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을 끓이던 중 매콤함이 필요하다 싶어 마당으로 나갔다.
남편의 손길 덕분에 잘 자라고 있는 매운 고추를 따서 들어오려다 붉게 물들어가는 방울토마토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내 키보다 더 커버린 방울토마토가 쉴 틈 없이 열매를 맺고 익어가고 있다.
잘 익은 녀석으로 골라 '훅' 하고 먼지만 털어낸 후 입으로 가져간다.
볕의 따뜻한 기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탱글 탱글한 껍질이 툭 터지는 순간 입안 가득 자연의 향이 퍼졌다. 분명 사먹는 방울토마토보다 부족한 달콤함인데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맛을 아니 이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미각과 후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부부의 시간이 담긴 맛이었다.
남편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마당 텃밭의 선물을 받았으니 이제 내 차례이다.
고추의 얼큰함이 더해진 황태 국과 깻잎을 넣은 달걀말이를 식탁에 차려본다.
직접 키운 채소의 맛과 향이 소박한 식탁을 정갈함으로 변신시켜주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이 남편 없이 살아온 시간보다 길어졌다.
첫 만남의 설렘과 불꽃 튀는 사랑이 사라진지는 오래지만 그 자리에 더 큰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다.
'함께' 이기에 가능한 사랑이고 믿음이다.
주택을 알아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라고 생각했다.
작지만 우리만의 텃밭을 꾸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주택을 살 돈...
살아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주택살이를 행복하게 이어가기 위해 필요조건이 있었다.
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함께'였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직접 집을 고쳐나가고 있고
나는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공간에 우리의 사랑을 채워가고 있다.
남편의 정성으로 마당 텃밭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져 가고 있고
나는 그 풍성함을 식탁 위로 옮겨놓는다.
언젠가 더 나이가 들면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는 아빠의 이야기에 반대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시골로 가봐라. 엄마 일만 더 늘어나지. 너희 아빠가 손이나 하나 까딱하겠냐"
누릴 수 있는 게 많은 주택살이이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야 가능한 시간이다.
기억 속 엄마의 목소리에 깻잎을 솎고 있던 남편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런 남편이 정성스레 키운 깻잎을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아 땡볕 아래에서 깻잎을 정리해 부엌으로 들고 왔다.
식초물에 담가 씻은 후 크기별로 담아 물을 뺀다.
큰 깻잎으로는 김치를 담고, 작은 깻잎은 나물을 해야겠다.
양념장을 만들어놓으면 식탁에 앉아 깻잎에 한 장씩 바르고 있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택에 살 수 있어 다행이다.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