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2010년,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방송통신대 입학이었다.
어떤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대학 졸업장을 향한 단순한 바람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지금의 내 아이들보다 더 어렸던 중3 시절...
고등학교 진학과 관련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있었다.
몇 등까지는 인문계고등학교, 그 이후 몇 등까지는 상업고, 그 이후 몇 등까지는 실업고...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지가 아닌 단순히 성적으로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던 시절,
상고에 진학하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담임선생님께서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 오시라고 해라"
내심 친구들이 다 가는 인문계고등학교에 가고 싶었기에 담임선생님의 말이 기뻤던 것 같다.
"너희 담임이 네 인생 책임질 거라든?"
아빠의 불호령에 이어 엄마가 학교에 다녀가셨고 그렇게 나는 상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을 보내줄 수 없는 여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아빠의 불호령이 그때는 어찌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안다. 그때 누구보다 아팠던 건 내가 아닌 부모님이었음을...
"그때 내가 너를 공부를 시켰어야 했는데..."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자식을 보며 종종 후회를 떠올리는 아빠의 모습에서 뒤늦게 그 아픔을 보았다.
사실 그렇게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성적이면 다들 인문계를 가니 친구들과 함께 인문계를 가고 싶었던 거였고, 막연하게 꿈꾸던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오히려 상고에 진학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문계에 갔더라면 그저 그랬을 성적이 상고에 입학하니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어있었고
눈에 띄지 않던 나에서 주목받는 학생이 되어 부회장까지 맡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변화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상고 진학은 나에게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가 될 기회로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과 변화도 고등학교에 있을 때뿐이었다.
20살, 첫 직장에 입사한 후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상고 진학이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나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힘이 부족했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된 후에도 그런 내 마음이 남아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무슨 학과 몇 학 번이세요?"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누군가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채워지지 않는, 이름 모를 내 감정을 위해 그렇게 나는 두 아이의 부모가 된 후 대학생이 되었다.
2010년에 입학했으니 2015년에 졸업을 했어야 했지만 논문이나 자격증 취득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졸업이 미뤄졌다. 여전히 어떤 목표가 있어서가 아닌 단순한 바람이었기에 간절함이 없었나 보다.
2019년부터는 졸업요건이 완화되어 학점만 충족시키면 졸업이 가능하기에 자동 졸업대상자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19년에 대졸자가 되었다.
큰 아이가 중3이던 2018년, 마이스터고를 입학한다는 이야기에 선생님들이 몇 번이나 물으셨다고 한다.
"네 성적에 왜 마이스터고를 가니?"
"부모님이 허락하셨어?"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대졸자와 고졸자의 차이가 있는데..."
단발머리였던 내가 흰머리를 신경 쓰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세상은 여전하다.
아니 내가 크던 때보다 더 한 것 같다.
상고에 진학하는 게 별 이유 없이 싫었던 나와는 달리 내 아이는 스스로 당당하게 외쳤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그런 생각들을 하니 큰 일이에요. 그러니 안 바뀌죠"
"엄마 공부도 적성이에요. 가장 큰 적성..."
그렇게 당당하던 내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공기업에 합격했다.
오리엔테이션이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입사할 회사 분위기를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대졸자와의 차이가 어느 순간 존재할 수 있음을 아이에게 전하니 여전한 당당함이 되돌아왔다.
"엄마 당연하죠. 4년이라는 시간을 더 공부하며 딴 졸업장인데 그 부분을 인정해줘야죠.
저도 회사 다니다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 오는 차이나 또 내 필요가 강하다면 입학을 하면 되는 거죠"
겉으로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며 나는 그런 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부끄러운 나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이 눈부셨다.
뒤늦게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
'남들이 다 하니 나도 해야 해'라는 졸업장이 아닌 진짜 내가 원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싶은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대졸자가 아니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고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