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 중 대부분은 술에 취한 모습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자주 드시지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에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아빠가 술을 드신다기보다는 술이 아빠를 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예뻐하기만 했던 손주들에게도 실수를 하신다. 지난 추석에는 결국 큰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고, 그로 인해 내쫓기듯 친정에서 돌아와야 했다.
무거움으로 다가왔던 추석 후 다시 설이 다가왔다.
"이번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을 거예요"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올해 19살이 된 큰 아이가 생각을 전해왔다고 한다.
"그래. 엄마, 아빠는 나중에 너희가 자라서 불편하지 않은 그런 부모가 되도록 노력할게"
남편이 전하는 아이의 생각에 안타까움보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친정엄마도 지난 명절을 기억하고 계시는 건지 전화로 아이들이 오냐는 물음을 던지셨다.
"코로나 방역 수칙도 있고, 다음 주에 입사 필기시험 일정이 잡혀서 아무래도 같이 못 갈 것 같아요."
다행히도(?) 코로나로 미뤄지던 아이의 입사시험 일정이 연휴 다음 주로 잡혔기에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은 서운하시겠지만 사실을 아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 추석 때의 일을 친정 아빠는 기억조차 하시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하신다. 그렇게 예뻐하는 손주가 이제 외할아버지를 보지 않겠다고 전한다면 지난 명절보다 더 큰 힘겨움이 생길 걸 알기에 난 거짓을 전해야 한다. 이 거짓이 몇 번이나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설 연휴를 며칠 앞두고 큰 아이가 물어왔다.
"엄마는 외할머니댁에 가실 거예요?"
"응. 가야지. 넌?"
"전 안 가려고요. 필기시험 날짜도 잡혔으니 그것 때문에 못 간다고 해주세요."
"그래. 엄마는 가더라도 너나 아빠에게까지 가야 한다는 강요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죠. 엄마가 가는데 아빠는 당연히 가아죠"
"가족이라는 이름이 내세우는 '당연함'이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나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인 가족에게 불편함 감정도 전하며 서로 이해하고 노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지키려 하는 거지만 너나 아빠에게까지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내가 우리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부모가 되고 싶다. 내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그건 내 입장일 뿐이지 아이가 원하는 방향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 수 있다. 또한 자식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디기보다는 어떤 이야기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족이고 싶다.
부모님의 변화를 바랄 수는 없지만 내가 끌어가는 시간은 바꿀 수 있기에 아이에게 전하곤 한다.
"너는 나중에 집이 불편하고 엄마 아빠가 힘들다면 오지 않아도 된단다. 그런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늘 노력은 하겠지만 너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다고 해서 너한테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야"
안기도 조심스러웠던 아이가 내년이면 20살이 된다. 그동안 내가 어떤 부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는 명확하다.
내가 있는 공간이 아이에게 휴식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하고 즐거울 때는 나를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낳아준 부모니까 어떤 상황에는 이래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짐으로 다가가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이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그때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아주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행복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만 바라보고 사는 부모,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어가는 가정이 아닌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외에도 '나'를 중심에 두고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열정을 가진 그런 부모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의 불행을 안아줄 수 있다.
이제 내가 아이에게 보여줘야 할 모습은 '좋은 부모'가 아닌 '행복한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