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기·칸막이·줄세움(서열)의 힘
문제집 한쪽이 하얗게 닳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요즘 뭐가 제일 힘들어?”
아이는 잠깐 웃다가, 곧 눈을 내렸다.
“선생님, 저… 배우는 게 자꾸 무서워져요.”
무서운 게 공부가 아니라, ‘틀리는 것’이란다.
그 말이 아프게 남았다.
배움은 원래 무서움을 줄이는 일인데,
우리는 배움으로 무서움을 키우고 있었다.
학점제가 아무리 “선택”과 “배움”을 말해도,
수능이 그대로 있으면 모든 것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첫째, 수능은 ‘찍기’의 힘을 키운다.
깊이 생각하는 힘보다, 빠르게 맞히는 기술이 앞선다.
틀리면 바로 점수가 되고, 점수는 곧 서열이 된다.
아이들은 질문을 키우기보다 정답을 모으고,
모르는 것을 붙잡기보다 넘긴다.
배움은 천천히 자라는 일인데, 수능은 그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어져 있는데 시험은 쪼개 놓는다.
문제는 단원별로 잘리고, 과목은 서로 등을 돌린다.
그래서 아이들은 연결해 생각하기보다
칸마다 외워 넣는 법을 배운다.
학점제가 주제배움, 융합을 말해도
수능의 칸막이가 그대로면 교실은 다시 돌아간다.
“그건 시험에 안 나와요”라는 말 한마디로.
수능 점수는 대학으로, 대학은 취업으로 이어진다.
그 줄이 단단할수록 학교는 안전한 길만 찾는다.
과목 선택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리하지 않으려고”가 된다.
학점제의 선택권은 자유가 아니라 계산이 되고,
교실은 배움터가 아니라 ‘줄 서는 훈련장’이 된다.
그래서 학점제의 핵심은 상대/절대의 형식이 아니다.
품구멍(블랙홀)을 그대로 둔 채, 주변만 꾸미면 빨려 들어간다.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시험 하나가 아니라,
시험이 배움을 끌고 가는 힘이다.
아이들이 “틀리면 끝”이 아니라
“틀리면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학교.
그 학교는 수능의 찍기·칸막이·줄세움이 약해질 때 가능하다.
선택이 배움이 되려면, 배움이 곧 삶의 힘이 되려면,
품구멍(블랙홀)의 방향을 뿜구멍(화이트홀)으로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