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사(중간·기말)가 만드는 과목쏠림의 틀

“안전한가요?”가 아니라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를 물어야

복도 끝 교무실 앞 의자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손에는 시간표가 들려 있었고, 종이 끝은 땀에 젖어 구겨져 있었다.


“선생님… 과목 바꿀 수 있어요?”


아이 목소리는 작았다.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으려고’ 묻는 목소리였다.


“왜 바꾸려고?” 하고 물었다.
아이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거긴 시험이 너무 세대요. 중간·기말이요.”
그리고 더 조용히 덧붙였다.
“제가 그 점수 못 맞을 것 같아서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 학교에서 ‘선택’은 늘 자유로 시작하지만, 정기고사 앞에서 계산으로 끝난다는 걸.


정기고사(중간·기말)는 그냥 시험이 아니다.
학교 전체에 ‘위험표’ 같은 걸 붙여 놓는다.
어떤 과목은 “안전하다” 하고, 어떤 과목은 “위험하다” 한다.
아이들은 그 표를 보고 움직인다.


왜 과목쏠림이 생길까.


첫째, 정기고사는 한 번에 크게 흔든다.
한 번의 시험이 성적과 줄을 만든다.
그러니 아이는 “재미있나?”보다 “망하지 않나?”를 먼저 본다.
좋아하는 과목도 ‘위험’이면 피하게 된다.


둘째, 정기고사는 과목을 ‘배움’이 아니라 ‘점수’로 보게 만든다.
수업에서 얼마나 자랐는지보다,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더 크게 남는다.
어려운 과목은 깊이 배우면 배울수록 시험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때 깊은 배움은 손해처럼 보이고, 쉬운 점수는 이득처럼 보인다.


셋째, 정기고사는 소문을 키운다.
“그 과목은 시험 어렵대.”
“거긴 평균 낮대.”
소문은 빨리 퍼지고, 아이들은 “피해야 할 과목” 목록을 만든다.
그 목록이 다음 학기 시간표를 바꾼다.
사람이 몰리는 과목은 더 몰리고, 사람이 적은 과목은 아예 열리지 않기도 한다.
그럼 선택권은 말뿐이 된다. “없어서 못 듣는” 선택이 된다.


넷째, 정기고사는 학교를 ‘점수 중심’으로 묶어 버린다.
선생님은 수업을 넓히기보다 시험 범위를 관리하게 되고,
아이들은 탐구보다 문제풀이로 몰린다.
이때 학원은 더 빨리 끼어든다.
“그 과목은 학원 없으면 힘들어.”
과목쏠림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배움 기회를 가르는 칼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끊어야 할 것은 시험 그 자체가 아니다.
정기고사가 아이들의 선택을 끌고 가는 힘이다.
아이들이 “과목 바꿀 수 있어요?”를 도망치듯 말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과목을 고를 때,
“안전한가요?”가 아니라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를 먼저 묻게 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시험 한 방으로 줄을 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업 속에서 해 본 것, 자란 것, 고친 것을 살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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