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사의 그늘

평가가 배움을 가두는 순간

부모가 느끼는 답답함도 크다.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이 분명 있는데, 시험이 가까워지면 모두 멈춘다. 음악,동아리,탐구 프로젝트,책 읽기…아이의 가능성이 활짝 열릴 순간들이 시험 대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아무리 “천천히,넓게 배워도 된다”고 말해도,학교의 시간표와 평가 구조는 아이를 다시 시험이라는 좁은 통로로 몰아넣는다.

정기고사의 그늘은 단순히 평가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배움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 관점의 문제다. 시험을 중심에 둔 학교에서는 아이의 성장은 점수로 환산되고, 배움의 과정은 줄어든다. 아이가 질문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시간은 존중받지 못한다. 그 결과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해지고, 배우는 기쁨을 잃어버린다. 정기고사는 더 이상 아이들의 배움을 담아낼 그릇이 아니다.

배움이란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은 탐구와 성찰의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깨닫는다.고등학교가 진정한 배움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평가 방식이 아니라 배움의 시간, 배움의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 정기고사 중심 체제를 벗어난다는 것은 시험을 없애자는 뜻이 아니라, 시험이 배움(교육)을 지배하는 구조를 멈추자는 뜻이다.

아이가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배우고,질문하고,탐구하는 시간이 보장될 때, 비로소 고등학교는 아이가 ‘나를 세우는 배움’을 시작하는 곳이 될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을 지나 고등학교를 생각하는 지금, 많은 학생과 부모는 한 가지 불안을 공유한다. 고등학교에 가면 모든 것이 ‘시험 대비’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어떤 질문을 품고 자라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험에서 몇 점을 받을까’가 되어버린다. 이 구조에서 학생의 하루는 배움이 아니라 준비,탐구가 아니라 반복이 된다.

정기고사는 한 학기의 길고 넓은 배움의 시간을 단 몇 개의 시험 주에 묶어 두는 장치다. 시험이 다가오면 교실은 자연스레 ‘시험 대비 ’로 바뀌고,교사와 학생 모두 숨을 고를 틈 없이 달려간다.교사는 문제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시간을 쏟고,학생은 책을 외우고 문제집을 푸는 데 매달린다.한 학기 동안 경험해야 할 생각·탐구·토론의 과정은 ‘시험 후에 하자’며 밀려난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또 다음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묻지 못한다.정기고사는 학생에게 질문하는 능력보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을 요구하고,깊이 있는 배움 대신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게 한다. 결국 아이는 ‘배움의 임자’가 되는 대신,평가를 따라가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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