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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 교육’에서 ‘소통이 있는 배움’으로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소통 없는 강압 교육이 과연 정당한가요?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께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이 활약한 이론 물리학에 관심을 두고 학자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 꿈을 이루기가 힘들거란 생각을 날마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에 힘입어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배움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에는 정답이 없기도 하죠. 왜냐하면 누구나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제 스스로 한 생각이 소중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배곳(학교)에선 질문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토론과 발표가 활발히 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에서는 하브루타(짝궁토론)라고 마음 맞는 친구와 토론하며 공부합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다르게 자료를 많이 모아 서로 하브루타 도서관이 있더군요. 이를 토대로 한 실험을 봤는데 하브루타와 홀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비교하였는데 서로배움(토의토론)형이 홀로배움(자습)형보다 학생들의 학문적 사고가 더욱 깊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보람(효율)쪽에서도 아주 좋은 방법이죠.      


주입식으로 수업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지금 학교에선 단순히 군대식의 방식으로 많은 것을 강제적으로 외우고 느끼거나 생각할 기회도 없는 상태에서 학생의 소질과 흥미를 돋우어 주지 않고 강제적으로 주입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입은 단기간에 좋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학문적으로는 기억에 남아사 써 먹는 것이 없죠. 해외의 입학사정관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을 이 정도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을 기계적으로 해결한다. 장기간으로 봤을 때 성장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말이죠. 


슬프지 않습니까? 또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답이 95%라고 정해진 것을 토대로 논문을 쓰고 연구 발표를 하죠. 이러한 나라에서 새로운 이론을 펼치는 학자와 노벨상이 나올 수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배움으로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학자를 기를 수 있을까요? 엄청 줄어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의 원동력은 학자인데 말입니다.          


고교학점제를 당장 실시해 주세요     


해외에서 과목을 선택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의 문이과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과학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 또한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관련이 다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여러 분야를 탐구하고 호기심을 가지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해외에서 저희 나이대의 청소년들은 지금 여러 서적을 읽고 압박이 아닌 스스로 질문을 해결해 가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러한 시간을 보내죠. 방과후에는 운동 미술 음악 등을 하며 예체능 활동을 즐기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학문은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질문을 하고 새로운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그저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그 내용을 찿아서 공부하고 이것이 공부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배움은 단기간이 아니라 평생 가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 우리나라는 단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단기간에 많은 것을 외우고 질문이 없는 상태에서 운동 등 자신의 여가의 소질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라나죠. 지금도 많은 학생들은 학원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배움에 자본이 들어간다니요. 놀랍지 않습니까? 고고한 학문일수록 돈이나 권력구조가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대통령님께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셨던 적폐청산의 대표적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배움을 즐기고 누릴 수가 없는 이러한 의미 없는 줄세우기 식의 제도가 과연 정당한 나라 공평한 나라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 분야가 묻혀진 채로 학교라는 틀 안에서 갇혀 있습니다.     


결과 위주 중간기말 시험을 치르지 않게 해 주세요     


1년에 두 번씩 학기마다 중간, 기말 시험을 봅니다. 중간. 기말 시험 또한 시험문제에서는 너무도 함축적 단어를 사용하여 지문을 만듭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단순화적인 정의를 그대로 사용하는거죠.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게다가 객관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 수 없는 5개 보기 중 옳은 것 하나를 고르게 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학생들을 헷갈리도록 함정을 만들죠.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서 만들어진 정답을 찾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출제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축으로 그와 관련된 분야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순수한 배움에 함정이 정당화 한 것입니까?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깨치고 서로 배움을 주고 받고자 하는 곳이 학교가 아니었습니까? 이러한 배움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가져야 할 때에 왜 이러한 결과 위주 고르기(선택형) 시험문제로 학생에게 혼란과 열패감을 주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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