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했는데, 내가 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1을 앞둔 여러분, 그리고 같은 길을 지켜보는 부모님께 먼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움’을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점수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있을까요?
오늘의 학교는 너무 오래 점수와 등수의 논리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문제를 푸는 속도와 정확도는 높아질지 몰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 물음을 세우고 탐구하고, 내가 왜 배우는지 깨닫는 힘은 좀처럼 자라지 못했습니다. 정기고사, 수행평가, 기말고사,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수능이라는 거대한 줄세움 시험.
학생의 하루는 이 시험과 평가들로 시간표가 채워지고, 생각의 결마저 그 틀 안에서 길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부모님도 마음속으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점수를 얻는 기술은 배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푸는 능력만으로는 미래의 삶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더 큰 세계는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 ‘왜 그런가’를 묻고, 문제 풀이가 아니라 ‘문제를 다시 보는 눈’을 요구한다는 것을.
요즘 많은 중3 학생이 말합니다.
“공부는 했는데, 내가 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문제를 외우는 데 익숙해졌지, 생각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아이들의 이 말은 지금 교육이 어디에서 어긋났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시험이 공부의 목적이 되는 순간, 배움은 도구로 전락하고, 그 순간 학생은 자신이 왜 배우는지 잃어버립니다.
부모님들도 불안합니다.
“우리 아이가 점수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쩌나.”
그러나 돌이켜보면, 오늘 우리가 겪는 교육의 문제는 대부분 점수 경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험점수가 곧 능력이고, 능력이 곧 미래라고 믿게 된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묻기보다 ‘얼마나 맞았는지’만 세게 됩니다.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정기고사와 수능으로 줄세움 구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뜻을 묻고, 서로 뜻을 나누며, 삶 속에서 함께 뜻을 해내는 배움을 누리며 걸어가야 합니다.
고교학점제는 바로 그 전환의 첫 관문입니다. 학년의 벽을 낮추고, 시간표의 칸막이를 풀어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싶은 길을 선택하고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중3을 마친 여러분, 여러분의 배움은 점수보다 넓고, 성적표보다 깊습니다. 부모님 여러분, 아이의 길은 등수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가’로 결정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벽을 넘을 때입니다. 점수 따는 학습에서 배움의 시대로, 줄세움의 학교에서 나세움의 학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