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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곰살곰 Apr 20. 2021

남편표 수납장을 본 후 할 말을 잃었다

부엌 수납장 만들기

셀프 집수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치기 전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전에 찍어놓았던 사진을 찾아보곤 하는데 직접 땀 흘리며 작업한 우리지만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큰 창문을 상부장으로 막고 있어서 답답했던 리모델링 전 부엌...

부엌 오른쪽 옆으로 방이 하나 있는데 벽을 철거하고 넓게 쓰기로 결정을 했었다.

부엌과 방 사이의 합판을 뜯은 후 드러난 미닫이 문과 남아있는 벽을 철거했다.

깨고, 뜯고, 보강하고...

아... 다시 하라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을 철거의 추억이다.

그리하여 넓어진 부엌이 남편의 손길을 만나면서 엄청난 변신을 하게 되었다.

내겐 너무 사치스럽다고 느껴지는 부엌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바로...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고 있는 물건...

창문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한쪽 벽에만 상부장을 설치하다 보니 이전 집 부엌보다 수납공간 더욱 부족했다.

사용하지 않는 수납장과 책꽂이에 임시로 쌓아진 물건들로 인해 치워도 치운 것 같지 않았다. 부엌 전체가 석고 마감상태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도배 후 수납장이 놓일 공간에 남아있는 석고벽은 옥의 티로 크게 다가왔다. 도배가 끝나자마자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수납공간이 부족해서라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면서 남편을 재촉했다. 늘 그렇듯 남편은 재촉의 속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수납장은 페인트를 칠할 것이기에 원목이 아닌 MDF 판재를 이용하기로 했다. 가격표를 비교해보니 원목 판재는 엄청 비싸서 오래 고민할 것이 못되었다.


간단하게 엑셀을 이용해서 도면을 그리고 재단할 준비를 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자재의 두께까지 고려해서 피스 박는 위치 등을 알 수 있도록 나름 세밀한 도면을 그렸다.

판재를 재단하기 위해 필요한 사이즈대로 마킹을 한다.

재단은 원형 톱을 이용했다. ‘테이블쏘’라는 장비가 있다고 하는데 부피가 커서 보관도 어렵고 해서 긴 판재의 재단은 항상 원형톱을 이용하고 있다.

원형톱으로 재단 시 반듯하게 자르기 위해서는 톱이 옆으로 밀리지 않도록 가이드를 대 주어야 한다. 원형톱용 조기대가 있다고 하던데 긴 판재를 정밀하게 자를 일이 많지 않아 위 사진처럼 사용하지 않는 몰딩을 임시로 고정하여 자르곤 한다.

나무 가루를 압착하여서 만든 MDF의 특성 때문인지 자를 때 가루가 많이 날린다.

측면과 각 선반으로 사용될 18mm MDF의 재단이 모두 끝났다.

뒤판으로 사용될 3mm MDF 판재도 재단해 준다. 수납장 만들기 공정에서 재단 작업이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고 집중을 요하는 작업인 듯하다.

이제는 조립을 할 차례이다. 나사못을 이용해 고정 하지만 좀 더 견고하도록 목공용 본드를 도포해 주었다. 조금 번거롭지만 본드는 접착 단면에 고르게 펴 바르는 것이 좋으므로 사진처럼 모두 엷게 펴서 발라 준다.

본드를 바른 자재를 필요 위치에 놓고 나사못을 이용해서 모두 결합해 준다. 조립 전 각 자재별로 여러 개의 선을 미리 그려 놓았었는데 자재의 위치와 나사못을 박을 기준선을 모두 표시해 둔 것이다.

위의 과정을 반복하며 3개의 부엌 수납장을 만든다. 아파트 인테리어 현장에서 가져온 수납장용 문 사이즈에 맞추어서 만들었다.

기본 조립이 끝난 후 샌딩 작업을 해 준다. MDF 재단 면은 깔끔하지 않아서 그대로 페인트를 칠하면 보기가 싫다고 한다. 샌딩 작업도 기초 샌딩 하고, 페인트 1차 작업 후에 또다시 샌딩을 하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깔끔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1회로 마무리했다.

샌딩을 한 곳과 안 한 곳의 차이가 크다. 남편은 여러 번 샌딩을 하려고 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말렸다. 초보 작업자로서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나친 퀄리티를 바라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이런 삶의 진리를 가끔씩 망각하고 조금의 틀어짐을 쉽게 못 지나치는 섬세하고 예민한 남편을 다독거리는 것이 나의 큰일 중 하나이다.

페인트 작업을 위해서 젯소 작업을 한다. 젯소를 바르면 페인트의 발색과 접착력이 좋아진다.

페인트는 내부용 수성 흰색으로 칠하였다. 모서리 부분은 붓으로 칠하고 넓은 면은 롤러로 작업했다.

함께 작업하면서 꼼꼼한 성격의 남편에게 칭찬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페인트칠하면서는 칭찬을 받았다. 난 주로 칠하기 쉬운 넓은 면이나 뒷부분처럼 잘 보이지 않는 부분 위주로 칠을 했는데 역시나 실수가 있어도 크게 보이지 않을 부분 위주로 남편이 시킨 게 아닐까 싶다.

나 정말 잘하지 않냐는 질문을 열 번도 더 해가며 사이좋게(?) 총 2회의 페인트칠을 했다.

바닥과 접하는 수납장의 가장 아랫면에 4.5t의 장판을 잘라서 붙이려고 준비 중이다. 원래는 플라스틱으로 된 받침을 장착하려고 했으나 인터넷에서 따로 구매를 해놓지 않아서 급하게 찾은 것이 장판이었다.

이렇게 아래쪽에 4.5mm의 장판을 붙여서 혹시나 바닥에 물이 흘렀을 때 습기에 약한 MDF에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해주었다.

3개의 수납장을 일단 자리 잡은 후 나사못을 이용해 안쪽에서 서로 결합해 준다.

이렇게 하나로 합쳐서 고정해 주는 것이 조금 더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수납장 간의 들쑥날쑥 한 단차를 방지할 수 있다.

이제 문을 달아주기 위해 싱크 경첩을 장착한다. 철거 현장에서 쓸만하다 싶은 문들을 이것저것 떼어오다 보니 싱크 경첩의 종류가 제각각이다. 처음에는 모양이 비슷해서 무작정 붙였는데 회사별로 제품의 크기와 구조적 특성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서야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같은 모델별로 찾아서 다시 장착했다.

경첩을 문에 달았으니 이제 문을 수납장에 고정할 차례이다.

바닥에서 띄워야 할 높이만큼의 두께를 가진 고임목을 놓고 문을 올려놓은 다음 경첩을 수납장 몸통에 고정하면 끝이 난다.

수납장 층별 사이마다 탈착 가능한 수납판을 올려놓을 수 있는 ‘피스다보’를 고정하고 있다. 피스다보를 이용하면 수납함의 층별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좌우 같은 높이에 반듯하게 박아주고 판재를 올려놓으면 새로운 층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수납할 때 위로 높게 쌓으면 밑에 있는 것을 꺼낼 때 위에 있는 것을 먼저 빼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므로 가능한 여러 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드디어 부엌 수납장이 완성되었다.

여기저기 쌓여있던 물건을 정리하고 있자니 어찌나 즐겁던지...

이처럼 어수선했던 공간이...

이렇게 깔끔해졌다.



남편은 수납공간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하며 어디에 수납장을 놓으면 좋을지 어떤 형태면 괜찮을지 물었고 그럴 때마다 난 반대 의견을 내곤 했다.


"수납장을 여기저기 놓으면 집도 좁아 보이고 안 쓰는 물건도 정리하기보다는 쌓아놓게 되지 않을까요? 그냥 꼭 필요한 수납장만 놓고 넓고 깔끔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요?"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있고 놓아 둘 공간이 필요한데 동선을 고려해 가까운 곳에 수납할 공간이 있어야 편리할 거예요."


이제는 수납장과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표 부엌 가구의 정점인 냉장고장까지 만들어진 지금은...

수납장과 관련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못.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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