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피해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얼굴에 멍이 든 엄마와 멀리 있는 이모집에 도망가 자면서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집의 편안함이 좋았던 철부지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없는 집은 불안함이었기에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찬 바람을 맞으며 달빛을 위안삼아 공장까지 걸어가곤 하면 엄마의 자전거 앞에는 간식으로 나온 빵이 들어있었고, 때론 그 빵이 있는지 자전거 앞 바구니부터 보곤 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온 엄마에게도 작은 아이에게도 집은 휴식이 아닌 두려움이었고, 힘겨움이었다.
"저 사람은 이제 너희 엄마가 아니다"
폭력 앞에 쓰러져있는 엄마를 향해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들리는 아빠의 말은 엄마가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가장 끔찍한 말이었다. 가난함도 싫었지만, 가난함 보다 더 싫었던 건 그 작은 공간에 가득한 불안함과 공포였던 그 작은 아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보다 이제는 편안하고 조용한 저녁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사한 내가 여기 서 있다.
집은 가족이 돌아왔을 때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안아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곳,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이 집이어야 한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는 건강한 어른이 될 것이고, 그 건강함은 어떤 환경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가정은 아이에게 좋은 성적과 스펙을 쌓게 도와주는 곳이 아닌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사랑과 이해를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 내 경험의 틀 안에서 깨닫고 바랐던 가정의 모습은 적어도 그렇다. 이런 나이기에 조금은 부족한 삶 속에서도 감사함을 느끼며 만족하게 되는 거 같다. 이런 나이기에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도 불안함 대신 더 많은 소통과 이해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은 나나 우리 아이에게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지금 내가 가장 잘 줄 수 있는 걸 주고 싶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우리 아이에게 주려 한다. 이렇게 내가 꿈꾸던 가정 속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우리 아이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내 속의 크지 못한 작은 아이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꿈꾸는 가정은 결국 '함께 성장해가는 가족'이었다.
아직 아이를 키워가는 과정이라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른의 잘못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던 아이가 전화를 끊은 후 이야기해왔다.
"엄마, 친구가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어서 밥도 못 먹고 방에서 혼자 귀 막고 있데...
그래서 차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
아이의 친구가 겪을 공포가 나의 과거를 끌어당겨 마음이 아파왔다. 사람마다 꿈꾸는 가정의 모습은 다 다르겠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부부간의 사랑과 존경이라고 믿는다.
추운 겨울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더 많이 웃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