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아들의 군입대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훈련소 입구를 지나 뒷모습마저 희미해질 무렵 고개를 돌리는 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터졌다. 익숙함을 뒤로하는 아쉬움이었을까.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두려움이었을까.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아들의 감정을 안아줄 수 없다는 사실이 엄마라는 이름을 아프게 끌어올린다.
가난과 폭력 앞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쓰러지던 엄마의 모습이 내 유년에 갇혀 지워지지 않는다. 작은 나를 키우고 감싸던 부모라는 이름은 아파도 벗겨낼 수 없는 피부였다. 그것조차 없으면 살 수 없으니 받아들이며 숨죽이는 법을 터득해나갔다. 엄마라는 이름은 아픔이었고 상처였다. 곪아 터진 상처로 둘러싸인 벽이 두꺼워질수록 나의 자리는 작아졌다.
가족이라는 이름과 부모라는 존재는 벗어나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을 이루고 부모로서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단 한 번도 자신일 수도 없었던 이가 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름이 생긴 후에야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찾는 시간이 우선이었다. 내가 낳은 아이를 안으며 어린 시절의 나를 껴안았고 품 속 아이가 걷고 뛰면서 내 키를 넘어설 무렵 나를 옥죄던 벽이 무너졌다. 아이가 스물이 되었을 때 나 역시 비로소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
스물, 훈련소 입구를 지나는 아들에게 보이지도 않을 손을 흔든 건 어쩌면 스물의 나를 향한 손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견뎌왔다고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인사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부모 곁을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며 아팠던 나를 떠나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지에 뿌려진 그리움의 대상은 가족이었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공간이었다. 가족에게 아픔이 아닌 사랑과 그리움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늘 좋은 부모, 다정한 엄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는 즐거운 기억과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시간을 껴안았고 그로 인해 아들에게 고마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 부모 역시 늘 아픈 부모, 상처를 주는 부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온 모든 기억을 바꿀 순 없겠지만 선택적으로 껴안고 있던 아픈 시간을 놓아주기로 했다. 부부가 되고 엄마로 불리고 나서야 온전한 내가 되었다.
당연한 건 없다. 부모라고 해서 모두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를 존경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필요에 의해 당연함의 잣대를 들이미는 어리석은 이는 되지 않으려 한다. 이제 곧 첫 휴가를 나오는 아들에게 전할 말을 떠올려본다. 부족함보다는 따뜻함을 기억해줘서, 엄마라는 이름을 벅차오름으로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가슴속에 먼저 눌러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