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김신일은 1990년에 당시까지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법 체계로 인해 사회교육이 위축된 현실이 극복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 평생교육진흥법의 개요를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6)
제1장 총칙 제2장 국민의 학습의 권리와 자유 제3장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임무 제4장 고용주의 의무 제5장 교육기관*단체*시설 제6장 학습의 인정 제7장 교육의 관리
(6)의 제2장에서 김신일(1990:88)은 “교육은 국민의 학습권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므로 교육권보다는 학습권이 우선한다. (줄임) 국민은 의무교육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원하는 교육기관과 시설을 선택할 자유를 지닌다. 이 선택의 자유원칙은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에서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배움권(학습권)을 법제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볼 수 있다. 늘배움(평생교육)의 진흥이 상대적으로 학교배움의 위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비대화한 학교배움을 바로 잡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1994년 9월에 「신한국 창조를 위한 교육개혁의 방향과 과제」라는 첫 보고서에서 1) 학교 밖에서도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 체제의 구축이 절실하다 2)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 수요자’로, 학교와 교사를 ‘교육 공급자’로 보면서, 교육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3)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을 위해 교육법 및 교육 관계 법령 정비와 사회교육 및 사회의 교육적 기능 강화를 강조했다.
이어서 1995년 5월31일에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소위 5.31 교육개혁안이다. ‘열린교육 사회, 평생학습 사회’를 지향하면서 ‘세계화’를 내세워 역사의 대전환기에 새로운 교육 체제를 구축한 자가 역사의 선두주자가 된다며 세계의 중심 국가를 지향하는 신한국의 창조는 바로 교육혁명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면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진 열린교육사회, 평생학습 사회 건설’을 신교육 체제의 비전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1차 보고서에서 ‘교육 수요자’, ‘교육 공급자’로 표현했던 것이 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비판에 따라 2차 보고서는 ‘학습자’라는 표현을 썼고 학습자를 전면에 내세운 ‘학습자 주도의 평생학습 사회 건설’이라는 전망으로 학습자의 권한 확대를 제기함으로써 기본권으로서 학습권에 관한 논의를 본격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2월에 신직업교육 체제 구축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제3차 대통령 보고서에 실린 교육기본법 시안에서 ‘배움권(학습권)’에 관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학습권을 넣자는 의견(김신일)과 넣을 때의 법제화 부당성에 관한 의견(강인수) 대립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6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친 실무작업 끝에 교육기본법 실무 시안이 작성되었는데, 이 실무 시안에 평생학습권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표2 교육부의 교육기본법안의 학습권 조항의 변화
교육부 실무 시안(1996.6)
공청회 발표 시안(1996.7)
당정 협의용(1997.5)
제4조(평생학습권) ①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학습을 할 자유(이하 ‘평생학습권’이라 한다)를 가진다.
제3조(평생학습) ①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학습할 자유를 가진다.
제3조(학습권) ①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학습할 자유를 가진다.
표2에서 보듯이 “당시 교육부가 교개위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우리가 넘겨놓으니까 교육부에서 우리를 배제하더라구요. 처음에 초안한 사람들의 의도를 듣고 정신을 살려가라 했는데, 교육부가 따로 사람을 모아가지고 회의하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그 뒤로는 별로 관심을 안 가졌죠. 그래서 나온 게 96년 7월에 교육부에서 만든 안이, 여기에 평생학습이 나오죠.-강인수 교수 증언”
이제 ‘교육’이 아니라 ‘배움’으로 봐야 할 까닭을 살펴보기로 하자.
‘교육’은 배우는 이(학생)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배우는 내용이 다를 뿐인데, 어떤 것은 ‘교육’으로 어떤 것은 ‘훈련’으로 또 어떤 것은 ‘보육’으로 혼란스레 구분해 온 것이 옳은 것인지를 되묻게 한다. 이런 뜻에서 “교육이라 함은 교육, 교습, 훈련, 보육 또는 인력개발 등 용어에 구애됨이 없이 법령 또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사전에 준비된 교육매체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학습자를 교수하거나 학습을 지도하는 행위를 말한다.”에서 ‘교육’은 ‘배움’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제 배움의 호환성을 생각해보자. 배움의 호환성은 “교육개혁위원회가 ‘열린교육 사회, 평생학습 사회’를 제창하면서 중심 주제가 되었고, 객관적으로 평가*인정된 교육과정을 이수한 경우 학점을 인정한다는 학점은행제(크레딧뱅크 시스템)제안으로 구체화하였다.”
또 학교가 닫힘에서 열림으로 환경 변화와 무관한 안정 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바뀌는 것을 뜻하고 교원도 지식*정보의 독점을 전제로 한 전문성, 외부와 동떨어진 자율성 개념도 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배움의 이룸(학업성취)인 학력과 자격과 경험학습을 서로 주고받는 사회로서 늘배움 사회는 현실로 다가와 있다. 부처간 이기주의로 꽃을 피우지 못한 ‘교육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에 이르는 ‘배움권’을 올바로 꽃피우려면 이제 새롭게 배움 혁명의 길을 함께 찾는 데 나서야 할 때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누구라도 사는 동안 즐거운 배움으로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나라는 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