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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아니라 '배움'이니까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참삶을 가꾸는 앎이 곧 배움이다


 누구나 누리고 싶어 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참되고, 바르며,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바랄 것이다. 이와 같은 참삶을 어떻게 가꿀까? 아는 것이 힘’이라 하지 않았는가. 마땅히 세상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일(자리)’을 맡고나선 자릿값을 잘 해야 할 테니까. 

  누구든 맡은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실행하길 바라리라. 그리되면 누구나 저마다 느낄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 온 보람을. ‘나도 쓸모 있을 걸’에서 보듯이 ‘살아있음(존재감)’을 맛보아 좋을 테니까.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내가 사는 까닭이 될 테고. 

  왜 세상을 더 잘 알고 싶어 할까? ‘생각하니까 사람이다’란 말에서 보듯 호기심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앎’의 과정이 어떠한가? 앎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을 찾는 배움이라 할 수 있다.  분명 ‘가르침(교육)’이 아니라 ‘배움’이다. ‘배움’이란 타고난 ‘본능’이다. 태어나서부터 숨을 쉬듯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배우게 마련이다. 사람의 배움은 이런 숨쉬기와 같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배움’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속살이자 열쇠이다. 누구나 몸으로 숨을 쉬면서 절로 목숨을 지키듯이. 


 무엇인가를 묻고 답을 찾는  ‘배움’을 마땅히 즐겨야


   우리가 세상을 더 잘 알려면 반드시 나라에서 정해 놓고 주어진 ‘가르침(교육)’을 받아야 할까? 오히려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배움’을 즐겨야 할까? 마땅히 ‘배움’을 즐겨야 할 것이다. 

   ‘배움’의 바탕이 무엇인가? 배움의 바탕은 ‘물음’이지 않은가? 아이들을 보라. 그들은 자주 묻지 않던가? 어린 아이들은 쉬지 않고 물음을 던진다. 묻고 답하며 우리를 생각으로 이끄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물음이란 ‘호기심’의 싹이 꺾이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정해진 ‘답’을 바라지 않는다. 주전자로 잔에 물을 따르듯 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니 아이들은 ‘가르침(교육)’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스로 절로 묻고 있는 아이들을 보라. 배우는 능력은 숨 쉬는 능력과 같아서 뜯어 고치거나 간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가 더러워지면 숨쉬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기침하고, 재채기가 나며, 헐떡이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배움’을 지원받을 권리이다


   안타깝게도 오늘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교육’을 말하지만 오늘날 사회 환경은 ‘교육(가르침)’ 때문에 몹시 더러워졌다. 우리 사회 환경이 더러워지면서 오히려 제대로 배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여기서 묻게 된다. ‘교육’을 내세운 수많은 외침과 달리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환경이 아닌지를? 

   대체 이런 ‘환경’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그동안 대한민국은 헌법 31조에 따라 ‘가르침(교육)’을 받을 권리를 강조하여 가르쳤고 ‘반공민주정신’에 투철한 삶의 길이 우리의 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을 외게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과연 ‘가르침을 받을 권리’가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일까? 우리는 ‘가르침(교육)’이란 말에 갇혀 정작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를 놓치지 않았던가? 오늘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마땅히  ‘배움’을 지원받을 권리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이제라도 누구나 재미를 느끼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배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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