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당신에게
인간실격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서 능숙하게 ‘좋아요’를 누르고, 적절히 감탄하는 댓글을 단다. 이 세련된 디지털 가면무도회 한복판에서, 나는 1948년 일본의 한 작가가 그려낸 음울한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속 주인공 요조(葉蔵)를 떠올린다. 시대를 뛰어넘어, 그의 불안은 우리의 불안과 닮아있다.
요조에게는 ‘익살’이라는 생존 전략이 있었다. 그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했기에,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우고 어릿광대를 연기했다. 그의 익살은 단순히 유머 감각이 아니었다. 그는 수기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어'라고 외치는 그 익살 뒤에,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겠지?'라고 묻는 요조의 애처로운 구애가 숨어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민음사)
결국 이 모든 것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순수한 욕망의 함정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사회의 잣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사회가 규정한 ‘좋은 삶’의 매뉴얼—안정된 직장, 원만한 대인관계, 긍정적인 태도—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내가 정말 무엇을 원했는지 잊어버린다. 매뉴얼에 맞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실격’ 판정을 내리며 괴로워한다. 다자이가 그린 요조의 비극은, 이처럼 사회의 기준에 나를 맞추다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자기 파괴의 과정이다.
《인간실격》은 읽는 내내 음울하고 기괴한 기운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낡은 소설을 다시 펼쳐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의 자격’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실격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서늘하게 비춘다.
그러니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인간 실격자가 되지 않을까?'가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고.
애써 웃는 익살 뒤의 두려움을 알아봐 주는 것. 우리는 모두 실격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영원한 ‘자격 미달’의 존재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익살은 무엇인가. 나의 익살은 또 무엇인가. 그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의 작아짐을 들여다볼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민음사)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얼마나 허술한지 생각할 수 있었다. 다만, 깊은 우울감에 빠질 수 있으니 '마음 단단한 날'에 펼치기를 권한다.
별점(★★★☆☆ 3.5/5점)
한 줄 추천: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사회의 잣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별점이 낮은 이유는, 암울하고 기기괴괴해서 다시 펼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