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1년 동안 멈춰있던 독서모임이 온라인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들이기에 반가움이 그려질 무렵 '궁금함'이라는 감정으로 찾아온 이가 있었다.
1년 전, 도서관을 통해 신입회원에 대한 안내를 받고 모임에 대한 공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음 모임을 약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한 달 후가 1년이 되어버렸다. 바쁜 일상 속 책을 펼쳐보기 쉽지 않은 세상, 함께 읽기에 동참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모임에 문을 두드리지만 참석으로 100% 이어지는 건 아니다. 용기를 내 참석을 해도 다른 우선 되는 일에 밀려 발걸음을 돌리는 이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1년 동안 멈춰있던 독서모임을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건 반가움과 함께 어떤 분일까 하는 궁금함으로 다가왔다.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이 다시 문을 여는 날, 드디어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전 2년 전 정년퇴임을 했고 67세입니다. 퇴직 후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에 대한 공지를 접한 후 이렇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오늘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순간 그분이 얼마나 빛나 보였는지 모른다. 글쓰기 수업도 들으시는데 최근에는 모일 수가 없어 안타깝다는 말을 하실 때는 '저도 글쓰기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꾹 눌렀다. 새로 온 이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서모임과 관련되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흘러서는 안 되기에 반가움을 감춰야 했다. 염색하지 않은 흰 머리카락과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오히려 빛나 보이는 그분의 모습에 우리 엄마의 '67세'가 떠올랐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 '나'가 없어지고 희생하는 삶이 자연스럽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의 엄마가 그랬다. 하루하루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먹이기 위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버티시는 것 같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분명 엄마도 나와 같은 나이가 있었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시간이 있었을 텐데 '엄마'라는 이름이 더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그 모든 게 흐릿해지는 줄 알았다. 엄마의 67세는 뇌출혈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은 후에 찾아왔다. 엄마가 뭘 좋아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건만 이제는 엄마도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엄마와 달라진 모습이 참 낯설었던 내 엄마의 67세는 나에게 아픔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엄마를 보면서 다짐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나는 '나 자신으로' '오늘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가끔 딸아이가 이야기한다.
"나는 엄마 젊었을 때가 상상이 잘 안돼요. 지금의 모습이 언제나 엄마였을 것 같아서..."
아이가 만난 '나'는 처음부터 엄마였기에 당연한 말이지만 지나온 시간 앞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종종 학창 시절 이야기나 남편과의 연애 스토리를 들려줄 때도 있지만 아이가 기억하는 건 '어제의 나'가 아닌 '오늘의 나'일 것이다. 내 아이에게 67세의 나는 좋아하는 일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 생각하게 된다.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기에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뒤늦게 책을 펼치고 사람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훗날 내 아이는 67세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이를 보며 '놀라움'이나 '궁금함'보다는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먼저 느끼면 좋겠다. 이 바람을 실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그런 엄마가 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흰머리와 주름이 가득하더라도 마음만은 꿈과 열정이 꿈틀거리는 67세의 내가 그 꿈속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