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소, 혹시 지나가는 할아버지 못 봤소?”

노부부의 산책

by 살곰살곰

“여보소~ 혹시 지나가는 할아버지 못 봤소?”


3년 전 단독주택으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집을 보러 다니던 우리의 뒤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은 키에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 한 분이 허둥지둥 다가오셨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사라졌는데 혹시 본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우리의 “못 봤습니다”라는 말에 급히 골목길을 가로지르던 할머니가 우리가 2년 넘게 살고 있는 동네 분과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늘 같은 시간에 골목을 거니는 노부부가 있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한분께서 치매든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을 가는 시간은 조용한 골목길에 소리가 피어난다. 잠시라도 시선을 떼면 발생하는 돌발 상황 때문에 끊임없이 얘기하고 이끌어야 안전한 귀가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노부부 중 한 분이 3년 전 우리를 애타게 부르셨던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이사를 온 후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철컹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 있소, 그리 가면 안된다니께. 이리로 오랑께....”


곧이어 어린아이 타이르 듯 가르침의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 집 앞을 지나고 옆 집을 지나고 또 옆 집을 지나도록 할머님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작은 골목이기에 지나가는 분 모두를 이웃이라 생각하며 인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밤에 잘 주무시지 않으니 낮에 운동을 하면 더 잘 주무실까 싶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신다고 한다. 허리가 굽어 걷는 게 힘드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볼 때면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산책하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 어디가 편찮으신 건지 걱정이 될 무렵 할머니를 뵈었고 요즘 산책을 안 하시냐고 여쭈니 눈물을 훔치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요양원에 보냈어요. 나도 이렇게 몸이 아픈데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무거운 가구를 들어서 옮기려고 하니 도저히 힘들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 편히 쉬시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뵙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이전과는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차라리 죽어서 없으면 모를까 살아있는데 거기에 놔두고 오려니...”


그동안 그렇게 해오신 것도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고 너무 걱정 마시고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느끼실 삶의 무게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말인 듯해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 시간이면 산책을 하실 텐데... 하는 생각도 잊혀갈 무렵 다시 산책을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은 더 심해지신 듯했고 할머니의 허리는 더 굽어 시선이 땅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함께 걸으시는 두 분의 모습은 늘 그곳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오늘을 보시는 걸까 아니면 과거를 보시는 걸까. 당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이지만 오늘의 그런 힘겨운 모습뿐 아닌 함께 해왔던 시간 속 할아버지를 보기에 가능한 견뎌냄이 아닐까 싶어 진다.


2010년 나에게 신세계를 선물해 주었던 영화 아바타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보며 말한다.


“I see you”


‘당신의 영혼을 봅니다. 당신의 내면을 봅니다’로 해석할 수 있는 나비족 인사말, 그런 의미로 보자면 서로 본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일 것이다. 할머니의 바라봄에는 눈앞의 대상을 즐기거나 감상한다는 동사로서의 ‘보다’와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고 그 무엇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큰 바라봄일 것이다. 이사 오자마자 마주했던 산책하시는 두 분의 모습이 내게 익숙함이 되었듯 할머니에게는 함께 해온 삶 속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익숙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통과하는 바라봄이 함께 하는 두 분의 산책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조용하시던 할아버지가 요즘 부쩍 말씀을 많이 하신다. 마당에 나가 있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두 분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산책이 되어감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잠깐의 인연도 이리 마음속 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점점 기억을 잃고 자신마저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시는 할머니는 어떠실지... 그 삶의 무게와 깊이에 숙연해진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남편 또한 두 분의 모습에 부부의 의미, 삶, 나이 들어감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 떠올림 속 남편의 한 마디가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할머니의 허리는 시간이 갈수록 굽지만 할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반듯하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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