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물음이야말로 뜻배움을 누리는 사람만이 지닌 보람이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정답이 하나뿐’이라는 신화를 붙들고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정답을 외우는 학생이 우등생이 되었고, 사회에서는 정답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 전문가가 되었다. 이 구조는 압축성장 시대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문제는 단순하다. 우리는 뜻물음배움을 하지 않는다. 뜻물음(질문)을 드러내면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누군가의 뜻물음을 받으면 공격받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강의실은 침묵하고, 회의실은 눈치만 흐른다.
하지만 듯사람(AI)과 더불어 배움 시대에는 정답을 외우는 능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 손누리(휴대폰) 속 듯사람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능력은 단 하나다. 왜(Why)를 통해 스스로 뜻물음배움을 여는 힘이다.
왜 지금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가. 왜 우리가 가진 답이 더 이상 답이 아닌가. 이 뜻물음배움의 출발점을 열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왜(Why)를 묻지 않는 사회는 문제를 잘못 정의한다.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어떻게(How)도 틀리고, 결국 무엇(What)도 틀린다. 지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 판단과 시대착오적 결정들은 모두 이 왜(Why) 기반의 뜻물음배움 부재에서 비롯된다.
듯사람(AI)은 어떻게(How)에 특화된 존재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왜(Why)를 통해 뜻물음배움을 열고, 상황을 다시 뜻매김하고, 새로운 풀이(답)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것이 진짜 이끎과 따름(리더십)의 핵심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뜻물음배움을 잃어버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뜻물음배움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답에 대해 왜(Why)를 통해 뜻물음배움을 시작하는 것. 이것이 꾸준히 나아갈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은 듯사람(AI)이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왜를 통해 스스로 뜻물음배움을 여는 참배움힘은 뜻배움을 누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뜻물음배움을 되찾는 나세움 배움사회만이 미래를 참답게 열 수 있다. 샘터에서 솟아나는 샘물처럼 뜻물음배움으로 비롯하는 뜻배움으로 우리는 '줄세움'이 아닌 '나세움'으로 사회를 바꿔낼 수 있다. 뜻물음은 뜻배움(뜻물음-뜻나눔-뜻해냄)이란 새롭고 놀라운 배움으로 나아가게 돕는 바탕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