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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Apr 12. 2021

내겐 너무 사치스러운 부엌

부엌 도배

오래전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 도배와 장판을 선택하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 시공업체 전문가의 이야기를 참고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결정했던 도배와 장판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우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는 그림이 되기 위해서는 벽지와 집안 가구 색상 등의 분위기가 어울릴 때 가능함을 뒤늦게 느끼고 후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주택 셀프리모델링을 하면서는 남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하기로 했다. 남편이 벽지를 선택해 보라고 했지만 또다시 후회의 나락에 빠질 수 없다며 반드시 당신이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선택 장애가 있는 자신에게 너무 큰 짐을 안기는 거 아니냐면서도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제품 사진을 캡처해서 서로 비교해가며 역시나 나와는 다른 차원의 선택을 했던 남편의 셀프 도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배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측이다.

치수를 알아야 벽지와 부자재 등의 수량을 맞게 구매할 수 있다. 대충 대략적으로 구매했다가는 너무 많이 남을 수도 또는 부족할 수도 있는데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우리로서는 부족했을 때 다시 재구매하고 기다리는 번거로움이 있기에 필요수량을 잘 계산해야 한다.

사진 속 첫 번째와 마지막 벽지가 부엌에 들어갈 벽지이고, 중간에 있는 벽지는 거실용으로 구입했다.

혹시라도 작업하면서 벽지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서 제품을 받으면 제품 코드와 생산일자가 표시된 부분을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같은 모델의 벽지일지라도 생산일자에 따라서 미묘한 색상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재주문할 때에는 이전에 구매했던 제품과 동일한 생산일자의 제품을 구매해야만 한다.

주문한 벽지가 오기 전에 코너 몰딩 작업을 먼저 했다. 꺾이는 모서리 부분은 석고보드의 절단면이 노출되어 반듯하지 않고, 작은 충격에도 석고보드가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얇은 알루미늄 재질의 띠가 종이에 결합된 코너 몰딩 작업을 해주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서 ‘자유각 코너비드’, 또는 ‘자유각 코너 테이프’ 등으로 검색하면 된다.)

참고로 모서리 면에 일반 몰딩 마감을 할 예정이라면 이 작업은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서리 꺾임 부분에 몰딩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 코너비드 작업을 해 주었다. 코너비드의 고정은 목공 본드를 이용하였다.

그다음으로 벽지와 함께 구매한 ‘네바리’라는 부자재를 이용하여 석고보드 연결 부분을 붙여준다. 석고보드의 연결은 아무리 신경 써서 붙인다 해도 약간의 틈새가 생길 수 있고, 단차가 발생할 수 있는데 ‘네바리’라는 부자재를 이용하여 보완해 주지 않고 도배를 하면 벽지가 울거나 심하면 찢어질 수도 있다.


위 사진의 네바리 작업은 석고보드 이음매 부분에 퍼티 작업을 한 곳으로 처음에는 페인트를 계획했다가 서재 작업을 하면서 퍼티 작업에 소요되는 에너지에 두 손들고 벽지로 계획을 변경했다. 네바리는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폭이 좁은 면이 안쪽으로 들어가게(벽과 맞닿게) 붙이면 된다. 전체적으로 풀이 발라져 있는 것 같지만 바깥쪽의 조금 더 넓고 얇은 면에 풀이 발라져 있기 때문에 방향을 확인한 다음 ‘헤라’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하여 펴 바르면 쉽게 붙일 수 있다.

이제 벽지를 실측한 치수표대로 제단 한다.

실측한 가로*세로 길이에서 5mm~7mm 정도 여유 있게 재단하였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재단해도 되지만 벽지에 풀을 발라 놓으면 크기에 따라 1cm 정도 늘어나므로 너무 길게 재단할 필요는 없다.


남편이 재단하는 것을 보니 재단 시 주의할 점은 가로*세로 직각을 최대한 맞추어 재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직사각형이 아닌 평행사변형 형태로 재단하게 되면 천장의 맞닿는 부분에서 다시 재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 불편해지고, 심할 경우에는 길이가 부족해질 수도 있다.

벽지를 모두 재단해 두었으면 이제 도배용 풀을 만든다.

아주 오래전에는 도배용 풀을 직접 끓여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간단하게 믹스커피 타듯이 휘~ 저어주면 된다.


도배용 풀은 반죽형으로 된 ‘밀풀’이라 불리는 제품과 과립형의 분말로 된 제품 2가지 형태가 있는데 우리는 과립형 분말 제품을 구매하였다. 모든 것이 셀프리모델링이다 보니 작업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이 작업 저 작업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장기 보관에 용이한 과립형 분말 제품을 구매했다.


물을 만드는 방법은 제품의 포장지에 잘 설명되어 있다.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는 방법에 대한 물음의 답변이 ‘포장지에 표기된 조리방법 대로’가 국민 정답이 된 것처럼 시공방법의 정석도 제품에 표기된 내용을 잘 읽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제품에 표기된 유의사항을 대략 살펴보면

① 물을 저어가면서 가루풀을 1분 이내에 투입
② 가루풀 투입 완료 후 3분간 추가교반하기
③ 교반 완료된 풀을 15분간 숙성하기
④ 완성된 가루풀에 추가로 가루풀 투입 금지

등이 있었다.


권장 용량의 물에 풀가루를 투입할 때는 한꺼번에 쏟아붓지 않고 동일한 용량으로 투입하는 것이 풀가루가 뭉치지 않는다는 것만 유의하시면 될 것 같다.

벽지에 풀을 바르기 위해서는 가장 넓고 긴 벽지를 아래에 놓고 작은 순서대로 위로 오도록 정리를 먼저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풀을 바를 때 풀이 벽지 테두리에 충분하게 바를 수 있고 밖으로 풀이 삐져나가도 아래쪽의 넓은 벽지에 풀이 발라져서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꼭 주의할 점은 벽지 테두리를 바를 때는 바깥쪽 방향으로 풀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안쪽 방향과 바깥쪽 방향 손가는 대로 붓 칠을 했다가 안쪽 방향으로 붓 칠을 한 곳에는 풀들이 벽지 아래쪽(바깥 면)으로 스며들어 얼룩을 만드는 참사를 저지르기도 했다.


남편이 나의 힘찬 손길을 보면서 “어~ 어~”하고 놀라면서 급하게 중지를 요구했지만 나의 넘치는 파워가 실린 현란한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업하는 스타일인 남편의 잔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벽지에 풀을 바른 후 바로 도배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20분 정도 대기하여 풀이 벽지에 스며들도록 해야 하기에 풀을 칠해 놓은 벽지는 잘 접어서 한쪽에 쌓아둔다.

이제 벽에 벽지를 붙이기 시작한다. 벽지는 한쪽 부분에만 겹침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집 구조에 맞춰 벽지 바르는 방향을 먼저 선택하여 첫 장을 발라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벽지는 광폭(너비 93cm)이었는데 소폭(너비 53cm)보다 너비가 커서인지 생각보다 바르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약간의 얼룩이 비치는 곳은 작업하면서 풀이 조금 묻은 것을 물티슈로 살짝 닦아준 것이다. 마르고 나면 잘 보이지 않는다.

콘센트 부분은 커버를 떼어내고 콘센트보다 조금 작게 구멍을 내어 작업했다. 보통 X로 컷팅을 해서 작업하는데 남편은 콘센트 크기에 맞추어 X자 컷팅을 하기 어렵다며 콘센트보다 작게 사각형으로 잘라낸 다음 꼭짓점 부분에 맞춰 잘라낸 다음 콘센트 옆면에 맞춰 재단하였다.

위 사진 부분이 풀칠할 때 거침없었던 나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물티슈로 잘 닦아내 보았지만 얼룩이 조금 남아서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다. 작은 실수인 1%를 보지 말고 나머지 멋진 99%를 보라고 해도 남편은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볼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조금 번거롭지만 부엌은 수납장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2분할 해서 위쪽에는 연핑크의 벽지를 아래쪽에는 블루의 벽지를 발랐다. 나중에 싱크대 리폼 색상을 감안해서 남편이 결정한 것인데 싱크대가 벽지에 맞춰 어떻게 바뀔지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부엌 쪽 벽지 작업이 끝났다.

(좌) 도배 전 (우) 도배 후

워낙 여러 작업이 안된 상태로 지내다 보니 석고보드 마감이 된 상태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도배 전후 사진을 보니 이상 했구나 싶다. 꾸미는 것에 관심도 재능도 없던 나인데 도배가 마무리된 부엌을 보고 있자니 창 사이에 예쁜 액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졌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딸아이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부탁한 후 액자를 걸어야겠다 싶어 빈 액자를 구매 하려고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액자 하나에 몇 만 원씩이나 쓸 수 없어 중고 액자라도 구매할까 싶어 당근 마켓에 키워드 등록을 하고 기다리던 중 괜찮다 싶은 액자를 만났다.

아이가 그림을 그려주기 전까지 그냥 걸어놔도 좋을 디자인의 액자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액자 하나 걸어졌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사치스러움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자기야,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죠?"

"사치가 다 죽었나 보네요"

"자기야, 멋진 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남편의 웃음이 부엌을 더 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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