리는 눈처럼 마음도 둥실둥실 떠다닌다. 첫눈을 기다리는 듯한 어린아이의 두근거림은 넉가래 등 제설도구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남편을 보면서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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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뿐만 아닌 동네 골목의 눈을 다 쓸고 다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눈을 향한 반가움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구청에서 나오셨어요?"


눈을 치우고 있는 남편을 향해 지나가던 분이 물어오셨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니 놀라며 지나가신다. 이런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가 내 남편이라니, 어깨가 절로 올라간다.


추위에 약한 아내라는 걸 잘 아는 남편이 미끄러진다며 절대 못 나오게 하니 작은 따뜻함이라도 준비하자 싶어 커피 물을 올렸다. 현관에 서서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마신 남편이 이번에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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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실시간으로 보내오던 남편이 겨울 왕국 같은 풍경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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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계절에 따라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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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물을 집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주는 행복을 잘 모르는 딸아이도 눈이 오니 주택살이를 반가워한다.


"나 이제 눈사람 만들러 마당에 나갈 거야. 주택에 살면 이런 게 좋다니까"


친구와 통화하다 마당으로 나온 딸아이가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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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눈사람 아니 눈 고양이가 딸아이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금방이라도 야옹거릴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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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고양이에 이어 우뚝 솟아있는 눈 강아지가 만들어졌다. 아빠를 닮아 손끝이 야무진 딸아이 표 눈사람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이는 강아지라는데 아무리 봐도 곰이다. 아이가 그려준 얼굴 보호용 곰 그림을 사진에 올려놓고 보니 똑 닮아 있어 웃음이 나온다.


종일 멈추지 않는 눈에 남편은 걱정을 딸아이는 또 다른 계획 속 기대를 보인다. 하루가 지난 후 다시 옥상으로 올라간 남편이 눈을 쓸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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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법도 한데 쌓인 눈에 대한 힘겨움보다는 시선을 멀리 두고 떠오르는 하루를 담아 메시지로 보내온다. 사진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워 마당으로 나가니 아이가 만든 눈고양이가 하얀 눈옷을 입고 반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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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밤새 딸아이가 만든 눈 고양이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하듯 오늘이 지나면 남편이 쓸고 간 자리에 또다시 눈이 쌓일 것이다. 치워도 또 쌓일 눈이지만 남편은 다시 눈을 치울 것이고 딸아이는 사라질 눈사람을 또 만들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덧없음을 알면서도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 순간에 나만의 의미를 더해 삶의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


내 앞에 쌓여있는 치워야 하는 눈보다는 멀리 떠오르는 하루를 보는 남편처럼

사라져 가는 눈고양이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만드는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는 딸아이처럼

2021년을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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